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밤 - 오광록 서울본부 부장
2024년 12월 3일 밤, 시작은 평온했다. 가깝게 지내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소주 몇 잔을 곁들인 저녁식사는 계엄선포 30분 전에 마무리됐다. 이들 의원들은 ‘절묘한 타이밍’에 신속하게 차량을 국회로 돌려 가장 먼저 국회 담장을 넘고 계엄군을 밀쳐내는 ‘영웅적인 순간’의 주인공이 됐다. 결국 이들은 국회 계엄 해제를 통해 잠시 멈춰버린 민주주의의 초침을 돌게했다.
문제는 역사적 현장을 기록해야 할 ‘한 놈의 기자’는 잠들어 있었다는 것. 광주의 참상을 묵묵히 기록했던 광주일보는 호외를 통해 민주시민에게 계엄의 부당함을 알리기로 했고 계엄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편집국 출입문을 봉쇄한 뒤 대통령실 출입기자인 필자를 수소문했다. 흔들어 깨우는 후배도 있었지만 필자는 폭탄주를 돌리는 윤석열처럼 고집을 꺾지 않고 계속 잠들었다.
1980년 5월 밤마다 울리는 총소리에 잠못 잤던 광주 학동 허름한 골목 안 일곱살배기에게 40여년 지나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 앞마당에 내렸다”는 말은 “술 더 마시러 갈 것인데 주정뱅이는 계속 잠이나 자”라는 ‘충청도식 비유’로 들렸다. 다음 상황은 설명하지 않는 게 이 땅의 기자들에 대한 예의다. 다만 짤리지는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계엄해제 이후였다. 현장을 지키지 못한 ‘술취한 자의 부끄러움’으로 당시 현장에서 맹활약한 의원실 보좌진이 직접 찍은 영상을 되돌려 보며 기사화 했다. 원래 찔리는 사람일수록 완벽을 추구하는 법. 사달은 모 공중파 방송국에서 필자에게 스튜디오 출연을 요청하면서 벌어졌다. “국민에게 그날 밤 일을 생생하게 들려달라”고 작가는 요청했다. 한사코 거절했지만 이유를 제대로 말할 수 없어 난처했다. 찔리는 놈은 대범해진다. 지금 상황이 너무 급박해 한시도 국회를 비울 수 없다는 쉰소리가 흘러나왔고 애국심이었는지 작가는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다”는 답변으로 필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본인의 일보다 ‘모두의 가치’를 ‘당연하게’ 먼저 생각하는 국민의 마음이 결국 비상계엄을 막아냈다는 소중한 경험을 숙취 속에서 얻었다. 이제는 말하겠다. 실은 잠을 잤노라고, 그리고 거짓말 해서 미안하다고.
/오광록 서울본부 부장 kroh@kwangju.co.kr
1980년 5월 밤마다 울리는 총소리에 잠못 잤던 광주 학동 허름한 골목 안 일곱살배기에게 40여년 지나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 앞마당에 내렸다”는 말은 “술 더 마시러 갈 것인데 주정뱅이는 계속 잠이나 자”라는 ‘충청도식 비유’로 들렸다. 다음 상황은 설명하지 않는 게 이 땅의 기자들에 대한 예의다. 다만 짤리지는 않았다.
본인의 일보다 ‘모두의 가치’를 ‘당연하게’ 먼저 생각하는 국민의 마음이 결국 비상계엄을 막아냈다는 소중한 경험을 숙취 속에서 얻었다. 이제는 말하겠다. 실은 잠을 잤노라고, 그리고 거짓말 해서 미안하다고.
/오광록 서울본부 부장 kroh@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