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베레모 - 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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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베레모 - 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2023년 02월 22일(수) 01:00
1994년 5월 어느 날 편집국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1980년 5월 당시 진압 작전에 투입된 특전사 출신인데 5·18묘역을 참배하고 싶다고 말했다. 취기가 약간 느껴졌지만 취재팀은 일단 만나보기로 했다.

사실이라면 5·18 이후 처음 이뤄지는 ‘계엄군의 참회’이기 때문에 뉴스 가치가 높았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만난 그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증언은 구체적이었고 확인해 보니 특전사 군인이 맞았다. 특종 경쟁이 치열한 터라 다음날 5·18묘역 참배 때까지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은 사건팀 막내인 내 몫이었다.

여관방을 잡아 함께 밤을 지새웠다. 밤 사이 소주잔은 더 돌았고 그 남자의 가슴속에 내재돼 있던 트라우마가 터져 나왔다. 무고한 시민을 사살했다는 사실에 평생 죄책감 속에 살았고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했다. 술에 취하자 트라우마가 약간의 폭력성으로 표출됐지만 간신히 붙잡는 데 성공해 다음날 5·18묘역으로 안내할 수 있었다.

그 후 계엄군 출신 군인들의 5·18묘역 참배가 간간이 이뤄졌다. 이들의 참회는 계엄군을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인식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특전사를 비롯한 계엄군의 공식적인 사과는 아직까지 없었다. 그런 점에서 특전사동지회가 며칠전 5·18묘역를 공식 참배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5월 단체(5·18부상자회·공로자회)와 특전사동지회가 43년만에 처음으로 화해를 모색하는 자리였지만 분란만 키웠다. 5월 영령들 앞에서 특전사의 군가인 ‘검은 베레모’를 제창하기로 한 것이 발단이 됐다. 검은 베레모는 특전사 군인들이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을 진압한 후 승전가처럼 부른 군가다. 시민들의 반발에 특전사동지회와 행사를 주선한 일부 5·18단체 간부진은 ‘도둑 참배’를 하고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검은 베레모 파문은 5월 단체의 분열을 낳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권력에 눈 먼 일부 5월 단체와 특전사동지회 간부가 빚어낸 합작품이다. 한 간부는 “5·18을 사유화해선 안 된다”고 했는데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bung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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