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만화경, 세계의 역사·문명 이끌어 온 15개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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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만화경, 세계의 역사·문명 이끌어 온 15개 도시 이야기,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손세관 지음
2023년 01월 27일(금) 12:00
1739년에 나온 이 지도를 일컬어 사람들은 ‘예술품’이라고 한다. 정교하고 아름답기가 이를 데 없다. 바로 ‘튀르고 지도’. 18세기 파리의 모습을 그렸는데 섬세하면서도 입체적이다. 그런데 왜 명칭을 ‘튀르고 지도’라 했을까. 지도를 기획하고 제작비를 부담한 이가 당시 파리 시장 에티엔 튀르고였기 때문이다.

튀르고는 왕립 미술아카데미에서 투시도를 강의하던 브레테즈 교수에게 파리 지도 제작을 의뢰했다 한다. 파리가 ‘근대도시’임을 만방에 과시하고 싶었다는 게 직접적인 이유다. 브레테즈는 파리의 모든 건물을 실측해 상세하면서도 정확한 그림지도를 그렸다. 이 지도를 바탕으로 시장은 최고 판화가 클로드 루카스에게 의뢰해 20장의 동판화를 제작했다. 모두 붙이면 2.5×3.2미터로 지도는 책자 형태로 출간돼 루이 15세에게 바쳐졌다.

손세관 중앙대 명예교수가 펴낸 ‘도시의 만화경’에는 도시를 그린 지도와 그림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그동안 동서양의 도시와 주거문화에 대해 연구를 해왔고 이번 책은 그런 과정의 결과물이다. 실제 설계 실무를 맡아 은평뉴타운 같은 도시 만들기 작업에 참여했으며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저자는 도시를 그린 지도와 그림을 유난히 좋아했다. “건물은 도시 속에 어떻게 섞여 들어갈까? 주택은 어떻게 모이며, 사람들은 어떻게 공동체를 만들어갈까?”와 같은 질문을 달고 살았다. 한마디로 ‘도시와 인간 삶의 상관성’은 저자의 주요 관심사였다.

어떤 이는 도시를 일컬어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한다. “크고 작은 건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 모양이 제각각인 광장과 외부공간, 성벽, 하천, 다리, 선박, 수복 등등,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도시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나면 ‘예술품’이라는 수사가 적확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번 책에는 세계사에 빛나는 동서양의 15개 도시 이야기가 나온다. 피렌체, 베네치아, 파리, 로마, 빈, 베이징, 서울, 교토, 뉴욕 등 세계 역사와 문명을 이끌어가는 도시들이 주인공이다. ‘도시그림, 현실과 동경을 넘나들다’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도시를 그린 지도와 그림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도시그림은 건축이나 도시계획, 지리학에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본다. 미술사,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는데 도시그림에는 당시 사회제도를 비롯해 경제와 유통, 의식주와 고관련된 문화가 망라된다.

암브로조 로렌체티가 중세도시 시에나의 평화로운 도시의 상을 그린 ‘좋은 정부의 도시’ 부분. <도서출판 집 제공>
유럽 최초의 도시그림은 ‘좋은 정부의 도시’다. 암브로조 로렌체티가 그린 이 그림은 13~14세기 이탈리아 도시 공동체가 상정한 이상사회의 상(像)이 투영돼 있다. 시에나는 13세기 후반부터 ‘9인정부’라는 정치체제를 가동했다. 일종의 대의정치로 도시를 다스릴 정무관 9명은 투표로 뽑았다. 시민정신에 토대를 둔 정치체제는 도시를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했다.

‘좋은 정부의 도시’가 그려진 건 그 무렵이었다. 9인 정부의 방을 장식하는 그림이 필요했고 암브로조가 선택됐다. 그는 1338년 2월에 작업을 시작해 16개월 간 몰두해 마침내 1339년 5월에 작품을 완성한다.

18세기 한양을 그린 ‘도성도’(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도성도)는 ‘회화식 지도’로 알려져 있다. “한양은 수려한 산수 공간 속에 들어선 도시다”라는 말이 실감이 된다. 도로는 굵기가 다르고 붉은색으로 그려져 있는데 “인체의 실핏줄을 연상”하게 한다. 저자는 ‘주례’의 원리에 풍수지리 사상이 합해진 도시라고 본다. 흥미로운 것은 남산이 화면의 위쪽에, 경복궁과 창덕궁이 아래쪽에 자리한다. 임금이 있는 궁궐에서 도성을 바라본, 다시 말해 왕의 시선에서 그린 그림이다.

이밖에 융성했던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를 비롯해 시민의 삶을 위해 만든 다채색의 도시 암스테르담, 한 쌍의 6폭 병풍에 담은 에도 시대 교토, 격자 틀 속에 펼쳐진 초고밀의 뉴욕도 만날 수 있다.

한편 저자는 “열다섯 도시를 다 읽고 나면 동서양의 도시문명을 비교론적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다”고 말한다.

<도서출판 집·3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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