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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 담은 ‘ㅁ’자 주택, 빛으로 채워지다
<4>지국섭·임애리 부부 광주시 화정동 ‘녹원재’
김정선 건축사 설계…광주건축상 수상
외부시선 차단 가족만의 생활공간으로
거실서 ‘차’ 보고 싶은 남편 로망 실현
거실에 놓인 ‘자개장’ 은은한 멋 보여줘
정원·놀이공간 ‘중정’ 가장 큰 자랑거리
카페에 온 듯한 인테리어 또 다른 매력
2021년 02월 23일(화) 22:00
광주시 서구 화정동 주택가에 자리한 2층집 ‘녹원재’는 아담한 중정이 인상적으로 집안 어디에서도 하늘을 볼 수 있다. 1층 왼쪽 거실과 중정, 차고가 일자로 배치돼 있으며 거실 식탁에 앉으면 주차된 차가 한눈에 보인다. < ⓒ사진 김성희>
광주시건축상 수상작 중 이 집을 취재하고 싶었던 이유는 작은 중정(中庭)의 존재였다. 1층과 2층 사방에서 마당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시사철 하늘을 마주할 수 있고, 꽃과 나무를 볼 수 있는 탁 트인 공간을 집 안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면 요즘같은 시절에 딱일 듯 싶었다.

‘녹원재’가 자리한 곳은 광주시 서구 화정동 오래된 주택가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좌우 높낮이가 다른 독특한 붉은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따로 대문이 없어 바로 현관문을 통해 실내로 들어섰는데,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물건이 거실을 차지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 화려한 자개장이다. 집을 지을 때 이 자개장의 존재는 ‘꼭 고려할 대상’ 중 하나였다.

‘녹원재(대지 면적 252.70㎡, 건축 면적 141.94㎡)’는 지국섭·임애리 부부와 초등학교 4학년, 2학년 두 아이의 보금자리다. 상무지구 아파트에 10년간 살다 지난 2019년 집을 지어 이사를 왔다.

“집을 지을 때 요청드렸던 게 거실에 자개장을 놓는 거였어요. 친정 엄마가 주신 건데 엄마의 애틋한 마음을 곁에 두고 싶었거든요. 엄마가 ‘내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써라’하셨죠. 아파트 살 때는 안방에 넣어두었는데, 자개가 너무 아름답기도 해 꼭 거실에 두고 싶었어요.”

다락방이 숨겨진 아들방. 베란다에는 작은 정원을 조성했다.
부부는 외곽 지역 주택 단지에 집을 지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상권과 도시적 인프라가 갖춰진 구도심 조용한 주택가에 살고 싶어 화정동 일대에서 적당한 곳을 물색했다. 어느 날, 부동산으로부터 노부부가 방금 집을 내놓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바로 그날 계약을 했다. 집 바로 곁에 작은 공원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공원이 조성된 때가 임 씨가 태어난 1983년이어서 ‘운명인가’도 싶었다.

‘녹원재’는 부부의 꿈과 필요, 특히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임 씨의 취향이 많이 반영돼 있다. 엘에이앤(LAN) 건축사무소 김정선 건축사는 이들과 오랜 대화를 거쳐 외부 시선을 최대한 차단하고, 중정을 통해 빛을 받는 ‘ㅁ’자 형 주택을 설계했다. 남향의 집터에 건물을 남향으로 배치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이들 부부의 생활방식과 맞지 않았다. 너무 개방적이지 않으면서 저녁시간에 음악을 듣고 파티 등도 할 수 있는 생활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 결정된 사항이었다.

집에 들어서면 다른 집의 거실보다 훨씬 어두운 느낌을 받는다. 보통 아파트에 살다 단독주택을 짓는 이들은 층고를 높이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집은 아파트 층고를 그대로 적용했다. ‘빛’에 대한 생각도 달랐다. 거실에서 많이 생활하는데 빛이 쏟아져 들어오기보다는 어두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특성으로 메인 거실 등을 없애고 부분 조명을 활용했다. 대신 주방은 중정을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도록 했다.

자연을 담은 작은 정원이자, 아이들의 놀이공간, 지인들과 모임 공간 등으로 활용되는 중정은 잔디 대신 자연스럽게 자갈을 깔고 단풍나무, 은목서 등을 심었다. 해먹이 놓여 있는 이 곳에서 아이들은 즐겁게 뛰어논다.

