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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과 다음 세대의 기억
2020년 05월 22일(금) 00:00
김성훈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남동쪽 125마일 가량 떨어진 인적 없는 곳에 넓은 초원과 메마른 샛강 하나가 있다. 서부 확장이 한창이던 1864년 겨울, 원주민과 영토 분쟁을 빚던 연방정부가 일으킨 샌드 크리크 학살(Sand Creek Massacre) 현장이다. 이곳에서 대부분 여자와 아이들이었던 200여 명의 샤이엔(Cheyenne)과 아라파호(Arapaho) 사람들이 600여 명의 중무장 기병대와 민병대에 의해 무참히 학살되고, 몇몇 시신들은 끔찍하게 훼손되었다. 학살의 진실은 오랫동안 철저히 감춰져 있다가 생존자와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1900년 초에야 드러났다.

그 후 샌드 크리크 학살의 기억을 보존하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들이 있었다. 샤이엔과 아라파호 사람들은 구술을 통해 세대와 세대에 걸쳐 이 기억을 전승했고, 이는 그림, 시, 자서전, 인터뷰, 영화 등 여러 형식으로 기록되었다.

비영리 공영방송 PBS는 생존자 후손들의 자세한 증언과 고증을 바탕으로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배포했고, ‘솔져 블루’(Solider Blue)라는 영화는 학살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시인 사이먼 오티즈(Simon J. Ortiz)는 ‘샌드 크리크로부터’(From Sand Creek)를 통해 학살의 배경, 과정, 결과를 시적으로 형상화했는데, 이 시집은 널리 읽혀 대학교 역사수업의 교재로도 쓰였다. 2007년 마침내 샌드 크리크에 추모비가 세워지고 현장은 국립 유적지가 되었다.

40년 전 5월 광주에 대한 기억도 그러하다. 비밀리에 출간되었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그랬듯이, 한동안 금기시되었던 그날은 치열하게 기억을 지켜온 사람들의 증언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들 개개인의 기억은 그렇게 폭압의 세월을 이겨내고 이른바 ‘공적 역사’가 삭제한 구체적 순간들을 복원해 내어, 이 땅의 모든 시민들이 공유하는 민주주의 정신의 근간을 이루었다.

다시 5월이다. 5월이 반복되듯이 기억도 반복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느 때보다 차분한 분위기이지만 봄비에 짙푸르게 일어나는 들풀처럼 그날의 기억은 계속 재생되고 또렷해진다. 그것은 헬기 사격 흔적을 지닌 채 기억 문화 공간이 된 금남로 전일빌딩을 통해 역사화된다. 박관현의 기념비, 윤상원의 숲, 김남주의 길을 연결하는 전남대의 민주길을 통해 공간화된다. 기존의 영화와 다큐멘터리, 전시, 문학 작품은 물론이고,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플래시몹과 VR을 이용한 젊은 세대의 다양한 추모 문화제를 통해 시각화, 예술화된다.

이 모든 기억 재생 활동은 더 나은, 정의로운 미래를 위한 의식적이고 윤리적인 행위로 풀이할 수 있다. 세계 곳곳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추모비에 새겨 있듯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Never again!)하기 위한 것이다. 5월의 기억을 직접적으로 간직한 현 세대와 그것을 이어받는 후세대가 연결되고 민주, 정의, 평화라는 공동의 유산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방식인 것이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당연한 과제를 과거에만 집착한 퇴행적 행위로 치부하며 역사적 망각을 종용하는 세력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후세대를 위한 기억의 존속에 대한 윤리 의식을 역설적으로 일깨워준다.

누군가 애써 기억하지 않는다면 구 전남도청도, 전일빌딩도, 민주길도 그저 무의미한 콘트리트 덩어리로만 남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미국 샌드 크리크 학살의 진실이 결국 드러난 후에도 샤이엔족과 아라파호족 사람들이 그 기억을 끊임없이 전승하듯이 또 다른 40년, 그 후에도 5월의 기억은 지속될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기억은 과거로 움츠러듦이 아니라 미래로 손 내밂이다. 그 기억이 먼 훗날의 세대에게 그들이 누구이며, 광주는 무엇이며, 대한민국은 무엇인지 말해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