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금융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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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금융 소외
2022년 04월 05일(화) 02:00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첫 구절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로 시작한다. 세상이 많이 바뀌고 쏜살같이 돌아가기 때문에 노인이 살아갈 만한 나라가 아니다는 의미다. 노인은 지혜와 경험을 가진 현명한 사람인데, 세상은 지혜로운 노인이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아 살기 힘들다고 한탄한 것이다.

예이츠의 한탄은 100여 년이 흐른 지금 더욱 뼈저리게 다가온다. 며칠 전 70대 스페인 노인의 청원이 화제가 됐다. 은퇴한 비뇨기과 의사인 카를로스(78)가 전 세계 청원 웹사이트인 ‘체인지’에 “나는 바보가 아니라 늙은 것 뿐이다”라는 글을 올렸는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파킨스병으로 수전증을 앓는 카를로스는 현금자동입출금기기(ATM)에서 돈을 인출하기가 어려워 창구를 통해서만 은행 업무를 봐 왔다. 그런데 거래 은행이 갑자기 앱을 통해서만 업무를 보도록 방침을 바꾸자 노인들의 금융서비스 접근성을 보장해 달라고 청원을 낸 것이다. 사연이 화제가 되자 스페인 정부와 은행은 노년층에 창구 접근 우선권을 부여하고 앱과 웹사이트 간소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노인들이 디지털 금융에서 소외받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은행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대면 서비스를 줄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연평균 4.2% 증가하는데 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ATM과 은행 점포는 7% 이상 줄고 있다. 실제로 최근 1년 사이 전국에서 문을 닫은 점포만 317곳에 달하고 광주·전남에서도 4년 동안 24개가 줄었다.

노인들은 금융상품에서도 소외받고 있다. 노인들의 80% 이상이 점포를 방문해 적금을 들다 보니 비대면 가입자에게 주는 우대 금리 혜택을 받지 못하고 노인 우대 상품도 없다. 청년들에겐 연 10%의 ‘청년 희망 적금’이 인기리에 판매 중이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0년 동안 월 70만 원씩 적금을 부으면 1인당 1억 원을 만들 수 있는 ‘청년 도약 계좌’까지 준비 중이다. 정녕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걸까.

/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bung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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