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기본소득 ‘희망의 실험’ 되려면 - 김대성 전남 서·중부 전북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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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기본소득 ‘희망의 실험’ 되려면 - 김대성 전남 서·중부 전북 취재부장
2025년 12월 24일(수) 00:20
전남도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지역’에 선정된 것을 반기면서도 후속 조치에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도 신안에 이어 곡성이 추가 지정됐지만 재원 조달과 위장 전입, 왜곡 예산 배정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탓에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10%에 이어 농어촌 기본소득도 60% 분담이 확정되면서 중앙정부가 주요 정책 수립 과정에서 사전 협의 없이 열악한 재정 여건에 놓인 지자체에 지방비 의무 분담을 강제하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방소멸대응기금 등을 활용해 지방비 분담 비율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기초지자체는 어쩔 수 없이 농민수당 등 기존에 지급하던 농업·복지 예산을 줄이기로 해 농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정부가 농어촌 지역의 활력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첫발을 떼기도 전에 갈등만 양산하는 건 아닌지 노파심이 들 정도다.



분담률·예산 시작도 전에 ‘삐걱’

2026∼2027년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인구감소지역 가운데 선정된 전국 10개 군에 1년 이상 거주한 주민에게 월 15만원(4인 가구 기준 60만원)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농어촌 기본소득은 농업경영체에게만 지급하는 농어민수당과 달리 전 주민에게 지급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지난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군을 선정한 뒤 군별로 1∼4%까지 유입 인구가 늘었다”라고 밝힐 정도로 기대감이 높은 사업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범사업 시행을 코앞에 두고 정부와 시범 지역이 있는 광역지자체 간 예산 분담 등을 놓고 극적으로 합의가 이뤄졌지만 아직 해결해야할 사안이 많다는 것이다. 이번 논란은 국회가 기초단체의 재정 부담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부대 의견을 붙이면서 촉발됐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도비 30%를 부담하지 않을 경우 국비 배정 보류 검토’라는 의견을 달았는데, 군 단위 기초자치단체의 재정 부담이 크다는 게 이유였다.

분담률 상향으로 광역지자체가 추가로 감당해야 할 금액은 총 99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129억원(분담률 18%)을 분담해야 했던 전남은 366억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고 충북과 전북, 경남, 강원 등도 각각 분담금이 대폭 늘어나게 됐다. 이에 일부 도에서는 이미 내년도 예산안 심의가 사실상 마무리된 상황에서 “추가 반영은 불가하다”라며 제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전남도 역시 내년 추경을 통해 사업을 정상 추진한다는 방침으로 분담률 논란을 일단락했지만 추후 사업 추진과 관련 예산 배정에서 논란이 여전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지자체들이 기존 농업·복지 예산을 줄여 기본소득 재원으로 할 가능성이 큰 데 오히려 농민들의 분노만 유발하고 있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전남 농민단체들이 전남도의 벼 경영안정대책비 예산 삭감 논란과 관련해 “전남도가 농어민 공익수당 확대 지원과 쌀값 회복 상황, 농어촌기본소득 도입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라며 진위를 따져 묻고 대책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외에도 시범사업인 탓에 지역사랑상품권 지급 형태와 사용처, 사용 기간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준비가 부족해 자칫 지급이 늦어지거나 시행에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지급되는 지역화폐의 사용처를 제한한다면 지역경제 활성화 도모라는 사업 취지와도 맞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사용처 확대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졸속 추진은 정책 불신만 키워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모든 사안이 그래야겠지만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므로 사회적 합의와 재정 지속 가능성, 정책 효과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민감한 사안이다. 하지만 재정 분담률 논란에서 봤듯이 정부는 이번 정책에 대한 세밀한 논의 없이 당위적으로 밀어붙여 농촌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그 취지 자체로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이지만 졸속 추진은 오히려 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필요하다고 판단한 정책이라면 국가가 그 실패의 비용까지 감당할 각오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지금보다 훨씬 더 확대되어야 할 정책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례를 반면교사 할 필요도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지자체와의 수평적 협력을 바탕으로 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 국비 비율 확대와 도비 부담률의 현실적 조정 없이는 농어촌 기본소득은 ‘희망의 실험’이 아니라 ‘무책임한 실험’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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