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제색도-송기동 예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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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송기동 예향부장
2022년 11월 01일(화) 00:45
1751년(영조 27년) 윤 5월 하순(양력 7월 말), 일흔여섯 살의 사대부 화가는 지음(知音·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잃었다. 화가와 그는 같은 스승 문하에서 공부했고, 벼슬살이를 하며 자주 만날 수 없게 되자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약속을 했다. 그가 시를 한 수 지어 보내면 화가는 그에 맞춰 그림 한 점을 그려 보냈다.

시화에서 쌍벽을 이룬 두 사람은 사천 이병연(1671~1751)과 겸재 정선(1676~1759)이다. 평생지기가 세상을 떠날 즈음, 화가는 장맛비가 그친 후 북악산 줄기 산등성이에서 바라본 인왕산 자락의 풍광을 담은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그렸다. ‘비갤 제’(霽)와 ‘빛 색’(色)을 쓰는 한자말 제색은 ‘비가 갠 후 맑은 하늘색’을 의미한다.

진경산수 화가 겸재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인왕제색도’가 지난 10월 5~31일 국립 광주박물관에서 전시됐다.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품의 첫 지역 나들이인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찾은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겸재의 명작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먼저 작품 해설 영상을 본 후 실제 작품 속에서 인왕산 정상의 거대한 암벽인 ‘치마바위’를 비롯해 빗물이 모여드는 ‘수성동 계곡’, 푸른 단풍나무가 있는 골짜기 ‘청풍계’를 일일이 찾아보았다. 작품 앞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진품을 직시하면 겸재가 보았을 ‘인왕산의 비 갠 경치’가 눈앞에 펼쳐졌다. 묵의 짙고 옅음을 조절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내려 그은 붓놀림이 생생했다.

유홍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은 ‘화인열전1’(역사비평사)에서 겸재에 대해 “그는 조선적 산수화를 창시하고 완성했다”며 “당대의 문화적 성숙에 힘입어 이를 자신의 숙명적 과업으로 알고 신분을 떨쳐버리고, 남들이 천하다고 비웃는 소리에 괘념치 않고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화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열정과 의지로 이와 같은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평가한다.

270여 년 전에 그려진 진경산수화 한 점은 겸재와 사천, 그리고 당대 예술사 등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박물관을 찾은 시민들은 안목 높은 수집가의 컬렉션 덕분에 더없는 안복(眼福)을 누렸다.

/송기동 예향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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