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외로움 달래준 ‘윤동주’ 다시 설 용기 주네요”
[동주문학상 해외작가상 수상 미국 플로리다 거주 한혜영 시인]
해외서 우리말로 시 쓰는 시인 공모제…문학잡지 등대 삼아 시 창작
1996년 신춘문예 당선…‘검정사과농장’ 문학·삶에 대한 열정 담아
해외서 우리말로 시 쓰는 시인 공모제…문학잡지 등대 삼아 시 창작
1996년 신춘문예 당선…‘검정사과농장’ 문학·삶에 대한 열정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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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 어는 것을 막으려고 밤새 날갯짓하는 청둥오리와 이민자는 많이 닮았습니다. 그만큼 외롭고 고단한 게 이민생활이지요. 이번 수상으로 위로를 얻으니 참 좋습니다.”
지난 28일 서울에서 열린 제5회 동주해외작가상(‘검정사과농장’ 외 4편) 시상식에서 만난 한혜영 시인은 “한국에도 시인들이 많지만 미국에서도 시의 끈을 놓지 않고 몸부림치는 문인들이 많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인은 동주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플로리다에서 입국한 지 2주가 됐다. 그동안 부산에서 자가 격리를 하며 오랜만에 고국의 정을 느꼈다.
동주문학상과 함께 제정된 동주해외작가상은 해외에서 우리말로 시를 쓰는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제로, 광주일보와 ‘시산맥’이 함께 운영한다. 모국어를 사랑하고 윤동주의 시를 흠모하는 많은 해외의 시인들이 한번쯤 받고 싶은 상으로 정평이 나있다.
“청소년 시절에는 윤동주의 해맑은 영혼에 매료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나라를 잃고 괴로워하는 윤동주와 함께 했습니다. 이민을 와서는 디아스포라의 무게감이 더해진 감성으로 윤동주의 시를 대합니다. 고국이 아닌 곳에서 나처럼 외로웠을 시인 생각만으로 윤동주의 시는 성큼 가까워지지요.”
충남 서산 출신인 시인은 지난 1990년 가족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로 이민을 떠났고 올해로 만 30년이 됐다. 당시 이민을 가서 현재까지 같은 곳에 거주 중이다. 한 시인은 “한인이 많지 않은 곳이어서 한국서점은 물론 한인식당도 없다”며 “그럼에도 이번 수상을 계기로 뭔가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가 문단에 데뷔한 것은 지난 1989년 ‘아동문학연구’에 동시조가 당선되면서였다. 그리고 이듬해 이민을 갔다. 요즘엔 인터넷으로 좋은 시를 얼마든지 찾아서 읽을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한국에서 구독하던 잡지(현대시학)를 다시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그 월간지가 유일한 시 선생이었다. 그때만 해도 “누구에게 읽히고 조언을 구할 형편이 못 돼” 시를 어떻게 쓰는지 잘 몰랐다고 한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했다. 마침내 1994년 ‘현대시학’(11월호)에 추천이 됐고, 2년 후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됐다. “창작을 하면서 이게 시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가늠조차 못했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번 심사를 맡은 위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내밀하게 탐구하는 열정과 시인만의 경험적 구체성은 많은 점수를 받았다”고 평했다.
현재 한 시인은 소년소설 분야로도 눈을 돌려 어린이문학을 병행하고 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문학에 대한 열정이 더 샘솟는 것 같다.
이번에 펴낸 창작집 ‘검정사과농장’(상상인)은 그동안의 문학의 열정과 삶을 바라보는 겸허한 자세 등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이성혁 평론가는 이에 대해 “천 갈래 만 갈래 나를 찢어서/ 시를 얻고 사랑을 얻었던” 것, 그 산물이 바로 이 시집이다”고 평한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지난 28일 서울에서 열린 제5회 동주해외작가상(‘검정사과농장’ 외 4편) 시상식에서 만난 한혜영 시인은 “한국에도 시인들이 많지만 미국에서도 시의 끈을 놓지 않고 몸부림치는 문인들이 많다”고 소감을 밝혔다.
동주문학상과 함께 제정된 동주해외작가상은 해외에서 우리말로 시를 쓰는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제로, 광주일보와 ‘시산맥’이 함께 운영한다. 모국어를 사랑하고 윤동주의 시를 흠모하는 많은 해외의 시인들이 한번쯤 받고 싶은 상으로 정평이 나있다.
“청소년 시절에는 윤동주의 해맑은 영혼에 매료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나라를 잃고 괴로워하는 윤동주와 함께 했습니다. 이민을 와서는 디아스포라의 무게감이 더해진 감성으로 윤동주의 시를 대합니다. 고국이 아닌 곳에서 나처럼 외로웠을 시인 생각만으로 윤동주의 시는 성큼 가까워지지요.”
그녀가 문단에 데뷔한 것은 지난 1989년 ‘아동문학연구’에 동시조가 당선되면서였다. 그리고 이듬해 이민을 갔다. 요즘엔 인터넷으로 좋은 시를 얼마든지 찾아서 읽을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한국에서 구독하던 잡지(현대시학)를 다시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그 월간지가 유일한 시 선생이었다. 그때만 해도 “누구에게 읽히고 조언을 구할 형편이 못 돼” 시를 어떻게 쓰는지 잘 몰랐다고 한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했다. 마침내 1994년 ‘현대시학’(11월호)에 추천이 됐고, 2년 후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됐다. “창작을 하면서 이게 시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가늠조차 못했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번 심사를 맡은 위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내밀하게 탐구하는 열정과 시인만의 경험적 구체성은 많은 점수를 받았다”고 평했다.
현재 한 시인은 소년소설 분야로도 눈을 돌려 어린이문학을 병행하고 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문학에 대한 열정이 더 샘솟는 것 같다.
이번에 펴낸 창작집 ‘검정사과농장’(상상인)은 그동안의 문학의 열정과 삶을 바라보는 겸허한 자세 등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이성혁 평론가는 이에 대해 “천 갈래 만 갈래 나를 찢어서/ 시를 얻고 사랑을 얻었던” 것, 그 산물이 바로 이 시집이다”고 평한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