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공연기획자·레이블 대표·작가… MZ 예술가가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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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공연기획자·레이블 대표·작가… MZ 예술가가 살아남는 법
광주 출신 피아니스트 김주상
15일 광주예술의전당 리사이틀
13세에 러시아 음악원으로 유학
독일·영국 등서 석박사 과정
국제 콩쿠르 1위하며 실력 인증
연주만으론 한계…공연 기획 관심
디지털 음원 제작 등 영역 넓혀
2026년 01월 06일(화) 19:15
김주상 피아노 리사이틀 ‘주상이는 연주가 하고 싶어서’가 오는 15일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다. 피아니스트 김주상의 모습. <판타지아 제공>
“듣고 싶으면 듣고, 말고 싶으면 마세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연주니까요.”

클래식은 오랫동안 귀족의 음악으로 인식돼 왔다. 지금도 클래식이라 하면 정장이나 드레스를 차려입은 연주자가 우아한 손짓으로 악기를 다루는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이 때문에 클래식은 고급 문화의 상징임과 동시에 어렵고 고루하다는 편견을 함께 안고 있다.

그런데 이 익숙한 이미지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독특한 피아노 리사이틀 포스터가 있다. 독주회임에도 연주자의 얼굴은 픽셀 선글라스로 가려져 있고, 제목 폰트는 예능 자막처럼 제멋대로다.

온갖 밈(meme)을 끌어다 쓴 듯한 이 포스터의 정점은 공연 제목이다. ‘주상이는 연주가 하고 싶어서.’ 어떤 곡을 누가 연주하는지조차 쉽게 알 수 없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시선을 붙잡는다.

MZ 감성을 한껏 드러낸 이 리사이틀의 주인공은 바로 ‘주상이’, 광주 출신 피아니스트 김주상(27)이다. 그는 오는 15일 오후 7시 30분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피아노 리사이틀 ‘주상이는 연주가 하고 싶어서’를 연다.

기자는 지난 5일 광주일보사에서 김 씨를 만나 이 독특한 리사이틀과 젊은 연주자들이 예술가로 ‘살아남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슈퍼스타가 아닌 음악가는 지속 가능한 예술을 위해 결국 스스로 연주자이자 기획자, 사업가로 살아야 합니다.”

김 씨는 13세에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고, 17세에는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에서 최연소로 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영국 리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위스 ISCART 국제 음악 콩쿠르와 이탈리아 부조니 오케스트라에서 주최한 부조니 국제 음악 콩쿠르 등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제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았고, 현재는 스페인 KNS Classical 음반사의 소속 아티스트로 ‘Mosaic’ 앨범을 발매하며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김 씨는 스스로를 “결국 ‘천재’나 ‘스타’가 되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어린 시절 유학을 갔지만 특별히 두각을 나타냈던 건 아니다”며 “초등학교 2학년 때 호남예술제에 나갔지만 입상도 못 했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게 너무 좋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피아니스트가 돼 연주를 직업으로 삼고 싶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소수의 스타를 제외하면 연주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 클래식 향유층이 두터운 유럽과 달리 청자 기반이 얕은 한국에서는 그 현실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는 2024년 군 복무를 마친 뒤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독주회를 연 경험을 떠올리며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그때 이후 국내에서 연주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한국에서 클래식 연주자는 결국 자기 돈으로 무대를 여는 구조잖아요. 티켓은 잘 팔리지 않고, 가족과 지인들이 초대권으로 객석을 채워줘야 하죠. 그마저도 한두 번이지 오래 갈 수는 없고요. 그래서 연주 말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는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그는 뜻을 같이하는 음악가들과 함께 클래식 음악 기획사이자 레이블 ‘판타지아’를 설립해 공연 기획과 음원 제작, 디지털 발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문을 연 아트스페이스 흥학관의 음악 감독을 맡아 여러 차례 클래식 공연을 올렸고, ‘음악해서 뭐 먹고 살래?’, ‘독일 음대 유학 가이드북’, ‘클래식 음악 레이블 운영 가이드’ 등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연주 음원을 돌비 애트모스 방식으로 제작해 스트리밍 플랫폼에 선보이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김 씨는 “국내에서는 클래식 음원을 스테레오가 아닌 돌비 애트모스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음원과 영상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연주자의 또 다른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제 에이전시에서도 이런 자료를 많이 참고해요. 실제로 제 앨범을 들은 뉴욕의 한 오케스트라에서 올해 6월 카네기홀 협연 제안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차근차근 걸어오던 그였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결국 다시 연주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기획자로 일하며 만난 연주자들의 얼굴이 그 이유였다. “객석이 다 차지 않아도, 연주회를 마친 뒤의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저 기분 아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그는 이번 리사이틀을 결심했다. 다만 이번 무대만큼은 관객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철저히 ‘나 자신’을 위한 연주회로 꾸리기로 했다.

“클래식은 고여 있는 과거의 예술이 아니에요. 계속 흐르고, 때로는 톡톡 튀기도 하죠.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긴다면 ‘쟤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하고 한 번쯤 들여다보는 것도 꽤 즐거운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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