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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5월 22일 ‘기동타격대’
“시방 시민들이 시체를 확인헐라고 몰려들고 있는디 줄을 세워야겄네. 요런 시국에도 새치기 허는 사람덜이 꼭 있당께.”
“형님, 오늘 헐 일은 고거그만요.”
“그러자고. 기분전환 헐라믄 변두리를 돌면서 순찰허믄 되고.”
도청 민원실 우측에 20여 구쯤의 시신이 있었고, 상무관에는 50여 구 이상의 관이 놓여 있었다.
“니는 하루에도 용꿈을 몇 번이나 꾸는 모냥이다.”
“으째서?”
“총알이 니를 두 번씩이나 피해 간께 허는 말이여.”
2020년 03월 05일(목) 00:00
<삽화 이정기>
도청 1층 서무과는 전투를 지휘하며 작전을 짜는 상황실이었다. 시민군 중에서 스스로 상황실장이 된 박남선은 권총을 차고 다니면서 지시를 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세아자동차공장에서 장갑차와 군용트럭을 빼올 때부터였다. 광주공원에서는 시민군들에게 사격자세와 방법을 훈련시키면서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었던 것이다. 도청을 드나드는 일부 시민군들도 차츰 그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였다. 간밤에 도청의 빈 사무실에서 잠을 잤던 박래풍과 김선문, 김용호도 그에게 가서 역할을 받았다. 김선문이 근사한 일을 하고 싶다는 듯 붙임성 있게 말했다.

“실장님, 지덜은 뭣을 할게라?”

“상황실 문을 지켜볼랑가? 공수놈덜 첩자가 들어올지 모른께 중요헌 일이여.”

“예, 근디 교대는 시켜주쑈잉.”

“고거야 아무라도 붙들고 사정허믄 되겄제. 헐 사람이 있을 틴께.”

박래풍은 말하기가 귀찮아서 입을 다물었다. 어제 광주공원에서 그의 총을 박남선이 뺏으려고 했었으므로 사감이 좀 있었던 것이다. 덩치가 큰 김용호가 카빈소총을 메고 전투경찰이 버리고 간 방석모를 쓰자 기동대장처럼 제법 늠름하게 보였다.

“아따, 용호 니야말로 이순신 장군 같다야. 출세해부렀그만잉. 하하.”

군대로 치자면 세 사람 모두 작전상황실 경비장교가 된 셈이었다. 병과도 최전방에서 전투를 하는 보병과 달리 일정한 자격이 돼야만 설 수 있는 경비장교였다. 식성이 좋은 김용호는 숙식이 해결되는 도청에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흡족했다. 물론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시내에 집이 있는 학생들과 달리 며칠 동안 제때에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고, 주먹밥, 김밥, 빵 등을 가리지 않고 먹었더니 뱃속이 늘 더부룩했던 것이다.

이관택도 나이가 엇비슷한 박남선을 찾아와 자신이 맡아야 할 일을 물었다.

“우리 일행은 6명인디 뭣을 했으믄 쓰겄소?”

그도 도청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머리가 부스스했다.

“아무 일이나 하고 ?은 거 허씨요.”

“그라믄 우린 여그 도청서 아무 일이나 허다가 답답허믄 외곽이나 한 번 휙 돌아불라요.”

“전투가 벌어지믄 몰라도 자발적으로 허씨요.”

일행은 시위차량을 타고 다니다가 의리와 정이 생긴 사이였다. 이관택이 나이가 가장 많았고 대부분 19살 안팎이었는데 직업은 호텔종업원, 식당종업원, 운전기사 등이었다. 어린 청년들은 이관택이 하자는 대로 따랐다.

“시방 시민들이 시체를 확인헐라고 몰려들고 있는디 줄을 세워야겄네. 요런 시국에도 새치기 허는 사람덜이 꼭 있당께.”

“형님, 오늘 헐 일은 고거그만요.”

“그러자고. 기분전환 헐라믄 변두리를 돌면서 순찰허믄 되고.”

