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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책 쓰기] 가슴 속 글쓰기 씨앗, 원고지에 심으면 ‘나도 작가’
유튜버·덕후·직장인·주부 등
평범한 사람들의 출판 도전 활발
까막눈 어르신들 한글 깨친 후
글 위한 글 아닌 일상 생활 기록
2021년 10월 12일(화) 09:00
“나도 책 한번 써볼까?”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시대다.

지자체의 자서전쓰기 프로그램과 독립출판을 통해 ‘내 인생의 첫 책’을 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온 글쓰기의 열풍에 대해 살펴본다.

◇글 ‘읽는’ 시대에서 ‘쓰는’ 시대로=“비록 자랑스럽지 않지만 스스로 삶을 돌아보며 지내온 삶을 되짚어 보는 기회를 갖고, 그러한 나의 삶을 일부라도 기록으로 남기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전해보고자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써봤다.”

올해 75살인 강노섭씨는 지난 2017년 11월 펴낸 자서전 ‘초원은 잡초가 지킨다’ 책머리에서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밝힌다. 혼자서 자서전을 쓰자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때마침 광주시 서구청에서 마련한 6개월 과정의 ‘어르신 자서전쓰기 사업’에 참여했다.

중등 2학년 때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에게 ‘겁 없이’ 편지를 보내 답장을 받았던 일을 비롯해 젊은 시절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동분서주(東奔西走)하던 일, 그리고 60대에 접어들어서 새롭게 도전한 국가공인 한자실력급수 1급 합격과 국궁(國弓) 입문 등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담하게 200여 쪽의 책에 갈무리했다.

누구나 글을 쓰고, 책으로 엮을 수 있는 시대다. 요즘 대중들의 일상은 ‘손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 보급에 따라 페이스 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밀착돼 있다. 많은 사람들의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점차 내 이름을 붙인 한 권의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누구나 자신의 책 한권 갖고 싶어 하는 시대”=지난 2013년 세상을 떠난 고(故)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대표는 ‘내 인생의 첫 책 쓰기’(오병곤·홍승완 지음) 추천사에서 “아마추어 작가들의 시대, 누구나 자신의 책 한권쯤 갖고 싶어 하는 시대, 누구나 지식의 창조에 참여하는 시대, 나는 그런 혁명적인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고 밝혔다. 책이 출간된 시점이 지난 2008년인 점을 감안하면 구 대표는 요즘과 같이 유례없는 글쓰기와 출판 시대의 도래(到來)를 일찌감치 예견한 셈이다.

광주시 동구청이 마련한 ‘생애출판사업’에 참여한 어르신들과 ‘청년 멘토단’ <광주시 동구 제공>
무엇보다 글을 쓸 수 있는 다양한 매체 등 기회가 많아졌다. 자신의 소통공간인 블로그와 페이스 북을 비롯해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언론매체에도 자기 스타일의 글을 올릴 수 있다.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브런치’를 통해서도 글을 연재한 후 출판할 수 있다. 특히 광주 동구청·서구청과 순천시, 담양군 등 각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어르신 자서전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일생을 되돌아보는 자서전을 만들 수도 있다. 광산구 ‘이야기꽃도서관’에서는 성인을 대상으로 그림책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기성 출판사 외에 독립출판 등 책을 낼 수 있는 채널도 넓어졌다. 동네 책방을 찾아 독립 출판된 책 제목과 내용을 보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낸 다양한 책들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출판사 편집자의 인정을 받고 내 이름을 붙인 책을 세상에 내보이기까지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별다른 이력이 없는 무명의 작가라면 무수히 출판사의 문을 노크해야만 한다.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온 글쓰기 열풍은 필자들의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과거에 대학교수와 CEO, 의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가 주로 책을 썼다면 요즘은 아마추어 작가와 ‘덕후’(한 분야에 깊게 심취한 사람), 스타 유튜버, 직장인, 주부 등 다채로워졌다.

◇“기록함으로써 할매들의 생애는 역사 속으로 편입”=요즘과 같이 ‘누구나 자신의 책 한권쯤 갖고 싶어 하는 시대’에 곡성군과 순천시,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이 직접 엮은 시집도 눈에 띈다. 까막눈이었던 어르신들은 ‘문해교실’에서 한글을 깨친 후 시를 쓰게 됐다.

