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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시골 마당 풍경 참 그립다
2020년 05월 14일(목) 00:00
모리조 작 ‘빨래 너는 여인’
“햇빛이 ‘바리움’처럼 쏟아지는 한낮, 한 여자가 빨래를 널고 있다. 그 여자는 위험스레 지붕 끝을 걷는다. 런닝 셔츠를 탁탁 털어 허공에 쓰윽 문대기도 한다.…그 여자의 일생이 달려와 거기 담요 옆에 펄럭인다.…” (강은교 작 ‘빨래 너는 여자’ 중에서)

사회학자들은 세탁기의 발명이야말로 여성이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아를 찾고 사회활동의 기회를 갖게 한 수훈자로 꼽는다. 직장과 육아, 가사에 힘겨웠던 젊은 시절엔 세탁기의 고마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세탁기에서 빨래가 걸어 나와 빨랫줄에 널리거나 세탁기 안에서 빨래가 건조까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도 했다.

실제로 상상은 현실이 되어 드디어 건조기가 나와 더욱 편한 세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는, 빨래는 역시 햇볕 아래 빨랫줄에서 고슬고슬 말라야 제 맛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19의 순영향으로 미세먼지가 줄어든 듯, 깨끗해진 하늘 아래 눈부신 햇살과 바람이 아까워 이불빨래를 하고 탁탁 물기를 털어 옥상 빨랫줄에 널었다. 때가 낀 마음도 찌든 영혼도 햇빛 아래 깨끗하게 마를 것만 같다.

확실히 빨래는 여성의 노동이다. 문학에서도 그림에서도 여성작가들은 가정과 가사와 육아, 교육과 여가 등을 여성이 주인공인 세계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인상주의 최초의 여류화가로 초기 인상주의 화파의 선두에 서서 당대 예술을 이끌었던 베르트 모리조(1841~1895)의 ‘빨래 너는 여인’(1881년 작)은 일상생활에서 그림의 대상을 찾는 인상파 특유의 주제 의식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로코코 시대 대가인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손녀이자 파리 상류사회에서 전형적인 부르주아 여성이었던 작가가 파리를 떠나 베르사유 근처 시골에서 생활하던 때 그린 이 작품은 투명한 대기와 그 사이에 미묘하게 떨리는 빛이 빨래가 바람에 나부끼는 느낌을 준다. 그림에서든, 현실에서든 마당에서 빨래를 너는 모습은 이제 참 그리운 풍경이 된 것 같다.

<광주시립미술관학예관·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