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예술제 70년 <4>호남예술제를 빛낸 예술가 - 문지영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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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예술제 70년 <4>호남예술제를 빛낸 예술가 - 문지영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가 겪어야 할 고충 처음 겪었던 소중한 무대”
초등 5년 때 호남예술제 최고상…“예술 꿈나무들 성장 발판 감사”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한국인 최초 1위’…국제 무대서 인정
2025년 05월 08일(목) 19:40
피아니스트 문지영
“지금 생각해 보면 광주에서 열리는 큰 콩쿠르 ‘호남예술제’에 출전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 여수에서 버스를 타고 ‘여행하는 기분’으로 참가했는데, 제대로 손을 풀지 못한 상태에서 덜덜 떨며 연주했던 기억이 납니다. 피아니스트가 겪어야 할 고충을 처음 겪었던 소중한 순간이죠.”

클래식 콩쿠르에서 가장 많은 참가자가 출전하는 부문을 꼽자면 ‘피아노’가 아닌가 싶다. 체르니, 하농을 갖 뗀 새내기부터 나름의 레퍼토리를 준비한 학생들까지…. 한 번 완주할 때마다 포도알 한 알씩 색칠하며 실력을 쌓던 ‘예술 꿈나무’들이 동네마다 여럿 있었다.

그러나 피아노로 일정한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건반의 섬세한 눌림, 현의 떨림 등 감각을 오롯이 이해해야 하고, 오선지를 넘어서는 베리에이션과 감정표현까지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호남예술제 최고상을 수상한 피아니스트 문지영 씨는 요즘 가장 주목받는 비르투오소다. 1995년생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지만 국제무대를 종횡무진하는 터라, 이름은 국제 음악계에 각인돼 있다.

2014년 다카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 같은 해 제네바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이듬해 펼쳐진 제60회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1위’라는 수식어를 거머쥐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그녀와 최근 서면으로 인터뷰를 나눴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연주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그녀에게 호남예술제는 어떤 의미일까.

먼저 70주년 소식에 문 씨는 “한국음악계에서 콩쿠르가 70주년을 맞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다”면서 “굳건히 호남예술제를 이끌며 학생들에게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준 광주일보사와 관계자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어 “아무리 연습한들 정작 무대가 주어지지 않으면 예술가는 온전해질 수 없다. 꿈을 펼쳐나갈 기회이자 예술 축전이던 호남예술제는 나뿐 아니라 후배 예술가에게 도약의 발판으로 기억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후배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 그녀지만, 20년 넘게 걸어온 그녀의 예술 여정은 녹록지 않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운영하던 가게 문을 닫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가족들 관심과 노력에 힘입어 아홉 살부터 피아노를 마련, 연습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2009년 폴란드 루빈스타인 국제콩쿠르에서 1위, 같은 해 8월 저소득층 아동 청소년 가운데 예술 인재를 지원하기 위한 ‘아트 드림 음악콩쿠르’에서 중등부 대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독일 에틀링겐에서 열린 국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이후 음악계 주목을 받으며 금호문화재단 음악 영재로 선발된 뒤 한예종 김대진 교수를 사사했다.

문 씨는 “지역에서 음악하는 후배들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6년 가까이 여수에서 홈스쿨링을 하면서 지역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역은 수도권에 비해 기반이나 인프라가 열악하지만, 과열된 경쟁구도에서 한 발 비켜 서 있기에 “장점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크게 빛을 발했던 순간은 2015년 부조니 국제 콩쿠르 피아노 콩쿠르 때. 좀처럼 우승자를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이 경연에서 15년 만에 처음 나온 우승자였고, 아시아 출신으로 처음이었다.

당시 심사 위원장이던 외르크 데무스는 “이 시대에서는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음악성의 자연스러움을 문지영에게서 발견했다”는 호평을 남겼다.

수상자로 결정됐을 때 문 씨는 “믿을 수 없었기에 생각보다 무덤덤했다”며 “아직 대학교 2학년 학생이었기에 수상 이후 연습에 매진해서 기량을 유지하고 실력을 향상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답했다.

큰 대회를 여럿 거쳐 왔지만 여전히 호남예술제는 문지영이 음악에 ‘첫 발’을 내딛게 해준 계기였다. 친구들과 손 잡고 출전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음악 인생의 한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 요즘도 후배들이 조언을 구할 때마다 “음악에 온전히 헌신하면서 순수함과 본질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항상 진심을 다해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생각해 왔어요. 음악이 삶에서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삶과 겹쳐져 나의 ‘전부’가 되는 거요. 음악에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음악가로서 삶을 살아가며 여전히 그녀는 ‘환희’와 ‘고통’을 매일 느낀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모든 순간이 살을 찢는 아픔과도 같지만, “본질적으로 음악적 삶을 살아가기에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한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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