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서 떠올려보는 단상 -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 |
해마다 이맘때면 한 해를 상징하는 말들이 발표 된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교수들이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와 옥스퍼드 영어 사전(OED)이 뽑는 ‘올해의 단어’가 이에 해당한다. 전자는 고전에 기록돼 후세에 전해지는 말인 반면, 후자는 새롭게 만들어진 조어(造語)다.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변동불거(變動不居)다.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뜻으로, 전국 대학 교수 766명 가운데 260명(33.94%)이 선택했다. 변할 ‘변’(變), 움직일 ‘동’(動), 아니 ‘불’(不), 있을 ‘거’(居)의 조합은 ‘만물은 변화하며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뜻을 함의한다.
2025년과 격변의 소용돌이
옥스퍼드 영어 사전(OED)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분노 미끼’(rage bait)다. 어휘나 어감에서 다분히 부정적인 뉘앙스가 감지된다. 우리 사회 저변에 분노의 감정이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유럽 사회에도 증오, 혐오로 인한 사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교수신문은 ‘변동불거’가 선택된 이유에 대해 “한국 사회가 거센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으며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시대적 메시지를 상징한다”고 언급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얘기다. 2025년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 역동적인 해로 기록될 만큼 극적인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연말 급작스럽게 터진 비상계엄을 비롯해 윤석열의 탄핵, 석방과 재수감, 대통령 선거, 정권교체 등 일련의 일들은 소용돌이의 연속이었다.
윤석열 정권은 권불십년(權不十年), 아니 권불오년(權不五年)도 못 넘기고 권불삼년(權不三年)에 막을 내렸다. ‘한줌도 안 되는 권력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더니 스스로 자멸하고 말았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반성은커녕 국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언행으로 화를 부추기고 있다.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이 순리인데 윤석열을 위시한 계엄세력은 세상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자신들만의 망상에 빠져 있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분노 미끼’(rage bait)는 말 그대로 분노를 유발하는 사회를 일컫는다. 강한 감정의 격동을 뜻하는 ‘분노’(忿怒)와 상대를 속인다는 뜻의 ‘미끼’(bait)가 결합된 용어다. 오늘날 분노는 디지털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연계돼 있다. 모든 것이 계수되고 수치화되는 자본주의와 사이버 세상에서 ‘조회수’는 생사여탈을 쥔 최대의 권력이나 다름없다. 수많은 스타들이 대중의 인기에 따라 명멸하는 것과 같이 콘텐츠 또한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조회수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
즉, 분노는 대중을 콘텐츠로 유입시키는 가장 강력한 촉진제다. 문제는 분노가 전염, 전이된다는 데 있다. 선전 선동을 극대화할 의도로 혐오, 증오를 교묘하게 조장하는 세력들에게 더 없이 좋은 미끼다. 짧은 기간 압축성장을 한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 분야에서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세대, 성별, 계층, 종교를 넘어 구조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의 단어로 ‘분노 미끼’가 뽑혔다는 것은 그만큼 ‘분노나 짜증을 유발하는 콘텐츠’가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분노는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사회 구성원들을 교묘하게 갈라치기 한다. 디지털의 반대인 아날로그의 가장 원초적인 특질이 인간의 감정과 감성인데, 그것마저 AI로 대변되는 알고리즘이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내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2025년은 변화무쌍한 한 해였다. 12월의 끝자락에 들어서면 매번 옛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말들이 떠오른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 “세월에 속고 살았다”는 푸념은 세상을 오래 사신 어르신들의 통찰이 담긴 말들이다. 아마도 그 같은 표현들이 내년 이맘때도 환기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우리 삶의 본질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지난 시간들의 경험에서 연유한 때문이다.
