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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2021년 03월 03일(수) 05:00
‘미얀마’는 우리에게 ‘버마’라는 국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1983년 버마 아웅산 폭발 사건 영향 때문이다. 그해 10월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수행원들과 함께 버마 수도 랭군 아웅산 국립묘지 참배 일정이 잡혀 있었다. 한데 전 전 대통령이 도착하기 직전 폭발로 인해 장관 등 15명이 숨지고 16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버마 정부는 북한의 테러로 결론짓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1989년 이전까지 ‘버마’였던 미얀마는 1962년 군부 쿠데타 이후 나라 이름을 변경했다. 버마라는 국가명이 영국 식민지 시대의 잔재인 데다, 135개 소수민족을 아우르지 못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럼에도 민주화운동 활동가들은 군사 정권에서 붙인 국명인 미얀마와 현 국기를 거부하고 버마라는 호칭과 옛 국기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군부 독재 시절에도 꾸준하게 민주화 시위가 있었고 이 과정에 ‘아웅산 수치’라는 국모(國母)가 있었다.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아웅산 수치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세력은 1988년에 이른바 ‘88항쟁’을 이끌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희생 속에 군사정권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48년간 이어졌던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2010년부터 점차적으로 민간에 정권이 이양되는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지난해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의 국민민주연맹이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자, 군부는 다시 부정선거를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지금 미얀마에서는 양곤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연일 민주화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소셜미디어 해시태그를 통해 미얀마 시민들의 절규가 널리 퍼지고 있다. ‘유엔이 행동을 취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필요한가요?’라는 문구다. 국제사회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뉴스 영상을 통해 군경이 주변 동료들과 함께 낄낄대고 웃으며 시위대를 쫓는 장면이나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을 접하면서 마치 1980년 5월 광주를 보는 듯했다. 당시 광주처럼 철저하게 고립된 미얀마에 국제사회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한 때이다.

/최권일 정치부 부장 ck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