“사박사박/ 장독에도/ 지붕에도/ 대나무에도/ 걸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 잘 살았다/ 잘 견뎠다.”(윤금순 ‘눈’ 전문)

“…일곱 물때에 가 봤더니 밀물 썰물이/ 몇 번이나 들락날락 했건마는/ 이름 석 자 이름 석 자 지워지지 않고/ 쓴 그대로 살아 있네/ 나의 바다 나의 개펄/ 개펄 이고 지고 가고 싶네.”(김옥례 ‘나의 바다’중)

곡성군 입면 서봉리 탑동마을에 사는 윤금순 할머니를 비롯한 동네 할머니들은 김선자 곡성 ‘길 작은 도서관’ 관장의 지도로 한글을 깨친 후 시를 쓰게 됐다. 이렇게 여러 할머니들이 쓴 시는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2016년)와 ‘눈이 사뿐사뿐 오네’(2017년)로 만들어졌다. 또 지난 2월에는 그림책 ‘꽃을 좋아한 게 그림마다 꽃이여’를 펴냈다.

김옥례 할머니는 80이 다 된 나이에 목포 공공도서관를 찾아 ‘시창작 강의’를 들었다. 평생 ‘배움’에 갈증을 느꼈던 김 할머니는 이대흠 시인·소설가의 지도를 받으며 ‘마치 누에가 제 몸에서 실을 뽑아내듯이’ 살아온 인생의 무늬가 깃든 시를 썼다. 그리고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시집 발간비용을 마련해준 뜻있는 이들의 도움으로 2016년에 첫 시집 ‘나의 바다’를 펴낼 수 있었다.

김훈 작가는 산문집 ‘연필로 쓰기’에 실린 ‘할매는 몸으로 시를 쓴다’에서 곡성과 순천, 칠곡 할매들의 글을 읽고 난 생각을 이렇게 밝힌다.

“할매들의 글은 글 짓는 자의 글이 아니고 책 읽는 자의 글이 아니다. 할매들의 글은 생활이고 몸이다. 할매들이 한글을 깨쳐서 겪은 일들을 기록함으로써 할매들의 생애는 역사 속으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강화도 ‘이루라 책방’내 필사 공간. /연합뉴스
◇노동자, 사회학자·언론학자의 소설가 변신=가슴 속에 품은 글쓰기 ‘씨앗’, 문학에 대한 꿈은 새로운 작가를 탄생시킨다.

삼성전자 반도체 엔지니어였던 이미예(31) 작가는 퇴사한 후 첫 판타지 장편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썼다. 당초 크라우딩 펀딩 방식으로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라는 제목의 전자책을 선보였다. 하지만 독자들의 뜨거운 요청으로 지난해 7월 종이책으로 출간돼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전자책을 종이책으로 만든 첫 사례이다. 서울 성수동 아연 주물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 출신 김동식(36) 작가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창작소설을 올리기 시작하다가 2017년에 단편소설집 ‘회색인간’ 등 3권을 동시에 출간하며 데뷔했다.

신예 작가들과 대조적으로 ‘늦깎이’ 소설가들의 등장도 눈길을 끈다. 원로 언론학자인 김민환(76) 고려대 명예교수와 사회학자 송호근(65) 포항공대 석좌교수가 대표적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연감 2020’에 따르면 2019년 국내도서 출판건수는 1만161건(일반 단행본 8048건, 아동 단행본 2113건), 번역도서 출판 건수는 3563건이다. 반면 같은 해 연간 종이책 독서량은 성인(19세 이상) 평균 6.1권에 불과하다. 그마저 2017년 8.3권에서 2.1권이 줄어든 수치다.(문화체육관광부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독서 없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장강명 소설가는 2020년 펴낸 ‘책 한번 써봅시다’에서 “내 원고를 편집자가 선택하고 독자들이 읽어주길 바란다면 나 역시 남의 책을 발견하고 추천하는 독자의 한 사람이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왜 글을 쓰는가? 책 엮기는 나에게 무엇인가? 평생 농사를 지어온 시골 할머니와 직장인, 덕후, 노동자, 주부 등 평범한 사람들이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요즘 시대에 던지는 근원적 물음이다. ‘하루 1시간, 책 쓰기의 힘’ 저자인 이혁백 ‘북마크 아카데미’ 대표는 하루 1시간동안 글쓰기를 하며 당신의 인생에 투자하라며 이렇게 조언한다.

“당신의 이름으로 된 책 한권의 무게는 비록 몇 백 그램에 지나지 않겠지만, 책 한권에 담긴 당신의 인생 무게는 가히 가늠할 수 없이 소중하고 위대하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