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고규홍의 ‘나무 생각’] 60년에 한 번 꽃 피우는 신비의 식물
2021년 01월 20일(수) 23:00
세상의 모든 나무는 꽃을 피운다. 꽃은 자손 번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절차로, 모든 식물의 생존 본능에 따른 필수적 현상이다. 그러나 생김새나 피어나는 시기가 제가끔 다른 탓에 꽃을 볼 수 없는 나무들이 있다. 이를테면 느티나무의 꽃은 4월쯤에 피어나지만, 관찰하는 건 쉽지 않다. 큰 몸피와 달리 느티나무의 꽃은 지름 3밀리미터 정도로 작게 피어나는데다 황록색의 꽃이 잎겨드랑이 부분에서 피어나서 잎사귀와 구별하기 쉽지 않다. 꽃이 피어도 일쑤 스쳐 지나기 십상이다. 꽃이 피어나기는 하지만, 존재감은 두드러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

꽃을 보기 어려운 나무로는 대나무도 있다. 대나무의 개화에는 현대 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가 들어 있다. 우선 꽃이 하나의 나무에서만 피어나지 않고 더불어 자라던 대숲의 모든 대나무에서 일제히 피어난다는 것부터 아리송하다. 또 꽃이 해마다 피어나지 않고, 60년이라는 긴 주기를 갖고 피어난다는 건 더 놀라운 일이다.

대나무 한 그루의 수명이 길어야 고작 20년이고 보면, 꽃 한 번 피우지 못하고 그냥 죽는 나무들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1백 년을 채 못 사는 사람으로서 대나무 꽃을 보지 못하는 건 특별한 일일 수 없다. 대나무가 자라는 환경 조건이 현저하게 다른 곳이어도 개화 주기만큼은 똑같다. 현대 과학은 대나무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 긴 시간을 계산하는지 풀어내려고 애썼지만,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했다.

대나무 개화의 신비는 더 이어진다. 일제히 꽃을 피운 대밭의 대나무들은 꽃이 지면서 동시에 모두 말라죽는다.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6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쌓아온 모든 힘을 다 쏟아부은 뒤에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다시 예전처럼 무성한 대숲을 이루려면 적어도 10년 이상 걸린다. 그래서 예전부터 대나무의 개화는 불길한 조짐으로 여겼다. 물론 꽃이나 나무에 대한 각 지방의 문화와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일부 지방에서는 대나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반기는 곳이 있기는 하다.

흔히 식물을 크게 둘로 나누어 목본식물과 초본식물 즉 나무와 풀로 나눈다. 한데, 대나무는 이름에 ‘나무’가 붙어 있어서 나무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옛 사람들은 대나무를 비목비초(非木非草), 즉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니라고 했다.

대나무는 소나무·느티나무·은행나무처럼 사계절이 모두 지난 뒤에도 줄기가 그대로 남아서 수십 년을 살아가니 나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이테가 새겨져야 할 줄기 안쪽이 텅 비어있다는 점은 나무로 보기 어려운 점이다. 줄기가 텅 비어있는 특징을 ‘공동(空洞) 현상’이라 부르는데, 이는 나이테가 새겨지는 줄기 안쪽의 심재가 발달하는 나무와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특징이다. 시인 함민복은 대나무 중심 줄기가 텅 비어 있는 특징을 “공기의 치욕으로/ 빚어진 아,/ 공기, 그 만져지지 않는/ 허무가 나의 중심 뼈대”(‘대나무’)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대나무를 풀이라고 부르려 해도 문제는 남는다. 풀은 잎이 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에 줄기가 시들어 죽는다. 여러해살이풀이라 해도 줄기는 시들어 죽고, 뿌리만 남아서 겨울을 보낸다. 그런데 대나무는 몇 해를 두고 잎도 시들지 않고 줄기도 살아 있으니 풀이라 하기에도 맞지 않다. 이 같은 이유로 나무를 건축이나 가구의 재료로 쓸 때 목재라 부르지만 대나무는 ‘죽재(竹材)’라고 구분해 부른다.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는 건 그래서다.

그러나 식물학적으로 엄밀히 짚어 보면 대나무는 나무보다 풀 쪽에 가깝다. 개화 주기가 특별하기는 해도 분명히 꽃 피운 뒤에 열매를 맺고 죽는 건 여느 풀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사철 푸르른 나무여서 대나무는 소나무와 함께 군자의 기상과 선비의 절개 등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졌다. 대나무를 가까이 한 우리 선조들은 거기에 덧붙여 마디가 뚜렷해서 절도의 미덕, 속이 텅 비었다 해서 욕심 없는 삶의 미덕을 상징하는 나무로 아끼며 오랫동안 심어 키웠다. 대나무야말로 앞으로도 오래 우리 곁에 잘 심어 키우며 돌보아야 할 우리의 나무, 아니 풀이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