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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2040] 진보의 시대정신은 아직 유효한가?
2020년 08월 10일(월) 00:00
[오 태 화 위민연구원 운영위원·전남대학생]
최근 정의당 비례 대표인 류호정 의원의 옷차림이 많은 이들의 구설에 오르내리고 있다.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하는 품위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가장 보수적이었던 집단인 국회가 파격적인 옷차림으로 인해 또 한 번의 진보를 맞이한다는 지지의 의견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은 서로 간의 혐오가 난무하는 갈등의 진원이기도 했다. 필자는 바로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진보의 다양성을 지켜내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가?

류호정 의원의 옷차림과 관련한 논란을 지켜보며, 어떤 국민들은 어딘지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류 의원을 직접 비난하거나 모욕하고 싶지는 않으나, 그 행위에 대해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려운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것은 류호정이라는 한 인간의 행위가 아닌, 정치인이자 국회의원 류호정의 행위가 부적절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입 밖으로 꺼내 보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사회로부터 받을 이른바 ‘꼰대’라는 낙인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러한 비판적 의견을 입 밖으로 꺼냈을 때 자신이, 실제로 이번 사건에 존재했던 ‘성차별주의자’나 ‘혐오주의자’ 등과 같이 비쳐지거나, 대우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역시 존재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두려움의 원인을 ‘진보의 배척성’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쉽게 말해서 진보적 성향을 가진 정치 집단이 ‘진보적 발상’으로 인정한 하나의 방향성을 절대화함으로써 발생하는, 이견자(異見者) 집단에 대한 두려움 정도로 풀어서 해석할 수 있겠다. 진보적 이념이 한 덩어리와 같이 취급되면서, 특정 사안에 대한 개별적 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운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토록 정교하게 절대화된 ‘진보‘가 야기하는 두려움이 다양성을 억누를 정도로 거대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갈등과, 갈등을 통한 진보를 통해 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 정답부터 말하자면 현재까지의 방향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조금 비판적인 시각으로 이번 사건을 다뤄보자면, 어떤 삐딱한 이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국회의원의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것이 우리 삶에 무슨 변화를 가져오는가?’라는 냉소 섞인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일견 일리 있는 시각이다. 그리고 이것은 방법 없는 운동과 지나치게 격렬한 절대화가 빚어낸 염세주의적 태도일 것이다. 진보가 방법을 제시하지 않은 채 운동에 치중하며 의견을 절대화할 때,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그렇기에 진보에는 치열한 과정과 방법, 그리고 행동이 필요하다.

류호정 의원의 옷차림을 둘러싼 논란이 극심해진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행동의 차원에서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먼저 류 의원이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의 부조리 가운데 하나인 보수적인 복장 문화를 신랄하게 지적해 왔다는 ‘치열한 과정’이 존재했다면,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노동 환경에서, 전보다 편한 복장을 영위할 수 있도록 각 회사의 복장 규정을 간소화하는 등의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리고 그 이후에 그러한 옷차림을 보여주었다면, 그것은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지지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류 의원의 옷차림은 치열함도, 방법도 부족한 채 행위만이 덩그러니 국민의 앞에 놓였고, 어떤 국민들은 그것을 강요받게 되었다.

2017년, 무능하고 타락한 권력을 끌어내린 촛불 시민 혁명의 힘은 ‘평등’과 ‘공정’, ‘정의’를 시대정신으로 끌어올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동력인 ‘적폐 청산’과 ‘사회 대개혁’은 이른바 개혁 진보 세력의 절대적인 과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3년 차 범진보 세력이 국회의 절반을 훌쩍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지금, 서로 간의 혐오만 남아 버린 지금, 필자는 다시금 질문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그보다 먼저 진보의 시대정신은 아직 유효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