1층 공간에서 눈길을 끄는 건 거실과 중정, 주차장이 일자로 연결돼 널찍한 공간을 확보한 점이다. 거실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차고 안에 주차된 차가 보인다. 차를 좋아하는 남편의 꿈을 반영한 구조다. 차를 바라보며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는 건 남편의 로망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식탁을 주방에 배치하지 않고 식사 뿐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대형 탁자를 중정을 바라볼 수 있는 거실에 놓았다.

응접세트와 오디오 기기가 놓인 뒤 쪽으로 대나무 장식의 미닫이 문이 눈길을 끄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이 집 계단은 초등학교 계단 높이와 일치해 오르 내리기 편안한 게 특징이다.

2층의 통로에 둔 휴식 공간. 베란다로 나가면 중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2층은 아늑하고 화사한 느낌이 든다. 계단 오른쪽 옆의 부부 침실은 북향으로 배치했다. 침대 옆 작은 창이 인상적이다. 침대에 누우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운치를 더한다. 옷방과 화장실을 일렬로 배치하고 남향 쪽으로 큰 딸 아이의 방을 두었다. 방에는 할머니가 쓰던 또 다른 자개장을 놓았다. 할머니, 엄마, 딸로 이어지는 3대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다.

계단에서 직진하면 아들 방과 화장실이다. 작은 화장실은 딸 아이가 크면 혼자 쓰게 할 생각이다. 자신의 방을 보여주고 싶어하던 아들의 안내로 방을 둘러봤다. 누나 방에 비해 조금 작다 싶었는데, 비밀이 숨겨져 있다. 커튼을 젖히니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작은 텐트가 놓여 있는 이 곳은 두 아이의 비밀 아지트다.

다락방이 숨겨진 아들방. 베란다에는 작은 정원을 조성했다.
아들방과 딸방의 중간 통로에는 작은 ‘만남의 공간’을 만들었다. 가족들이 오며 가며 ‘따로 또 같아’ 쉬어가는 곳이다. 2층에서는 어디서든 유리창을 열어두면 밖의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 아들 방과 가족실 쪽에서는 밖으로 나갈 수 있다. 특히 아들 방 바깥으로는 작은 정원을 조성해 또 하나의 ‘쉼터’를 만들었다.

‘녹원재’의 또 다른 매력은 임씨가 대부분 아이디어를 낸 인테리어다. 아파트에 살 때도 그녀의 독특한 인터리어 컨셉은 여성잡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1층 거실에 들어서면 얼핏 카페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요즘 유행하는 북유럽 스타일의 화이트 계열 인테리어 대신 대담한 색깔과 문양의 벽지와 바닥 타일, 자기, 팝아트 그림 등이 눈길을 끈다. 주황색 벽이나, 계단 앞에 설치된 문도 담양에서 직접 대나무를 가져와 제작하는 등 집안 구석구석에는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많다. 아이들 방에 성인용 가구를 들여놓은 건 외국 친구들이 가구를 대대로 물려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다. 아이들이 자신이 쓰던 가구를 어른이 된 후 결혼 후에도 가지고 가 계속 사용하면 그 속에 담긴 시간과 추억까지도 저장하는 거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주할 때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가 개인생활이 침해받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가족의 생활 패턴을 충분히 고려해 집을 지으면 오히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개인생활을 할 수 있는 게 주택인듯합니다. 무엇보다 획일화된 아파트와는 너무 다르고 자유로운 공간, 완전히 내 삶을 실현시킨 공간에서 산다는 행복은 뭐라 말할 수 없지요.”

자개장이 놓인 거실은 독특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임 씨는 단독주택에서도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지 않고 때론 따뜻한 공동체의 기운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자개장을 거실에 놓고 싶었던 엄마, 좋아하는 차를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게 로망이었던 아빠, 다락방이 있어 너무 행복한 두 아이. 네 가족의 ‘희망사항’이 구현된 집은 늘 머물고 싶고, 무엇이든 다 이뤄질 것 같은 마법같은 공간이 되었다.

/글·사진=김미은 기자·사진작가 김성희 mekim@kwangju.co.kr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집’을 찾습니다. 독자들과 함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신 분은 이메일(mekim@kwangju.co.kr) 로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