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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 유감
2022년 01월 20일(목) 22:40
최근 언론 매체에 가장 많이 노출되고 있는 단어는 ‘현산’이다. 최근 발생한 광주시 서구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신축공사장 아파트 붕괴 사고 때문이다. 6명이 실종되고 이중 1명만 숨진 채 발견된 이 사고 이후 전국의 모든 매체들은 사고 소식과 부실시공 및 수사 상황 등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을 ‘현산’으로 줄여 쓰고 있는 것이다.

한데 이 줄임말 ‘현산’으로 인해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붕괴 사고 첫 기사가 나간 뒤 바로 다음날인 13일 오후 취재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왜 자꾸 ‘현산’이라고 쓰는 겁니까.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와 아무 관련도 없는 해남 ‘현산면’을요. 제발 현대산업개발이라고 써 주세요. 마을 주민들이 난리예요.” 전화기 너머로 여러 명의 격앙된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해남군 현산면 황산마을 이장이라고 밝힌 50대 남성은 이로 인해 현산면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장과의 통화 이후 열린 제작 회의에서 우리는 향후 기사 작성과 편집 시 ‘현산’이라는 단어 대신 현대산업개발로 온전히 표기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와 지명(地名)이 겹쳐 해당 지역 주민들이 들고 나선 경우로 ‘강진’과 ‘삼천포’ 등을 들 수 있다. 경주 지진과 포항 지진 등 큰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언론은 ‘강진 피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수년 전 일이긴 하지만 당시 강진군 주민들은 언론사에 ‘강진’이라는 말 대신 강한 지진이나 대규모 지진 등의 단어를 사용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한때 흔히 쓰였던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졌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는 이야기가 곁길로 흐르거나 어떤 일을 하다가 엉뚱하게 그르친 경우를 뜻한다. 당연히 ‘삼천포’ 지역 이미지에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한 그곳 주민들은 언론 등을 상대로 수년간 시정을 요구했고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말이 됐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지금 해남군 현산면 주민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부실시공으로 숱한 목숨을 앗아간 기업의 이름과 고향의 지명이 겹친다면 좋아할 이 누가 있겠는가.

/채희종 사회부장 chae@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