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예술제는 더 큰 꿈 키우게 해 준 특별한 무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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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예술제는 더 큰 꿈 키우게 해 준 특별한 무대였죠”
호남예술제 70년 <5>호남예술제를 빛낸 예술가 - 김선희 전 한예종 교수
초·중·고 5차례 최고상 휩쓸어…교육자로 안무가로 명성
‘한국발레계 대모’ 박세은·전민철·김기민 등 400명 키워내
2025년 05월 21일(수) 19:10
초등 6학년 때 호남예술제 참여한 김선희 교수.
지난 2월 졸업생들이 마련한 정년퇴임식에서 포즈를 취한 김선희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지난 2월 제자들이 마련한 김선희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퇴임식 모습.


“제자로 와 줘서 고마워. 너희 덕에 내가 유명스타가 돼 버렸어.(웃음)”

지난 2월7일 졸업생들이 마련한 퇴임식 사진 속의 그는 행복해 보였다. 스승을 둘러싼 300여명 제자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K 발레’의 터를 닦은 ‘한국발레계의 대모’ 김선희 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교수. 30여년간 그가 키워낸 제자는 한예종 영재원을 포함하면 400여명에 달하고 이중 60여명은 전 세계 20개국에서 현역무용수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지난 1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글로벌 발레스타 초청 갈라공연’은 김 교수의 정년 퇴임을 기념하며 열린 행사였다.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수석) 박세은, 보스턴 발레단 수석 채지영, 마린스키발레단 입단을 확정 지은 발레리노 전민철 등 ‘세계 무용계의 별들’이 스승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광주 출신인 김 교수는 호남예술제를 통해 꿈을 키웠다. 중앙국민학교 4학년 때 엄마 손에 이끌려 광주 지역 발레 대모 엄영자 선생에게 무용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6학년 때 처음 출전한 호남예술제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이후 동성여중, 광주여고를 거치며 모두 5차례 최고상을 휩쓸었다.

“어린 시절, 제 가슴을 가장 강하게 뛰게 했던 기억 중 하나가 바로 호남예술제였습니다. 그것은 단지 대회가 아니라, 예술가로의 길을 꿈꿀 수 있게 해 준 출발점이자 디딤돌이었어요. 1960년대 광주에서 발레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후 매년 대회에 참가해 상을 받았던 기억은 제가 올바른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호남예술제는 제 안에 있던 가능성을 믿고 더 큰 꿈을 키우게 해 준 특별한 무대였습니다.”

호남예술제 수상으로 날개를 단 그는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콩쿠르 등을 석권하며 ‘콩쿠르 킬러’로 불렸고, 이어 ‘콩쿠르 킬러들’을 길러내는 명조련사가 됐다.

이화여대 졸업 후 잠시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했던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 지도자 과정을 통해 러시아 발레 교육을 배운 후 1996년 한예종 교수로 임용돼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저는 ‘기본에 100% 충실하자는 원칙을 늘 강조했습니다. 각기 다른 연령과 수준의 학생들이 발레의 기초를 정확히 이해하고 체화한 다음에야 비로소 더 높은 예술적 표현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성급함보다 꾸준함이 더 큰 결실을 맺는다고 믿었습니다. 주어진 오늘 하루, 나의 책임을 성실히 완수하는 것이 제가 늘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눈에 띄는 성공보다는 주어진 일상을 끝까지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세가 결국 큰 길로 이어진다는 걸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체계적인 가르침은 점차 빛을 발했고, 제자들의 국제 콩쿠르 수상으로 이어지며 전 세계가 한국 발레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그의 무용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2010년 우리 학생들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바르나 국제콩쿠르를 제패했을 때입니다. 전체 수상자 11명 중 6명이 제자였고, 김기민, 박세은, 한성우(ABT), 김명규·심현희(국립발레단) 등 당시 수상자들은 지금 모두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은 교육자의 삶 전체를 통틀어 가장 벅찼던 시간이었습니다.”

교육자의 역할과 함께 안무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친 그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안데르센의 동화가 원작인 전막 발레 ‘인어공주’를 꼽았다. 2001년 광주에서 초연한 ‘인어공주’는 이후 수차례 무대에 올랐고 올 10월 서울 국립극장에서 25년을 맞아 새롭게 단장된 버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제자이자 안무가인 유회웅, 김현웅과 함께 한톤 룹첸코의 새로운 음악, 무대, 의상으로 다시 태어날 ‘인어공주’를 광주에서 공연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

그는 올해 70주년을 맞은 호남예술제에 대한 덕담과 경연에 참여한 예술 꿈나무들에게 대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 경연대회 중 하나로 호남예술제가 오랫동안 이어져온 것 자체가 기적이고 자부심입니다. 몇몇 사람의 힘이 아닌, 지역의 예술가들과 광주일보라는 품격 있는 매체가 함께 지켜낸 공익적이고 가치 있는 행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 전통이 변함없이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신은 재능 있는 어린 예술가들을 세계 곳곳에 흩어 놓았고, 여러분은 그중 하나입니다.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그 꿈은 반드시 현실이 됩니다. 꿈을 꾸는 자의 걸음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꼭 전하고 싶습니다.”

정년 후에도 지난 4월 미국 발렌티나 코즐로바 국제 무용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그는 “제가 잘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 필요로 한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기꺼이 감당하려 하고, 그게 삶의 에너지가 된다”며 “앞으로도 발레 교육과 예술 기획,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발판 마련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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