도청 민원실 우측에 20여 구쯤의 시신이 있었고, 상무관에는 50여 구 이상의 관이 놓여 있었다. 민원실 앞에서 연고자에게 시신이 확인되면 곧 상무관으로 옮겨졌다. 시민군이나 시민들 중에서 벌써 여러 명이 자원해 민원실 앞과 상무관에서 장례 일을 보고 있었다. 아직 관에 들어가지 못한 시신의 모습은 참혹했다.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뭉개졌거나 머릿골이 빠져 나와 있었다. 피범벅이 된 채 눈을 뜨고 죽은 시신도 여럿이었다. 시신을 확인하는 시민들이 대부분이었으나 간혹 구경거리로 나온 사람도 있었다. 이관택이 상무관 현관에 들어섰을 때였다. 이관택은 화장을 짙게 한 아가씨가 킥킥 웃는 것을 보고는 화가 치밀었다.

“여어, 아가씨! 여그가 시방 웃을 자리요? 이런 상황에서 시방 웃음이 나오요?”

“미안허요만 웃음이 나온께 웃지라.”

아가씨가 어린 시민군을 가리키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시민군이 카빈소총을 작대기처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향을 든 아가씨가 웃던 아가씨를 잡아끌었다.

“독사눈으로 쳐다보지 마쑈잉. 여그 조문왔응께. 에럽게 향까정 구했그만이라.”

“거참, 안에서 울고불고 난린디 웃으믄 쓰겄소? 조심허씨요.”

이관택은 찜찜한 기분을 털어버리기 위해 일행을 불렀다. 계림동을 한 바퀴 돌고 올 속셈이었다. 일행 중에 운전할 줄 아는 청년이 지프차를 몰고 왔다. 일행은 계림동 오거리까지 거침없이 달렸다. 그곳에서 휴식할 겸 담배 피우는 시간을 가졌다. 시민들이 지프차 옆으로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이관택이 담배를 피워 무는 순간 한 학생이 말했다.

“어? 아저씨, 텔레비에 나왔어요.”

“언제야, 난 텔레비 본 적이 ?다. 안 본 지 열흘은 된 거 같다.”

“아저씨 맞어요.”

학생이 지프차 타고 돌아다니는 이관택을 텔레비전에서 보았다고 우겼다. 방송중계차 카메라가 몰래 이관택을 폭도라고 촬영한 모양이었다. 순간 이관택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인자 잽히믄 죽을랑갑네.’

그래도 며칠 간 의기투합해온 일행을 보니 용기가 났다. 일행 중 순박하게 생긴 재수생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관택은 겁을 냈던 것을 부끄러워하며 새롭게 각오를 다졌다.

‘은제 죽어도 죽을 것, 죽기 아니믄 살기로 해보는 거지 뭐. 낼도 상무관에서 보내야지.’



광주공원까지 순찰하고 돌아온 박남선은 상황실 문과 도청 정문을 지키는 경비조장을 불러 주의를 주었다.

“계엄군이 광주 외곽을 차단허고 있소. 놈들이 첩자나 보안대 요원을 보낼지 모른께 잘 지키쑈. 머릴 짧게 깎은 놈덜은 일단 차단허씨요.”

어느 새 박남선은 시민군에게 명령하고, 엉뚱한 행동을 하는 시민군에게 야단칠 만큼 힘이 붙어 있었다. 박남선은 몇몇 시민군을 시키어 차령통행증과 지정주유소에서 기름을 보급 받을 수 있도록 유류보급증, 상황실을 드나들 수 있는 출입증 등을 노트에 그들의 인적사항을 적게 한 뒤 발급했다.

도청 서무과 과장의 큰 의자에 앉아서 낯이 익은 시민군을 불러 도청 내에 있는 모든 무전기와 워키토키를 가져오게도 했다. 어젯밤 광주천변에서 매복하는 동안 무전기 덕분에 계엄군의 이동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몇 대의 무전기는 이미 기동타격대 지프차에 나가 있었다.

