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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동 날개
2020년 11월 18일(수) 05:00
대한민국 제2 민간항공인 아시아나항공의 출범은 극적이었다. 1988년 2월 17일 서울항공으로 면허를 받기까지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경제 부처 관계자들조차 교통부가 2월 12일 제2 민항 면허를 내준다고 공식 통고할 때서야 알게 됐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 불과 며칠 전이어서 5·18로 빚을 진 전두환이 호남 기업을 배려(?)한 것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88서울올림픽과 이듬해 시행되는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를 앞둔 시점이었다. 이미 제2 민항 필요성이 제기된 상태였다는 말이다.

택시에서 시작해 고속버스로 사업 영역을 넓힌 금호그룹은 항공 면허까지 획득함으로써 ‘교통 일원화’라는 꿈을 이뤘다. 금호그룹은 8월 11일 서울항공에서 아시아나항공으로 이름을 바꾸고 색동 날개를 달면서 본격적인 비상을 시작했다. 서울~광주 등 국내선을 시작으로 유럽·미주 노선까지 취항했다.

새 비행기와 4년제 대졸 여승무원을 내세워 차별화를 시도했다. 아시아나 전속 모델은 ‘스타 등용문’이 됐다. 2003년 세계 최대 항공 동맹체인 ‘스타 얼라이언스’에 가입하며 글로벌 항공사로 위상을 높였다. 2009년부터 4년 연속 ‘올해의 항공사’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아시아나항공은 32년간 항공업계에 혁신의 DNA를 심어 왔다. 승무원의 기내 마술쇼, 요리사와 소믈리에의 일등석 고급 음식 및 와인 서비스, 기내식으로 김치 제공, 전 좌석 전면 금연 등은 아시아나항공이 가지고 있는 ‘세계 최초’ 기록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엔 대통령 전용기에서도 대한항공을 제쳤고, 이후 ‘에어포스 원’ 역할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영광보다는 아픈 역사도 많았다. 무리한 확장으로 위기에 빠진 모기업을 살리기 위해 상당 기간 그룹 매출의 60%를 책임지는 ‘캐시카우’(수익 창출원) 역할을 해야 했다. 지난해엔 한 차례 매각 무산 과정을 거쳤으며 이젠 앙숙이었던 대한항공에 팔리는 운명을 맞게 됐다.

항공 통합으로 인해 소비자로서 선택의 폭이 사라지게 됐다는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그보다는 호남 기업의 쓸쓸한 퇴장을 보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장필수 제2사회부장 bungy@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