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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그림의 운명 - 이명 지음
이 그림은 어떤 연유로 이 공간에 머물게 되었을까?
2024년 02월 02일(금) 20:00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초기 제목이 ‘아비뇽의 사창가’였다. 어머니가 예전에 살던 동네에 사창가가 그림의 모티브였다. 처음 그림이 전시될 때인 1916년, 기획자는 ‘아비뇽의 아가씨들’로 제목을 바꿨다.

관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전의 피카소 그림과 다른 방식과 느낌 때문이었다. 누드가 새로운 형식도 아닌데 다른 게 있다면 “피카소가 대상을 드린 방법과 태도”였는데 “마치 인체를 해부하듯 부분을 해체한 뒤 그 모든 것을 다시 이어붙인 듯 각각의 특징을 따로따로 포착하고 이를 재조합하여 전체를 보여주는” 관점이 흥미로웠다.

이전의 그림들은 재현에 포커스를 취했다면 피카소는 대상의 외면을 파괴하고 “내면을 파헤치는 놀라운 효과”를 염두했다. 그림 속 여인들의 표정을 자세히 읽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기형적인 이목구비, 노골적인 육체의 모습은 인간의 고통과 반발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림에는 특유의 운명이 있다. 비단 그림뿐 아니라 모든 예술 작품도 나름의 운명을 타고 난다.

세기의 걸작들이 어떻게 특정 공간에 머물게 되었는지를 분석한 책이 나왔다. ‘그림의 운명’은 작업실을 떠나 각기 다른 사연을 품은 채 여러 곳으로 보내졌던 그림의 운명을 주목한다. 저자는 국민일보 문화부에서 근무했던 이명 씨. 서울대에서 영어교육학을 전공한 그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며 다양한 미술관에 놓인 그림들의 사연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에 전시된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구입한 이는 아크 컬렉터인 자크 두세다. 피카소 친구이자 평론가 앙드레 브로통이 ‘그림을 초월하는 그림’이라고 극찬을 했다. 이와 달리 피카소는 상당히 낮은 금액에 작품을 팔았는데, 그것은 두세가 자신의 사후 그림을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하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두세는 유언장에 그 내용을 적시하지 않았고, 작품은 딜러를 통해 이곳저곳으로 팔려 나갔다. 그럼에도 그 작품은 어딘가에 정착할 운명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1929년 뉴욕 현대미술관 개관 이후 첫 번째 구입한 작품이 된다. 오늘날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예술과 미술관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높이며 서로가 윈윈한 최고의 결합”으로 평가받는다.

마네가 여인의 누드를 그린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도 초기에는 조롱과 비난을 받았다. 1863년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살롱’에 출품하지만 퇴짜를 맞았다. 이후 국가가 예외적으로 개최한 ‘낙선전’에 마네는 작품을 출품하지만 평가를 바꿀 수 없었다. 얼마 후 그는 다시 ‘올랭피아’를 ‘살롱’에 출품했지만 역시 거센 공격과 비난을 받기에 이른다.

마네는 스스로 걸작이라 생각했지만 대중은 달랐다. 그의 사후 추앙하고 따르던 모네 등 일련의 화가들이 ‘올랭피아’가 루브르에 걸릴 수 있도록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오르세 미술관이 개관하면서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가 그곳에 걸리게 된다. 폐쇄된 철도역을 개조해 만든 오르세미술관 소장작이 되면서 마네의 그림은 오늘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에 이른다.

르네상스의 거장 다 빈치의 작품 ‘모나리자’는 그의 조국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에 남겨졌다. 노년의 다빈치가 고국을 떠나 죽기까지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프랑스 왕의 관심과 지지 때문이었다.

이밖에 현존하는 조각상을 뛰어넘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생전에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현재는 많은 사랑을 받는 고흐의 작품, 세계평화를 기원한 모네가 일본에서 그 꿈을 이루게 된 사연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저자는 “화가가 그림을 완성했다고 해서, 또 그림을 다른 누군가에게 넘겼다고 해서 화가와 그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화가의 손을 떠난 그림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평가되면서 그 범위를 확장시켜 나간다. 비로소 그림 자체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미술문화·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