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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공원을 ‘한·중 우호 공원’으로- 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 한반도미래연구원장
2023년 09월 20일(수) 00:15
윤석열 정부의 이념 논쟁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 영웅 홍범도 장군까지 이념 논쟁의 소재로 삼는 윤석열 정부의 민족적 정체성은 무엇일까. 민족문제에 관한 한 군사독재 정부도 이렇게까지 거칠고 형편없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광주가 이 거칠고 형편없는 정부와 벌이는 이념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홍범도 장군의 동상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 진영은 물론이고 양식을 가진 보수 진영 인사까지 반대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정율성 공원 조성에 대해서는 이 지역을 정치적 거점으로 하는 민주당조차 말조심하는 눈치다. 광주만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다. 주제가 광주라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정율성 선생이 홍범도 장군보다 이념 문제에서 더 예민하고 휘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필자는 5·18 광주항쟁이 이른 시일 내에 전국 민주화운동 세력의 공감을 얻어 전국화하고 한국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원동력으로 승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두환 일당은 5·18을 북한과 연결하려 노력했지만, 지혜로운 광주 시민들이 그런 틈새를 제공하지 않았다. 정율성 공원 조성과 관련하여 오늘의 광주가 새겨야 할 교훈이다.

정율성 기념공원 문제를 놓고 보수 세력과 윤석열 정부가 광주를 맹폭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그들의 거부감이 일차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 인사들은 평소 민주도시 광주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는데 이 문제가 불거지니까 ‘얼씨구나’ 하고 비난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관점에서 이념 문제라는 좋은 먹잇감 하나를 발견했다고 할까. 정율성 문제를 제기한 측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광주가 기념공원을 계속 추진할수록 이들은 전방위적으로 광주를 폄훼하고 배제하기 위한 온갖 방식을 찾아낼 것이다. 그들의 반대 운동은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끝나도 계속될 것이다.

필자는 정율성 선생에 대해 자세히는 몰랐지만, 최근까지도 음악인으로서 그를 높이 평가해 왔다. 그가 독립운동을 위해 젊은 나이에 고향과 조국을 떠나 외국에 몸을 던진 것도 긍정적으로 이해한다. 중국과는 외교적으로 수교를 했고,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관계를 고려할 때 정부와 보수층이 이 문제를 이념 논쟁의 주제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정율성 선생이 6·25 당시 직·간접적으로 북한 정권에 유리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이 주제로 광주가 정부나 보수 진영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5·18 광주항쟁 등 광주의 주요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라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원칙을 고수해야 하지만 정율성 문제는 그런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율성 공원은 오래전부터 추진했고 현재는 거의 완공 직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율성 기념공원 사업을 추진해온 광주시의 취지는 이제 국민에게 충분히 전달되었다. 중국 국민에게도 일정 부분 알려졌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광주시가 지금 시점에서 포기냐 계속 추진이냐는 이분법적 사고로 대처하지 말고 제3의 방안을 찾아볼 것을 주문하고 싶다. 예를 들면 현재 조성 중인 정율성 공원의 성격을 한중 우호 공원으로 바꾸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본다. 본래 정율성 공원을 조성한 주 목적이 한중 우호와 관광객 유치에 있었다면 한중 우호 공원으로 바꾸어도 본래 조성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공원 한쪽에 정율성 선생 후손들 혹은 그를 좋아하는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정율성 선생의 탄생지를 알리는 표지석 혹은 그를 소개하는 작은 조형물을 만들어보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광주가 낳은 천재 음악가를 기념하고 알리는 일은 그 정도 수준에서도 충분하다고 본다. 한중 우호 공원 내에 설치하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다. 광주시가 거칠고 무도한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 이념 논쟁을 벌이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하는 유연성을 발휘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