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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면장
2020년 04월 01일(수) 00:00
[김 창 균 광주예술고 교감]
바둑 천재 이세돌이 얼마 전 은퇴를 선언하였다. 그가 밝힌 은퇴 배경에는 수학적 계산으로 승리하는 AI에 대한 의문, 즉 AI 앞에서 바둑은 흑과 백의 작품이 아닌 그저 확률 싸움일 뿐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아버지 밑에서 그가 배운 바둑은 흑백이 만드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는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AI가 가져온 회의감이 원인이 된 셈이다. 하지만 알파고가 제퍼디 퀴즈쇼에 출연한다면 2011년에 출연했던 AI 왓슨만큼 유명세를 얻지는 못할 것이다.

기계들이 막대한 데이터 분석은 쉽게 하지만 사람들이 손쉽게 할 수 있는 과업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모라벡의 역설’이 20년 내에 극복되리라는 전망도 있지만, ‘창조성, 복잡한 의사소통, 비판적 사고’가 인간 고유의 영역임을 미래 기술을 내다보는 사람들도 부정하지는 못한다. 특히 팩트로 가장한 내용 이면에 숨겨진 의도나 진실을 읽어 내는 능력은 한 분야에 특화된 AI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일 것이다.

예컨대, 한림대 일본학연구소는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분류하는 이른바 혈액형 분류법이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라고 밝힌 바 있다. 진화한 민족일수록 A형이 B형보다 많다는 독일의 이론에 따라 그들이 한국인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위해 혈액형 분류법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혈액형 분류법에 감춰진 식민지적 근대를 관통하는 지식과 권력의 계보를 읽어내는 능력을 AI에게서 기대하기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아닐까 싶다.

오늘 같은 만우절에 유명한 스포츠카 업체에서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속하는 전기 트랙터’를 개발했다는 엉뚱한 발표를 하더라도 재치 있는 만우절 유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창조적 행복이다.

그런데 최근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안과 관련해서 유튜브나 SNS 등에서 도를 넘는 가짜 뉴스(Fake News) 유포 행위가 급증하고 있다. 대상을 기만하고자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허위 정보가 사회 문제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칫 눈앞의 담벼락에 갇힌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세상을 다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위험 또한 커지고 있다.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에 갇혀서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면서 그림자를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즉 가짜 정보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휘둘리는 꼭두각시가 될 우려 말이다.

우리 속담에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이 있다. 면장(面長) 노릇을 하는 데에도 식견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와전되어 사용되기도 하지만, 실은 “배우지 않으면 면장(面牆)하고 서 있는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서경(書經) 구절의 ‘면장(面牆·담벼락을 대함)’이 무지함의 비유로 사용되었으며,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뜻의 ‘면면장(免面牆)’이 ‘면장을 한다’로 이어진 것이다.

소수 매체를 통한 제한적 정보가 전부이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 우리는 무한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유롭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초연결 공간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검색하여 정선(精選)했다고 확신하는 정보가 실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가공했거나, 일부를 은폐한 왜곡 정보일 수 있다. 오히려 더욱 공고한 담벼락을 마주하는 셈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 누구라도 가짜 뉴스의 함정에서 당혹스러웠던 경험이 있을 것이며,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지혜로운 선택을 가로막는 허위 조작 정보를 판별해 내는 능력이 필요함도 절감할 것이다. 그러니 의도적 해석을 거친 정보를 근거로 비타협적 주장을 내세우지는 않는지, 확증편향으로 똘똘 뭉친 아집을 무비판적으로 두둔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 분야만 똑똑한 AI와 달리 우리 인간은 관계적 사고를 가지고 있으니, 누군가 덧씌워 놓은 프레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익숙한 동굴을 박차고 나가 동굴 밖의 새로운 현실을 확인하고, 동굴의 벽에 일렁이는 왜곡된 허상을 걷어낼 수 있어야 한다. 담벼락을 비판적 사고의 창(窓)으로 열어가는 노력이 없다면 면장(面牆)에서 결코 더 나아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