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 박성천 여론매체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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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 박성천 여론매체부 부국장
2023년 02월 20일(월) 00:15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김광섭 시인(1905~1977)의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는 60~70년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폐해를 그린 작품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 파괴로 보금자리를 잃은 비둘기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때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자 다양한 예술작품의 소재로 차용됐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비둘기는 가까이 할 수 없는 천덕꾸러기가 돼 버렸다. 지난해 광주시가 동구 천변로를 비롯한 주요 도심에 서식 중인 비둘기를 조사했더니 약 1170여 마리로 나타났다. 2019년 1000여 마리에 비해 개체 수가 약 200여 마리 더 늘었다. 문제는 비둘기떼가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고 배설물을 사방으로 흩뿌린다는 데 있다. 분변이나 털 날림 탓에 문화재를 훼손하는 등 피해를 일으켜 2009년에는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자체장 허가 없이 비둘기를 포획·살처분하는 것은 불법이다. 현행법상 비둘기 먹이를 주는 것에 대해 처벌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한 자치단체의 합리적인 방안과 위생적인 면을 고려하는 동물단체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김광섭 시인이 노래했던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비둘기는 그렇게 한 편의 시로 박제돼 있을 뿐이다.

오늘도 도심의 골칫거리이자 민원을 유발시키는 ‘기피 조류’는 도심을 배회한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자연의 순리를 외면한 채 개발에만 몰두했던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결과가 아닐까. 한 번쯤 왜 비둘기가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돼 버렸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연과 불화하기에 앞서 인간의 탐욕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박성천 여론매체부 부국장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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