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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5월 22일 ‘무기 회수’
카빈소총과 수류탄을 들고 다니던
황금선은 학운동 배고픈다리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시민군에게
소지했던 무기를 다 주어 버렸다
여분으로 호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탄창까지 건네주었다
보초야말로 무기가 자신보다
2020년 03월 12일(목) 00:00
<삽화 이정기>
도청 민원실은 장례 일을 돕는 시민군들의 숙소였다. 민원실과 상무대를 오가며 시신을 확인하던 시민군들이 여기 저기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박병규는 도청 민원실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에 깼다. 형광등 불빛이 눈을 찔렀다. 민원실 형광등들은 모두 꺼져 있는데, 박병규 쪽의 것만 켜져 환했다. 박병규가 잠을 깬 것은 옆에서 불침번을 서던 시민군끼리 소곤소곤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저 학생은 으째서 여그 있는지 모르겄네잉.”

“여그는 가방끈이 짧은 우리같은 놈덜이 있는 곳인디.”

“가방끈이 중헌가? 꼬라지가 우리덜허고 같그만. 거지도 상거지여.”

박병규는 ‘상거지’라는 말에 잠이 달아났다. 바로 눈을 뜨지 않고 그들이 하는 얘기를

더 들었다.

“공수놈덜을 몰아낸께 인자사 행세께나 허는 사람덜이 나타나고 있그마.”

“교수, 신부, 목사덜 말이여?”

“어젯밤부터 서무과에 ‘나 누구요’ 허고 댕기드란께. 난 눈꼴시러와서 이리 와부렀제.”

“그래도 으쨌든 머릿속이 꽉 찬 사람덜이 나서서 협상은 해봐야 허는 거 아니여?”

“20일 오전, 빨간 잠바 청바지 여자가 도청에 들어가서 협상헌 거 못 봤어? 이용만 당헐 거그만. 순진헌 우리덜이 어처께 이길 거냔 말이여.”

“그라믄 이 일을 계속 허라고? 묵고 사는 일은 누가 책임지고?”

“기왕 나서부렀는디 뒤로 돌아갈 수는 ?지 머.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해봐야제.”

박병규는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가 슬그머니 일어나 몽둥이 하나를 챙겨들고 도청을 나와 버렸다. 서울 동국대에서 유학 중인 자신을 상거지라고 깔보는 소리에 자존심이 상했다. 박병규는 광주천 학운다리를 건넌 뒤 농성동 집을 향해 잰걸음으로 갔다. 새벽의 찬 공기가 콧속을 자극했다. 박병규는 비염환자처럼 재채기를 하면서 콧물을 닦았다. 대문을 열자마자 어머니 목소리가 득달같이 들렸다.

“병규냐?”

“예, 엄마.”

자신의 몰골을 식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몰래 들어가려고 새벽에 왔는데 어머니에게 들켜버렸다.

“잘 왔다, 작은놈아. 근디 니 꼬라지가 뭐냐! 으디서 오는 길이냐?”

어머니 김양애는 안도했지만 꾸중하듯 캐물었다.

“전대 앞서 싸우다가 도청에서 잤지라.”

“광주로 제사 지내러 왔다가 못 간 아재덜이 겨신께 얼능 니 몸땡이 몬자 씻거부러라.”

“엄마, 밥이나 얼능 주쑈. 배고파 죽겄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던 동생 박경순이 말했다.

“엄마가 오빠 몸 보신시켜준다고 닭 한 마리 푹 고아놓고 지달렸어요.”

“경순아, 닭이 문제냐?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디 가만히 있을 수가 ?더라.”

박병규는 어머니를 보고도 말했다.

“엄마, 자식이 죽는 것을 본 어떤 아저씨가 머리에 끈을 동여매더니 각목을 들고 공수에게 죽기 살기로 대들드라고요.”

“금메마다, 광주로 니를 부른 내가 잘못이다. 군인허고 싸우라고 부른 것이 아니었는디.”

박병규는 허둥지둥 아침식사를 한 뒤 농사짓다가 시골에서 올라온 아저씨들을 피해서 아침 일찍 이발소를 갔다. 그리고 동네 목욕탕도 들렀다. 어머니가 이발소와 목욕탕까지 따라와 감시하듯 박병규를 지켰다. 옷을 갈아입은 데다 목욕하고 이발한 박병규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본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짙은 눈썹 밑의 작은 눈에는 고집이 어려 있었다. 어깨는 다부졌고 갸름한 턱은 부드러웠다. 박병규를 본 아저씨가 말했다.

“아따, 우리 조카 병규가 집안의 인물이 될랑갑다. 훤허다 훤해. 19일 제사 지내러 왔다가 난리 통에 요로코름 시골집으로 못 가고 있다. 그나저나 오늘은 반다시 목심을 걸고라도 가야겄다. 부삭에 있는 부지깽이도 일손을 거든다는 바쁜 모내기철 아니냐?”

“병규야, 아재덜을 남평까정 바래다주고 올틴께 집에 있거라.”

“걱정 마시고 댕겨오세요.”

