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곡(哭), 의인 곽 변호사!
2021년 01월 04일(월) 07:00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우석대 석좌교수
5·18의 의인 곽준흠 변호사가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5월 40주년을 맞는 5·18의거를 회고하면서 썼던, 잊히지 않는 의인에 대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지난달 저승으로 소천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벌써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에 울컥 솟는 비통함을 참지 못했다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지요. 그런 지 6개월여 만에 하느님은 그를 불러갔습니다. 운명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서울에서 광주로 달려와 그의 빈소를 찾았습니다. 가족들과 임종을 지켜보았노라는 로마노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는 분명코 천당으로 갔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이 말하시기를, “그렇게 통증에 괴로워하던 환자가, 운명하기 며칠 전부터는 모든 통증이 사라진 듯 참으로 안온하고 편안하게 깊은 잠에 빠지더니, 슬그머니 숨을 거두면서 운명하셨다”라고 하였습니다. 곽 변호사는 판사 시절부터 천주교에 귀의하여 구약을 수없이 읽었고, 천주교의 교리를 깊이 연구하여 생과 사에 대한 두려움도 넘어선 지 오래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의인은 역시 하느님도 알아보고 성령이 임하여 곱고 온전하게 이승을 떠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곽 변호사는 80년 5·18 당시 현직 판사로 재직하면서 직접 항쟁의 대열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살인마들의 무자비한 학살 만행에 극한의 분노를 참지 못했습니다. 당시 폭동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피신 중이던 필자가 광주를 탈출하여 서울로 도피할 모든 경비를 지원해 주고, 탈출로를 찾아내 무사히 피하게 해준 사람이 바로 곽 변호사였습니다. 수배자를 숨겨 주면 범인 은닉죄로 가혹한 일을 당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문제가 되면 판사 옷 벗고 변호사 개업하면 되지 않느냐라면서 담대한 마음으로 죽을 고비를 맞은 필자를 살려준 의인이 바로 그 분이었습니다.

나의 절친한 친구이자 후배였던 그는 이제 가고 없습니다. 뒷날 필자가 검거되어 상무대 영창에 갇히자 가족들의 면회도 불허되던 때, 그는 판사의 신분을 이용해 법무관들을 통해 여러 차례 면회를 왔습니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위험 속에서 했던 일이지만, 사실이 탄로되면 결코 무사히 넘어갈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의인만이 지니는 용기를 지녔던 분입니다.

광주 의거의 참된 의미는 그런 데에 있습니다. 무참히 학살되고, 무수히 구타당하던 사람들을 보면서 광주 시민은 모두가 분노에 치를 떨며 용기를 냈습니다. 공분(公憤)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남녀노소가 헌혈의 대열에 서고,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들에게 먹여 주던 아주머니들의 대열 역시 모두 분노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분노에서 용기를 낸 것은 아닙니다. 기득권에 안주하던 높은 신분이나 많이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보신에 열중하느라 분노를 속으로 감추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판사라는 높은 신분의 지위에 있던 곽 판사는 공분을 참지 못하고, 그렇게 의로운 의인들만이 가능한 엄청난 일을 해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의인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빈소를 찾아 영전에 무릎을 꿇고 향을 피우며 술 한 잔을 올렸습니다. 평소에 애주가이던 그의 영전에 마지막 술 한 잔을 올리며 곡(哭)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유족들과 함께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슬픔을 이기려고 노력했습니다. 역시 그렇습니다. 옳고 바르게 살고 의롭게 살아간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늘이 복을 내리기 마련입니다. 그것만이라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요.

곽 변호사는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큰아들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둘째 아들과 며느리는 부부 의사입니다. 막내딸은 변호사이고 그의 부군은 의사입니다. 그런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세상에는 ‘하느님은 없다’고 외칠 수밖에 없는 원통한 일도 많지만, 역시 ‘하느님은 계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광주 시민들을 폭도들이라고 그렇게 탄압하던 전두환 일당은, 오랫동안 무자비한 독재 권력을 누리며 모든 국민을 짓밟았습니다. 그러니 바로 그들이 폭도입니다. 이제 그들 폭도들은 내란 수괴가 되고 학살자들이 되어 하늘의 벌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죄를 짓고 악을 행한 무리들이야 반드시 하늘의 재앙을 받기 마련이지만, 분노를 용기로 실천한 의인은 끝내 하늘의 복을 받아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곽준흠 변호사! 삼가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