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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 욕망을 떼어 내는 능력
2020년 09월 11일(금) 00:00
[임형준 순천 빛보라교회 담임목사]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본능에서 시작된 욕망의 에너지는 태양처럼 무한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인간의 삶에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행동의 동기를 만든다. 인류의 역사는 이 강력한 에너지를 지혜롭고 적절하게 운영하여 인류가 꿈꾸는 문명을 만들었고 그 결과 풍요로운 삶을 얻어냈다.

그러나 이런 인류의 역사가 모두 성공하지는 않았다. 욕망이 반사회적일 때 인간은 불행해졌다. 이 시대 우리 삶의 현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코로나19 전염병과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 등 지구의 판도를 재편하는 최근 현상들 대부분의 원인은 인간의 멈추지 않는 탐욕의 결과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더 큰 행복과 성공을 꿈꾸고 간절히 바라며 그런 비전을 상상하고 선포했다. 이런 인간의 열렬한 꿈은 조급함을 자극하고 탐욕을 꿈틀거리게 하여 경쟁적인 발견과 발명, 개척과 개발, 획득과 쟁취에 불타는 깃발을 올렸다. 자연의 질서보다 인공적 원리가 앞서는 인간의 열심은, 자연이 병들고 파괴되어 몸살을 앓아 신음하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더 큰 야망을 꿈꾸는 브레이크 없는 질주 앞에 성난 자연은 인간과 불화의 관계가 되고 말았다.

갑자기 멈출 수는 없겠지만 이제 인간의 이기적인 야망의 속도를 덜어 내어 조정하여야 한다. 삶이란 나를 위해 존재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꿈도 실현을 통해 다른 사람의 즐거움에 기여하고 다른 사람의 기쁨을 통해 자신의 꿈의 의미가 확장되는 법이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버린 구조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할 것이 아니라 이제 느림, 비워 냄, 잠시 멈춤의 법칙을 실현시켜야 할 때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만해져 버린 지구는 모든 기능이 병들고 파괴되어 더 크고 심각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면, 식탁에서의 식욕을 줄여 과식을 막아야 한다. 식욕을 억제하고 과식을 통제하는 것처럼 탐닉과 끊임없는 유혹들을 이기는 능력을 ‘절제’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절제의 의미를, 인간의 욕망 에너지를 억제와 강압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닌 일부를 덜어 내어 다른 에너지로 바꾸어 선택하는 힘이라고 정의한다.

성경에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나으니라(잠16:32)”라고 기록하여,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하는 일은 성을 점령하기보다 어렵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육체의 소욕을 억제하고 다스리며 지배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여 성령(신)의 도우심 없이는 절제가 어렵다는 것이다.

절제된 삶이란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구별된 삶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절제하기 위해서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할 줄 알고, 먹을 것과 먹지 않을 것,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자연의 것과 인간의 것, 또한 종교가 있다면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별하여 사는 통제력이 절제이다.

이제 일상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욕망의 덩어리를 떼어 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아름다운 가치의 회복을 위해 다른 이상의 욕망을 떼어 내야 한다. 우리 일상의 삶은 시간과의 밀애이며 또한 싸움이다. 이런 일상 속에서 자신만을 위한 욕망들로부터 지켜 내기 위한 일종의 떼어 냄이 필요하다. 매일 몇 시간씩 떼어 내 한 곳에 쓰기 위해서는 자신과의 약속이 필요하고 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한 시간이어도 좋다. 매일 이 시간은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위해 남겨두어야 하며, 언제나 그 절제의 근육이 꿈틀거릴 수 있도록 매일 돌봐 주어야 한다. 이런 시간의 선택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지키고 보살핀다. 그리하여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다.

‘절제’의 에너지는 우리 각자 인생이라는 공간에 이미지를 실현해 가는 붓처럼 자신이 만들어 가는 미래에 대한 확실한 그림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우리 삶의 일부인 시간과 환경을 떼어 낸 선택은 분명 그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사람다움과 자연스러움이 회복되어 어우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