한편, 김현채는 아침 일찍 도청으로 들어와 빈 트럭에서 잠을 잤다. 토막잠을 자면서 짧은 꿈을 꾸었다. 아침에 도청 앞에서 실제로 보았던, 시민들이 빗자루를 들고 나와 청소하는 모습의 꿈이었다. 공수부대가 물러갔으니 청소하는가 싶었고,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왠지 편안해졌다. 토막잠을 자다가 꾼 꿈은 머릿속을 개운하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트럭 주변이 시끄러워 잠이 확 깼다. 동신고 건너편 산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며 총을 든 사람은 모두 타라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오전 10시쯤이었다. 상황실장 박남선이 지프차에 서서 지시를 했다.

시민군 20여 명을 태운 군용트럭은 경적을 울리며 달렸다. 군용트럭은 동신고를 지나 벽돌공장 옆에 멈췄다. 시민군들은 바로 야산으로 올라갔다. 건너편 산에 큰 철탑이 있는데 그 밑에 공수부대원들의 철모가 번뜩번뜩 보였다. 공수부대원들이 먼저 야산 쪽으로 사격을 했다. 그러고 보니 변두리 산자락에는 공수부대원들이 매복해 있었다. 조장이 소리쳤다.

“카빈은 가만 있고 엠1만 쏴부러!”

총격전이 벌어지는 동안에 시민증원군 2진과 3진이 합류했다. 그런데 3진은 공수부대원들의 저지선인 무등도서관 앞 큰 도로를 넘어버리고 말았다. 집중사격을 받고 시민군 한 명이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김현채는 증원군 중에 친구 박인수를 발견했다. 다른 시민군과 달리 박인수는 옷이 깨끗했는데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김현채는 박인수를 보고 손나팔을 만들어 외쳤다.

“머리 숙여!”

“현채였구나.”

“니는 으디서 오는디 옷이 깨깟허냐?”

“응, 송정리 집에서 오는 길이여.”

김현채는 박인수의 총에 실탄을 여러 발 장전해주었다. 야산 보리밭을 타고 넘어가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보리밭 쪽에서 우두둑 우두둑 자동소총 소리가 들렸다. 보리밭에도 공수부대원들이 매복해 있는 모양이었다. 한 시민군이 욕설을 뱉어냈다.

“개새끼덜! 보리밭에도 숨어 있네.”

총격전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대치한 상황에서 진전이 없자 조장이 돌아가자고 말했다. 공수부대원들이 매복해 있는 이유는 분명했다. 교도소를 지키기 위해 전방으로 나와 있었다. 도청으로 가는 중에 김현채와 박인수, 그리고 몇 명의 시민군이 광주고 앞에서 내렸다. 길바닥에 한 청년이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청년에게 접근할 수는 없었다. 부근의 상황을 살펴봐야 했다. 김현채와 박인수는 광주고 건너편의 가정집 옥상으로 올라갔다. 순간, 광주고 뒤쪽 야산에서 총소리가 났다. 총알이 옥상 옆의 처마 기왓장을 깨면서 스쳤다. 두 사람은 얼떨결에 바로 엎드렸다. 그때 앰뷸런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나타나더니 길바닥에 쓰러진 청년을 싣고 갔다. 김현채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메, 나도 저 차에 실려 갈 뻔했네.”

두 사람은 시민군들과 함께 주변을 수색하다가 별 소득 없이 도청으로 돌아왔다. 도청 안에는 지프차 1대, 군용트럭 4대, 유리창이 모두 깨진 버스 2대가 방금 김현채 일행이 갔던 곳으로 투입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박남선이 여전히 지프차에서 시민군을 지휘하고 있는 중이었다. 트럭은 운전석 앞을 철판으로 막고 틈을 내서 총을 거치하였으며, 짐칸 차체에 헌 타이어를 주렁주렁 매달아놓아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그러느라고 출동이 늦어진 듯했다. 김현채가 다가가 동신고 부근 상황을 알려주려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모두들 마치 큰 전투를 치르러 가는 전사들처럼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남선이 탄 지프차가 선두에서 미친 듯이 거칠게 달려 나가자 대기하던 트럭과 버스가 지체 없이 뒤따랐다.