그러나 박병규는 어머니가 집을 나서자마자 여동생 박경순에게 말했다. 유난히 오빠를 따르는 살가운 여동생이었다. 박병규 손바닥에 들고 온 몽둥이의 가시가 박혀 있었는데, 바늘로 꼼꼼하게 빼준 여동생이었던 것이다. 박병규는 여동생에게 부탁했다.

“경순아, 엄마 오시면 도청에 공수가 나가버렸은께 걱정허지 마시라고 해라. 그냥 구경 나갔다고 말씀드려라.”

“응, 오빠.”

박병규는 집을 나서면서 멈칫했다. 뒤돌아보니 여동생이 집밖에 나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손바닥에 박힌 나무가시를 빼주던 여동생의 사랑스런 눈빛이 문득 가슴에 사무쳤다. 초라하지만 정든 집도 눈에 밟혔다.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은 아득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박병규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스런 여동생에게, 사춘기를 무탈하게 보냈던 정든 집을 향해 “안녕!” 하고 손을 흔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 두어 방울이 흘렀다.



카빈소총과 수류탄을 들고 다니던 황금선은 학운동 배고픈다리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시민군에게 소지했던 무기를 다 주어 버렸다. 여분으로 호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탄창까지 건네주었다. 보초야말로 무기가 자신보다 더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황금선은 시민군들이 탄 지프차에 올라 도청으로 나갔다. 도청 안으로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다. 이윽고 1층 서무과로 들어가니 양복을 말끔하게 입은 사람들이 무기를 회수해야만 사태가 수습이 될 거라는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또 체격이 단단하여 청년처럼 보이기도 하고, 얼굴이 앳되어 재수생 같기도 한 청년이 방송을 하고 있었다. 시민군들에게 시내로 나가 무기회수를 하라는 방송이었다.

이미 소총과 수류탄을 시민군 보초에게 주어버린 황금선은 무기회수하는 일을 돕자는 생각이 들어 도청 밖으로 나왔다. 마침 가톨릭센터 앞에 경찰 페퍼포그 차 한 대가 있었다. 황금선은 차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도청에서 나왔소. 방송을 하고 ?은디 쪼깐 태와주씨요.”

“무슨 방송을 할라고요?”

“무기회수허는디 협조허자는 것과 질서유지허자는 내용이요.”

황금선은 별 의심 없이 페퍼포그 차를 탔다. 그런데 분위기가 살벌하고 무거웠다. 차에 탄 사람들 간에 위계질서가 있었다. 경찰이나 계엄군이 정찰하기 위해 변복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방송하는 중에도 그들의 눈길이 느껴져 뒷머리가 근질근질했다. 다행히 금남로와 충장로, 전대병원까지 한 바퀴를 돈 뒤 학동삼거리에 이르자 그들이 황금선에게 하차하라고 요구했다. 황금선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도청 쪽으로 걸었다.

전대병원 앞에 이르렀을 때쯤이었다. 옆집에 사는 친구가 고물이 다된 트럭을 타고 가다가 경적을 울렸다. 친구가 말했다.

“뭔 일이냐?”

“방송할라고 헌디 차가 ?어서 이런다.”

“그래, 내 차 타.”

황금선은 친구의 트럭을 타고 무기를 반납하자고 육성으로 외쳤다. 그러나 계속 고함을 치고 다닐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황금선은 친구에게 대인동 전파사로 가자고 요구했다. 전파사에는 여러 사람들이 스피커를 구하려고 줄을 서 있었다. 황금선은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털어 보증금으로 맡기고 스피커를 트럭에 실었다. 그런 뒤 금남로와 충장로를 왔다 갔다 하면서 방송을 했다. 그러나 방송과 상관없이 실제로는 도청 정문에 많은 시민군들이 총을 반납하고 있었다. 총을 들고 있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계엄군이 시내에서 물러가버렸기 때문이었다.



도청 정문에서 김동수와 염동유 등 대여섯 명이 반납 받은 카빈과 엠1소총만 해도 3, 4백 정은 되었다. 개인이 직접 들고 오기도 했고, 자칭 무기회수반이 가져오기도 했다. 무기를 받으면 먼저 실탄이 들어 있는지 확인부터 했다. 실탄이 장전돼 있으면 제거했다. 염동유는 정문 옆 바닥에 차곡차곡 쌓았다. 총을 넘겨주는 대로 계엄사측이 단순 시위자부터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시민군들이 가지고 있던 총은 전일빌딩 현관이나 광주공원에서도 받았다. 김정현이 무기회수를 하라는 방송을 듣고도 오후 3시쯤 전일빌딩으로 간 것은 시청 부근에 사는 선배 때문이었다. 오전에 선배 집으로 갔는데 선배아내가 이틀 동안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해서였다. 그 바람에 김정현은 선배 아내와 함께 도청, 상무관 등으로 선배의 흔적이 있는지 확인하러 다녔다. 연고자가 밝혀진 상무관의 관들은 대형 태극기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상무관 벽 사망자 명단에 선배의 이름이 보였다. 김정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자관계가 복잡한 선배가 또 장난을 치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선배 아내는 사망자 명단을 본 순간 울음보를 터뜨렸다.

“정현 씨, 남편 시신이라도 찾아주세요.”

