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 예찬 - 임동욱 선임기자 겸 이사
지난 주말 고교 동창 녀석과 저녁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만큼 막걸리도 한잔 곁들이기로 했는데 예전 정취가 담긴 선술집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요즘 시대에 막걸리 팔아서 큰 이문을 남기기 어렵고 찾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파트촌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동네 어귀에 선술집 한두 곳은 어김없이 있었다. 허름하지만 값싸고 손맛 낸 안주들과 막걸리 대포 한잔은 서민들의 팍팍한 삶의 애환을 달래 주는 사랑방 역할을 하기도 했다.
주변에 묻고 인터넷 서핑을 통해 친구와 함께 찾은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곁들인 저녁 식사는 예전의 맛과는 거리가 있었다.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이 빠진 사기 술잔, 소시지 부침, 사각 도시락 등을 동원하며 과거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기는 했지만 총각김치 한 가지에도 배어 있던, 농익은 세월의 맛까지는 담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오랜 친구와 함께한 자리라서 좋았다. 나이가 들어가며 점차 시대에 밀려 저물어가는 쓸쓸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감대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대포’는 큰 대(大)에, 바가지 포(匏)의 어원을 가지고 있다. 직역하면 큰 바가지라는 뜻이지만 커다란 술잔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조선시대 북방의 여진족을 토벌한 신숙주가 돌아오자 세조가 크게 기뻐하며 궁궐에서 가장 큰 박을 타서 바가지로 만들어 술을 따라 하사한 것이 유래다. 큰 술잔에 막걸리를 넘치도록 주고받는 맛에 서민들의 애정이 더 담겼을 것 같다. 그리 내세울 것 없는 삶의 헛헛함을 견디고 서로의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점이 대포 한잔의 매력인 셈이다.
시대와 세대가 바뀌어도 삶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 자체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채여도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인 것은 막걸리 한잔이라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 주면 동면했던 개구리도 깨어난다는 경칩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나 선후배들에게 대포 한잔의 마음을 담아 전화 안부라도 전해야겠다.
/임동욱 선임기자 겸 이사
시대와 세대가 바뀌어도 삶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 자체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채여도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인 것은 막걸리 한잔이라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 주면 동면했던 개구리도 깨어난다는 경칩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나 선후배들에게 대포 한잔의 마음을 담아 전화 안부라도 전해야겠다.
/임동욱 선임기자 겸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