시민군 차량은 동신고를 지나 문화동 검문소 부근까지 달렸다. 좀 전의 총격전 흔적이 역력했다. 인도와 차도 경계에 몇 구의 시체가 널브러졌는데, 가로수까지 피로 얼룩져 총격전이 제법 격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박남선의 지프차가 교도소 쪽으로 접근하자 야산과 주유소 뒤에서 공수부대원들이 일제히 사격을 했다. 총알이 도로에 빗발치듯 쏟아졌다. 박남선이 권총을 뽑아 공포탄을 쏘면서 소리쳤다.

“교도소 우측 야산과 주유소 뒤쪽이야. 사격해!”

시민군의 응사도 만만찮았다. 그러자 공수부대원들의 사격이 뚝 끊어졌다. 정말로 교도소를 공격할 의도가 있는 것인지 시민군의 반응을 떠보는 듯했다. 총격전이 끝난 줄 알고 한 무리의 시민들이 다가와 말했다.

“트럭을 빌려 담양방면으로 나갈라고 고속도로로 진입허는디 갑자기 총질을 합디다.”

“교도소를 습격허는 줄 알고 사격했겄지라.”

“무신 경고나 주의도 ?이 막 사격을 해불드그만요.”

“그래요?”

박남선은 계엄군이 교도소를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담양, 곡성, 순천 가는 길을 막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민군에게 다시 사격을 지시했다. 그러나 화력과 전력이 월등한 공수부대원들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공수부대원들은 단 몇 미터의 길도 양보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총격전을 끌수록 시민군의 부상자만 더 발생했다. 할 수 없이 박남선은 그곳에 쓰러진 부상자를 남겨 둔 채 시민군을 후퇴시켰다. 더 이상 사상자를 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도청으로 돌아온 박남선은 도청 안팎의 시민군을 모아놓고 재편성했다.

마음에 맞는 시민군끼리 대여섯 명씩 1조에서 5조까지 기동타격대를 편성했다. 뒤늦게 온 10여 명 중에서도 6조를 짰다. 박인수와 김현채는 6조가 되었다. 용접공 김여수와 눈매가 매서워 사무라이로 불리던 시민군과 그냥 일성이라고만 이름을 밝혔던 시민군도 6조로 들어왔다. 민원실 앞에서 장례 일을 보던 김동수는 방석모를 쓰고 도청정문 경비조장으로 갔다. 변두리에서 군용트럭이나 24인승 승합차를 타고 특수기동대 역할을 하는 시민군들은 박남선의 통제 밖에 있었다.

잠시 후, 기동타격대 6조는 지원동 버스종점 부근의 산에서 총성이 울렸다는 신고를 받고는 바로 출동했다. 1조부터 5조는 벌써 시 외곽으로 나가버리고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기동타격대 6조가 지원동 버스종점에 도착하자 상황은 이미 끝나버린 듯 조용했다. 지원동 지역방어 시민군들이 다리 밑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이상 무’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김현채는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배가 몹시 고팠다. 근처 가게로 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자 어제 만든 것이라며 김밥을 내주었다. 김현채는 박인수와 함께 김밥을 받아들고 숭의실고 공작실 옥상으로 올라갔다. 공사를 중단해 골조들만 앙상한 건물이었다. 옥상에서 김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총알이 날아왔다. 총알은 김밥을 뚫고 지나갔다. 총알에 맞은 김밥이 잘려서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다. 김현채는 배가 너무 고팠으므로 바닥에 떨어진 김밥까지 주워 먹었다. 옆에 있던 박인수가 말했다.

“니는 하루에도 용꿈을 몇 번이나 꾸는 모냥이다.”

“으째서?”

“총알이 니를 두 번씩이나 피해 간께 허는 말이여.”

“맞어. 광주고 앞에서도 죽을 뻔했응께.” 기동타격대 지프차에서 경적이 빵빵 울렸다. 두 사람에게 빨리 내려오라는 신호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