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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의 창’] 검찰과 공수처
2020년 12월 10일(목) 05:00
흔히들 제멋대로 된 판결을 ‘원님 재판’이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실제 당사자인 조선의 원님들이나 고려의 원님들이 들으면 큰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 보면 과거 ‘원님 재판’이지금의 재판보다 훨씬 공정했으니까 말이다.

고려 우왕 1년(1375)에 원님 즉 지방 수령이 해야 할 ‘수령 5사(事)’가 정해졌다. 농토를 개간하는 전야벽(田野闢), 인구를 늘리는 호구증(戶口增), 세금을 균등하게 매기는 부역균(賦役均), 소송을 명확하게 판결하는 소송간(詞訟簡), 도적을 근절하는 도적식(盜賊息)이 그것이다. 조선은 여기에 교육을 부흥시키는 학교흥(學校興)과 군사를 정비하는 군정수(軍政修)을 추가해서 ‘수령 7사’를 만들었다.(경국대전, 經國大典)

고려의 수령 5사나 조선의 수령 7사는 모두 구두선(口頭禪)이 아니었다. 상급자인 관찰사는 매년 6월 15일과 12월 15일 산하 원님들의 고과를 매겨 조정에 보고했다. 전(殿)은 맨 아래 등급을, 최(最)는 맨 위 등급을 말하는데, 이처럼 각 고을 수령의 치적을 심사하여 중앙에 보고하는 일을 전최(殿最)라 했다. 열 번의 평가에서 모두 상(上)을 받으면 승진하지만 한번만 하(下)를 받아도 바로 파직이었다. 두 번 중(中)을 받으면 봉록이 없는 무록관(無祿官)으로 좌천시켰고, 세 번 중을 받으면 파직이었다.

특히 고위직 출신 원님들에게 더욱 엄격해서 정3품 당상관인 수령은 한 번만 중을 받아도 바로 파직이었다. 수령 7사 중 가장 신경을 쓸 부분이 소송 판결이었다. 서로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소송에서 원님이 자의적인 판결을 내리면 불복자는 바로 항의했고, 이는 전최에서 불리한 고과로 이어졌다. 조선 후기 노론 일당독재가 계속되면서 국가 기강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조선의 원님 재판이 지금보다 공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 파악을 위해 수사권을 여러 기관에 분리시켰다. 현재의 검찰과 비슷한 기관은 사헌부(司憲府)다. 사헌부 수장인 대사헌은 종2품에 불과하지만 이긍익은 ‘연려실기술’ ‘관직전고’(官職典故)에서 “(사헌부 관원이) 정색하고 조정에 서면 모든 관료가 떨고 두려워한다”고 전할 정도로 권위가 있었다. 사헌부 정6품 감찰(監察)에 대해 성현(成俔)은 ‘감찰청벽기’(監察廳壁記)에서 “감찰이 왔다는 소리만 들려도 사람들이 다 몸을 움츠리고 무서워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런 권위는 수사권 독점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었다. 사헌부 관료들은 조정 회의 때 다른 관료들보다 먼저 들어갔다가 회의가 끝난 후 다른 관료들이 다 나간 후에 따로 나갔다. 뒤섞이다 보면 청탁이 있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사헌부는 이처럼 엄격한 처신으로 권위를 쌓았지만 수사권 독점은 없었다. 조선은 사헌부 외에도 의금부·형조는 물론 지금의 경찰청 격인 포도청과 한성부에도 수사권을 주었다. 사헌부는 다른 수사 기관들과 경쟁하며 혹독한 자기 관리로 대표 수사기관이 된 것이었다.

사헌부가 수사를 방기하면 즉각 다른 수사기관이 나서 수사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수사권을 전횡하지 못했고, 범죄 혐의가 있는데도 사건을 덮지 못했다. 이처럼 분산된 수사권이 검찰에 독점된 것은 조선총독부가 1912년 조선형사령을 반포하면서부터인데, 독립운동가들을 자의적으로 때려잡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현재 한국 검찰이 갖고 있는 전근대적인 수사권 독점은 적폐 청산 차원에서도 폐지하는 것이 맞다.

검찰과 법원의 비리도 수사할 수 있는 공수처는 조선으로 치면 의금부와 비슷하다. 그러나 공수처에 비리가 생긴다면 검찰·경찰이 수사할 수 있게 하는 상호 견제가 꼭 필요하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제를 한국의 검찰처럼 잘 보여 준 기관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는 무소불위의 청와대에도 해당된다. 청와대에도 불법이나 비리가 있을 경우, 공수처는 물론 검찰·경찰도 즉각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 선출된 권력, 공약, 정책 운운하는 말장난으로 국법 위에 존재하는 기관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은 촛불 혁명을 통해 스스로가 주인임을 주지시켰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평범한 명제를 보편적 상식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국민 개개인은 마음속에 촛불을 켜고 모든 권력을 감시하는 눈을 부릅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