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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동의 볍씨
2023년 01월 30일(월) 00:15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물은 단연 쌀이다. 기원전 2~1세기에 걸쳐 있는 광주시 광산구 신창동 유적(사적 375호)에서는 1995년 탄화미(炭化米: 불에 타거나 지층에서 자연 탄화된 쌀)와 벼 껍질이 다량 발견됐다. 유전학적 분석을 거친 결과 신창동 벼 품종은 자포니카(Japonica)로 밝혀졌다. 자포니카 쌀은 밥을 지으면 차진 것이 특징으로 동남아에서 생산되는 길고 점성이 없는 인디카(Indica)와 대비된다.

김민구 전남대 문화인류고고학 교수는 최근 ‘신창동 유적 시기의 한반도 남부 농경문화’ 논문에서 눈길 끄는 해석을 제기했다. 한반도에서 선사·역사시대를 거치면서 벼농사에 큰 변화가 최소 한 차례 이상 일어났고 가장 큰 기점은 신창동을 전·후한 시기로 나눌 수 있다는 견해다. 신창동 시기가 농경문화의 전환기라는 견해다. 벼 낱알 크기 증가로 미뤄 벼 수확량 확보를 위한 품종 개량 등 노력이 결실을 맺은 시기라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그동안 발견된 선사시대 탄화미의 낱알 평균 길이는 4.3㎜ 미만이었으나 신창동 탄화미는 4.6㎜에 달한다. 국내 청동기 시대 유적에서는 주로 3.9㎜ 미만이 출토되고 있으나 신창동 탄화미의 경우 최저치가 3.9㎜다. 길이의 증가 추세를 보이는 전국의 원삼국시대 탄화미와 비교해도 긴 편에 속한다.

벼 수확 도구가 반달형 돌칼에서 낫(철제)으로 변화한다는 점도 주목된다. 반달형 돌칼은 청동기 시대 대표적인 벼 수확 도구이다. 이 칼은 줄기를 하나씩 훑어 내 벼 이삭을 따기 위한 것으로, 익는 시기가 다른 야생종 벼의 수확을 위한 도구로 해석된다. 신창동에서 발굴된 낫자루는 벼의 품종 개량이 이뤄져 벼가 동시에 익었음을 방증한다. 동시에 볍씨가 여무는 것은 재배종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다. 즉. 신창동 고대인들은 동시에 익는 벼를 수확하기에 적합한 낫을 사용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신창동 농경문화는 ‘농도’(農都) 전남이 허명이 아님을 증명한다. 신창동 농경문화에 대한 연구가 더해져 광주·전남 농업의 뿌리를 재조명하고 체계적으로 규명하는 단계로 나아갔으면 한다.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