‘변동불거’와 ‘분노 미끼’는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선택한 말이지만 그 이면에는 상통의 의미가 내재돼 있다. 바로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세상도, 인간의 감정도 움직이며 그것이 곧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한때 TV 광고에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카피가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인간의 원초적 감정인 사랑도 움직인다면, 다른 것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내년에는 또 어떤 변화가 우리 앞에 놓여 있을까. 아니 내년 12월에는 어떤 사자성어와 올해의 단어가 선택될까. 좀 더 희망을 줄 수 있는 긍정적인 말들이 선정됐으면 한다. 그러나 이런 희망사항마저도 ‘세상은 변한다’는 진리 앞에서는 무의미할 것 같다.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변동불거(變動不居)다.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뜻으로, 전국 대학 교수 766명 가운데 260명(33.94%)이 선택했다. 변할 ‘변’(變), 움직일 ‘동’(動), 아니 ‘불’(不), 있을 ‘거’(居)의 조합은 ‘만물은 변화하며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뜻을 함의한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OED)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분노 미끼’(rage bait)다. 어휘나 어감에서 다분히 부정적인 뉘앙스가 감지된다. 우리 사회 저변에 분노의 감정이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유럽 사회에도 증오, 혐오로 인한 사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윤석열 정권은 권불십년(權不十年), 아니 권불오년(權不五年)도 못 넘기고 권불삼년(權不三年)에 막을 내렸다. ‘한줌도 안 되는 권력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더니 스스로 자멸하고 말았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반성은커녕 국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언행으로 화를 부추기고 있다.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이 순리인데 윤석열을 위시한 계엄세력은 세상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자신들만의 망상에 빠져 있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분노 미끼’(rage bait)는 말 그대로 분노를 유발하는 사회를 일컫는다. 강한 감정의 격동을 뜻하는 ‘분노’(忿怒)와 상대를 속인다는 뜻의 ‘미끼’(bait)가 결합된 용어다. 오늘날 분노는 디지털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연계돼 있다. 모든 것이 계수되고 수치화되는 자본주의와 사이버 세상에서 ‘조회수’는 생사여탈을 쥔 최대의 권력이나 다름없다. 수많은 스타들이 대중의 인기에 따라 명멸하는 것과 같이 콘텐츠 또한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조회수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
즉, 분노는 대중을 콘텐츠로 유입시키는 가장 강력한 촉진제다. 문제는 분노가 전염, 전이된다는 데 있다. 선전 선동을 극대화할 의도로 혐오, 증오를 교묘하게 조장하는 세력들에게 더 없이 좋은 미끼다. 짧은 기간 압축성장을 한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 분야에서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세대, 성별, 계층, 종교를 넘어 구조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의 단어로 ‘분노 미끼’가 뽑혔다는 것은 그만큼 ‘분노나 짜증을 유발하는 콘텐츠’가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분노는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사회 구성원들을 교묘하게 갈라치기 한다. 디지털의 반대인 아날로그의 가장 원초적인 특질이 인간의 감정과 감성인데, 그것마저 AI로 대변되는 알고리즘이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내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2025년은 변화무쌍한 한 해였다. 12월의 끝자락에 들어서면 매번 옛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말들이 떠오른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 “세월에 속고 살았다”는 푸념은 세상을 오래 사신 어르신들의 통찰이 담긴 말들이다. 아마도 그 같은 표현들이 내년 이맘때도 환기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우리 삶의 본질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지난 시간들의 경험에서 연유한 때문이다.
‘변동불거’와 ‘분노 미끼’는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선택한 말이지만 그 이면에는 상통의 의미가 내재돼 있다. 바로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세상도, 인간의 감정도 움직이며 그것이 곧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한때 TV 광고에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카피가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인간의 원초적 감정인 사랑도 움직인다면, 다른 것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내년에는 또 어떤 변화가 우리 앞에 놓여 있을까. 아니 내년 12월에는 어떤 사자성어와 올해의 단어가 선택될까. 좀 더 희망을 줄 수 있는 긍정적인 말들이 선정됐으면 한다. 그러나 이런 희망사항마저도 ‘세상은 변한다’는 진리 앞에서는 무의미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