김정현은 선배아내를 위해서 전대병원과 적십자병원은 물론이고 선배가 자주 다니던 여관을 몇 군데 돌아다녔다. 모두 허사였다. 선배는 어디에도 없었다. 김정현은 선배가 죽지 않고 어딘가에 살아 있기만을 빌면서 다녔다. 그렇다고 선배아내를 위로한답시고 선배가 다른 여자와 도망쳤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결국 김정현은 선배아내를 집으로 보내고 난 뒤 전일빌딩으로 가서 무기를 반납했다.

전일빌딩에서는 학생으로 보이는 예닐곱 명이 무기를 회수하고 있었는데 지하계단에는 카빈과 엠1소총 및 권총 등이 2백여 정, 수류탄과 실탄 탄창 등이 가득 쌓여 있었다. 중기관총인 엘엠지도 보였다. 한편, 며칠 동안 발군의 실력을 뽐냈던 위성삼은 양동 집에서 가까운 광주공원으로 가서 총과 실탄을 반납했다. 좀 전에 기동타격대 차를 타고 가서 동신고 옆의 야산으로 올라가 교도소 쪽으로 총을 쏘아댔는데, 교도소가 멀어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해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공수부대원들이 가진 엠16에 비한다면 카빈소총의 위력은 형편없었다. 마치 어른과 아이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말끔해진 박병규는 농성동 집에서 나온 뒤 사상자를 실어 나르는 트럭을 탔다. 변두리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 반드시 사상자가 서너 명씩 발생했던 것이다. 지원동에서 트럭에 부상자를 싣고 전대병원으로 가는데 자전거를 탄 사내가 힘껏 페달을 밟으며 쫓아왔다. 행색을 보아 시민군이 된 아들을 찾는 듯했다. 박병규가 18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에게 물었다.

“저기 오는 분 아버지 아닌가?”

“맞소. 집에 가자고 헐틴께 모른 채 허고 있지라.”

나이는 어린 것 같은데 말투는 어른스러웠다. 총을 잡은 그의 손은 거칠었고 손가락에 흉터가 나 있었다. 직업과 이름을 물어 보니 톱질하다가 다친 가구점 노동자 김종철이었다. 트럭이 멈추자 뒤따라오던 사내가 소리쳤다.

“종철아, 니 시방 뭣허는 짓이냐?”

“부상자를 실어 나르고 있그만요.”

“얼능 집에 들어가자. 돌아댕기다가 죽으믄 으쩔라고 그러냐!”

“아부지, 지 걱정 말고 얼능 집에 가씨요. 저는 시방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기고 있그만요. 부상자를 나르는 일만 헌께 아무 걱정 안하셔도 되라우.”

사내는 아들이 부상자만 나르고 있다는 말에 안심이 되는지 멀어졌다. 박병규는 트럭이 전대병원 앞에서 멈추자, 트럭에 탄 사람들과 함께 부상자들을 병원 응급실로 옮기고는 도청으로 향했다.

도청 정문에서는 여전히 김동수가 총기를 회수하고 있었다. 박병규는 어제 장례 일을 함께 했던 김동수를 도왔다. 김동수가 말했다.

“으디로 가버린 줄 알았어.”

“선배님, 가긴 으디로 가겄습니까? 집에 들어가 목욕허고 이발 좀 했그만요.”

“시방 나도 몰골이 엉망인디 집에 가믄 못 나올 거 같은께 안 들어가고 있그만.”

“총기를 회수해서 으디로 보냅니까?”

“수습위원회 인사들 말로는 총을 계엄사로 보내 연행해간 사람들과 맞바꾼다고 하등마.”

“연행자를 다 풀어준다는 말인가요?”

“아니, 재야인사나 민주인사, 학생간부 등은 빼고 단순 시위자만.”

“찝찝허요. 단순 시위자야 무슨 죄가 있겄습니까? 그들을 풀어주는 것은 당연하지라. 민주인사, 학생간부들을 석방해야 진짜지라.”

“벨 수 있간디. 이럴 때는 우리도 머리를 써야제.”

김동수가 무슨 비밀을 알려줄 듯 박병규를 더 가까이 오게 한 뒤 말했다.

“이종기 위원장님이 소총 150정만 챙겨두라고 허시드라고.”

“계엄사 놈들이 무기가 적다고 트집 잡지 않을까요?”

“아따, 또 회수해서 갖다 줄 것인께 연행자를 더 많이 석방해달라고 묘수를 짜야제.”

“총을 찔끔찔끔 줌시로 밀당허자는 거그만요.”

“우리가 가진 패는 그것뿐이여.”

오후 5시쯤이었다. 도청으로 돌아온 황금선은 시민수습위원회 중에서 이종기 위원장과 장휴동 총무만 또 다시 계엄사로 간다고 하므로 김원갑을 데리고 호위하듯 따라 나섰다. 상무대에 도착하자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두 위원이 상무대 정문으로 다가가면서 손수건을 꺼내 흔들었다. 황금선과 김원갑은 두 위원이 무사히 영내로 들어가는 것을 본 뒤 공단 사거리 쪽으로 나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