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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있어야 표심 얻는다
박 치 경
편집부국장
2014년 10월 29일(수) 00:00
정치시계가 세밑을 향해 치닫고 있다. 국정감사가 끝나고 여야는 예산국회를 벼르고 있다. 이 와중에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새로운 당내 권력지형 구축을 위한 물밑 싸움이 한창이다.

새정치연합 당권 경쟁을 바라보면서 먼저 떠오른 것은 ‘싸가지론(論)’이다. 지난 8월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가 펴낸 ‘싸가지 없는 진보’는 3개월 가까이 야권의 현주소로 회자되고 있다. 강 교수는 책에서 작금 국민이 야권과 진보를 외면하는 것은 “싸가지 없어서다”라고 일갈했다.

언뜻 속되게 들리는 ‘싸가지’의 의미를 뜯어보자. 무례, 독선, 오만, 도덕적 우월감 등을 지적할 때 많이 쓰이는 이 말은 주로 인간관계나 집단에서 잘난 척하는 사람에게 적용된다. 책에서는 이를 원용해 진보세력 가운데 일부 국회의원 등이 직위에 어울리는 실력과 양식 없이 거드름 피우고, 국민의 눈에 거슬리게 하는 행태를 비판한다.

지난 7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진보(야권)가 보수(여권)에 치이고, 야당 지지도가 여당의 절반에 머무르는 원인은 본연의 자세를 잃어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으로부터 마음을 잃은 데서 연유한다는 게 강 교수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진보 본연의 자세는 무엇인가. 대중은 진보에 대해 겸손한 태도로 사회 개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라는 뜻으로 배지를 달아주고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유권자 기대와 너무나 동떨어져 생겨난 결과라고 저자는 해석했다.

싸가지가 없다는 것은 예의없다는 말과 통한다. 아무리 선한 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쌍욕을 해대고 격에 맞지 않게 행동하면 본질은 묻히고 거꾸로 비난만 돌아온다.

품위 손상과 싸가지 없음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지난 9월 서울 영등포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연루된 ‘대리기사 폭행사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당시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이 저녁식사 후 대리기사를 불렀다. 기사가 도착했지만 자꾸 출발이 지연됐다. 이에 기사가 불평하고 유족대표들과 폭행이 벌어졌다.

시간을 재촉하는 기사에게 일행 중 누군가가 “1만원 더 주겠으니 좀더 기다려달라”고 대처했다면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건이 얼마나 뼈아팠으면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당선되자마자 “합리적으로 품위있는 야당이 되도록 하겠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을까.

더불어 야권 쇠락을 불러온 한 축은 ‘감각 둔화’다. 지금 국민의 주된 관심사는 먹고 사는 문제다. 그럼에도 ‘심판과 투쟁’만 되뇌고 있다. 결과적으로 야권의 지지도 하락은 자업자득인 셈이다. 진보와 야당이 책무를 잃고 ‘자살골’을 터뜨리는 덕분에 결코 잘 한 것 없어보이는 여당이 미소를 머금게 됐다고 강 교수는 지적했다.

고질적인 계파싸움 또한 자충수다. 똘똘 뭉쳐도 거대 여당에 버거울 텐데 스스로 갈라 서서 싸워주니 여권에는 본의 아니게 가장 큰 우군이 되고 말았다.

이쯤에서 해법을 찾아보자. 사실 해결책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정확히 과거와 거꾸로만 하면 된다. 우선 ‘싸가지 없음’의 대안이다. 진보의 눈살 찌푸리는 언행은 자체의 약점을 가리기 위한 오버라는 측면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기 바란다.

유시민 전 의원의 ‘백바지’로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진보가 넥타이에 정장을 하고, 고상하게 여당과 겨룬다고 해서 변질됐다고 여기는 이는 드물 것이다. 얼마든지 기품을 지니고 올바른 사회와 국민이익을 위해 싸울 수 있다. 이렇게 해도 진보가 싸가지 없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 것인가.

국민과의 주파수도 제대로 맞춰야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자영업자나 월급쟁이들이 더 이상 정치공세에 귀 기울일 여유는 없다. 생활고를 해결해주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구르는 야당, 그리고 나서 정의를 부르짖어도 국민은 전혀 늦다고 생각지 않는다.

집안싸움도 거둘 때가 됐다. 사실 어느 당이건 당권 확보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구도상 야당의 계파분쟁은 이적행위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자체 탕평책이다. 내년 초 새로운 당 대표가 선출된 후 다른 계파를 요직에 앉혀 융화를 꾀하지 못하면 백년하청이다.

상식적인 품위를 갖추고 국민 눈높이를 맞추라. 여기에 계파를 녹여내 국민을 위한 진보와 야당이 되면 유권자들은 싸가지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면 덩달아 표도 따라온다.



/uni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