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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수도’ 광주의 속살-박성천 여론매체부 부국장
2022년 09월 27일(화) 22:30
“올해 출판 지원을 받았지만 현실은 작품만 붙들고 있을 수 없다. 글만 써도 시간이 부족한데 현실은 다른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예전에는 학교 강의도 나가고 아이들도 가르치면서 틈틈이 작품 활동을 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외부 강의나 작품 청탁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시인 A 씨의 말이다. 그는 일찍부터 남다른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고 그만의 시 세계를 일궈 왔다. 그러나 요즘만큼 힘든 적이 없다. 생활적인 면이 신경 쓰이다 보니 온전히 글에 집중할 수 없다. 좋아하는 시를 쓰고 창작 활동을 지속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사실을 부쩍 절감한다.

비단 시인 A 씨만 창작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자연을 그려온 화가 B 씨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원금에 목마른 ‘배고픈’ 예술인들

“예전과 다르게 재료비가 많이 인상됐다. 이전에는 캔버스 150호가 24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37만 원으로 50% 넘게 올랐다. 액자값도 10호 기준 6만 원이었지만 지금은 12만 원으로 100%나 인상됐다. 코로나 이전에는 어느 정도 그림이 팔렸지만 이후로는 판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A 시인, B 화가는 일명 전업작가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들에게 시와 그림은 삶의 존재 이유이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에술의 길을 포기할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삶이 팍팍한데 굳이 예술을 붙들고 있느냐”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랫동안 창작의 길을 걸어온 이들이 다른 진로를 모색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지난달 ‘배고픈’ 광주 예술인들의 단면을 보여 주는 일이 있었다. 광주문화재단이 전업 예술인을 대상으로 일상회복 지원금 50만 원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지원금 안내문이 게재되자마자 수백 명의 신청자가 몰려 재단 서버가 한동안 다운됐다. 이유인즉슨 ‘선착순 선정’이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혹여 50만 원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예술가들은 자정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이 과정에서 60여 명 예술인의 이름과 연락처, 주민번호 등이 잠시 유출됐다. 재단은 당시 “선착순으로 지원 대상자를 선정한 것은 혹시 모를 심사의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 모든 예술가에게 지급하지 못한 부분은 아쉽게 생각한다. 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반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화 수도’라고 일컫는 광주에서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하기에는 못내 씁쓸하다. 문화 수도 광주의 ‘속살’을 보여 주는 것은 비단 그것만이 아니다. 지난해 문화재단이 광주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 소득은 451만 원이었다. 코로나 기간이라는 사실을 감안해도 이전의 766만 원에 비하면 거의 반토막 수준이었다. 예술 소득을 포함한 연평균 개인 소득은 1430만 원으로 이전 1894만 원에서 약 500만 원 가까이 감소했다.

문화 인프라 면에서도 문화 수도 광주의 상황은 열악하다. 국토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지역간 삶의 질 격차, 문화·보건·교육’ 보고서를 보면 광주는 도서관과 미술관 등 문화시설 인프라를 비롯해 공연 횟수 등이 전국 최하위 수준이었다. 대표 문화기반시설인 국·공립 도서관은 24곳에 불과해 전국 시도 평균 69곳에 비해 35% 수준이었다. 다른 문화시설도 전국과 비교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미술관은 14개, 문화예술회관 7개, 지방문화원은 5개밖에 되지 않는데 비해 전국 시도 평균은 각각 18개, 15개, 14개에 달했다.



문화 인프라와 창작여건 조성 시급

지난 25일 블랙핑크가 케이팝(K-POP) 걸그룹 최초로 미국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라 역사를 새로 썼다. 얼마 전에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등 6관왕에 올랐다. 그에 앞서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는 언어의 장벽을 뚫고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그뿐인가. 방탄소년단(BTS)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연상했을 때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로 각인될 만큼 K컬처의 브랜드가 됐다.

그러나 안으로 눈을 돌려 문화수도 광주를 돌아보면 답답해진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예향이라는 수사 뒤에 가려진 광주 문화의 현주소는 한마디로 외화내빈(外華內貧)이다. 문화 인프라와 창작 여건 면에서는 여전히 변방 수준이다. 화려한 수사와 네이밍은 예술인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때라야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배고픈’ 광주 예술인에게 문화 수도는 환상, 아니 허상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