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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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관직
2022년 04월 01일(금) 00:30
우리나라에서 국무총리라는 명칭은 역사적으로 갑오개혁 이후 영의정이 총리대신이 된 것을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왕 아래 최고위 관직이었던 영의정에 대한 일화는 무수히 많다. 조선시대 명재상으로는 황희, 유성룡, 맹사성, 채제공 등 여러 명을 들 수 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에 비춰 최고의 영의정을 꼽으라면 단연 이원익일 것이다.

조선시대 가장 큰 변란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인조 반정과 이괄의 난, 정묘호란 등 내우외환을 겪으면서도 대동법과 같은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친 덕분에, 이원익은 왕이 세 번이나 바뀌어도 여섯 번이나 영의정 자리에 올랐다.

선조는 임진왜란을 극복하기 위해 이원익을 영의정으로 선택했다. 선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아버지의 신하들을 모조리 바꾸면서도 영의정만큼은 이원익을 모셨다. 당파를 떠나 모든 신하들이 인정하고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이원익은 정권 안정에 꼭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가 선택한 인물도 이원익이었다. 아무리 광해군이 폭군이라고는 하지만 서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출하고 인조를 왕으로 내세운 탓에 민심이 흉흉했다. 그러자 인조와 서인들은 반정 다음날 자신들의 반대 당파인 남인의 영수 이원익을 영의정에 제수했고 이후 민심이 안정됐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전한다. 인조는 정권의 조기 안정을 위해 문무백관들이 인정하는 이원익의 도움이 절실했던 것이다.

관료로서 이원익의 진가는 왕의 잘못된 의견에 굴하지 않고 반대 입장을 관철시킨 올곧음에 있다. 임란 당시 선조의 시기·질투와 당파 싸움에 정신이 없던 관료들이 이순신을 죽이려 할 때 “왜군이 두려워하는 하는 것은 우리의 수군인데 이순신을 파직하고 원균을 보내서는 안된다”라고 간했다. 이원익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던 선조는 이순신을 백의종군시키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새 정부가 초대 총리 인선에 착수했다고 한다. 부디 대통령의 의견에 ‘아니오’(No)라고 소신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 상대방이 인정할 수 있는 인사를 선임하길 바란다. /채희종 정치담당 편집국장 chae@g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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