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5월 27일 ‘짐승의 시간’
“영철이 형 우리는 패배헐지 모르지만 역사는 승리자로 기록할거요
이제 운명의 시간 같아요” “우리 저승 가서 만납시다 거그 가서도 학생운동 합시다”
“그럽시다” 그 순간 수류탄이 “펑”하고 터졌다
공수부대원이 매직펜으로 등에 “선동 총기소지자”라 쓰고
“이놈은 극렬의 극렬이야” 총 개머리판으로 등을 찍었다
<삽화 이정기>
이제 운명의 시간 같아요” “우리 저승 가서 만납시다 거그 가서도 학생운동 합시다”
“그럽시다” 그 순간 수류탄이 “펑”하고 터졌다
공수부대원이 매직펜으로 등에 “선동 총기소지자”라 쓰고
“이놈은 극렬의 극렬이야” 총 개머리판으로 등을 찍었다
<삽화 이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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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학생투쟁위원회 핵심 간부인 김영철, 윤상원, 이양현, 윤강옥 등은 계엄군이 도청을 점거한다면 자폭하자고 약속했다. YMCA와 YWCA 쪽에서 엠16소총 총성이 고막을 찢을 정도로 15여 분쯤 연달아 났다가 그쳤다. 네 사람은 싸움에서 질 것이라고 예감했다. 그러나 오늘밤만 버틴다면 시민들이 합세해 주리라고 믿었다. 또 도청 지하실에 다이너마이트가 있기 때문에 계엄군이 함부로 진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다이너마이트만 의지할 수는 없었다. 계엄군 첩자 같은 순천 출신의 사내가 김창길과 도청 지하실 드나드는 것을 목격한 시민군들이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폭약전문가라는 그가 다이너마이트 뇌관을 미리 제거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윤강옥은 자리를 옮겨갔고 카빈소총으로 무장한 세 사람은 도청 2층 회의실에 있었다. 세 사람뿐만 아니라 식당을 겸한 2층 회의실에는 기동타격대 7조 대원인 박래풍 등 30여 명이 더 있었다.
김동수는 민원실 안에 앉아 경계를 서고 있었다. 총성이 울렸지만 마음은 박영순의 방송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창문 너머 보이는 보름달은 허옇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새벽안개가 도청 광장에 스멀스멀 들이찼다. 김동수의 옷에 단 대불련 배지를 부러워하던 기종도 씨는 도청 본관으로 갔다. 총성이 한동안 계속된 뒤부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김동수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지장보살님, 우리 모두가 지장보살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지옥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중생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김동수의 기도는 짧았다. 거기까지밖에 할 수 없었다. 도청 후문 쪽에서 울린 총성에 김동수는 서늘해진 자신의 목 왼쪽을 만졌다. 도청 앞쪽만 주시하면서 경계를 섰지 생각지도 못한 방향이었다. 손바닥에 검붉은 피가 묻어났다. 김동수는 희멀건 보름달을 흘깃 한 번 쳐다보고는 스르르 무너졌다. 동전 몇 개가 그의 호주머니 속에서 굴러 나왔다. 그의 두 팔이 축 늘어지자, 손목에 차고 있던 단주가 오롯이 드러났다. 2층 회의실에 모인 시민군들을 잘 웃기던 막노동꾼 노가대도 김동수 옆에서 맥없이 쓰러졌다. 마침 학생 시민군 구천서가 총기를 가지러 도청 지하실로 뛰어가다가 그를 발견하고는 엉엉 울었다. “형님, 으디를 가든 지를 웃겨 줄 거지라우?”
먼동이 터오자, 화단의 나무들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짙은 안개 속에서 검은 나뭇잎들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윤상원이 김영철에게 말했다.
“영철이 형, 어저께 제가 외신기자들에게 말했지라. 우리는 패배헐지 모르지만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기억헐 거라고. 인자 받아들일 운명의 시간 같습니다.”
“시방 나는 심장이 벌렁벌렁 헌디 뭔 고상헌 말인가?”
“시방 부모형제가 떠올라 맘이 약해질라고 허지만 희생한 시민들을 생각하믄 운명이지라.”
“나는 상원이 자네 대금소리나 쑥대머리를 한 번 듣고 ?네.”
이양현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진압을 당허는구나. 우리는 여그서 죽는구나. 잽혀도 구뎅이에 파묻히겄지.’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도청 광장의 왼편 수협 쪽에 공수부대원 예닐곱 명이 그림자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특등사수 출신 이양현은 조준해서 쏘았지만 한 발도 맞지 않았다. 심장이 쿵쿵 뛰는 탓에 총구가 흔들렸다. 공수부대원 몇 명은 시민군이 중기관총 엘엠지를 거치해 놓은 전일빌딩으로 들어갔다. 어느 새 공수부대원들이 도청 본관까지 들어와 시민군들을 마구 짓밟았다. 도청 본관 사무실에서는 시민군을 사살하는 듯 총성이 울리곤 했다.
기동타격대 7조인 박래풍도 2층 회의실 창문 너머로 총을 쏘았다. 식당에 밥을 먹으러 들어왔다가 벌이는 총격전이었다. 엠16소총 총성은 YMCA 쪽에서 계속 들려왔다. 엠16소총은 드릴로 바위를 뚫는 것처럼 드르륵 드르륵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카빈소총이나 엠1소총의 “따콩!” 하는 소리와는 달랐다. 그런데 엠16소총 총성이 또다시 울리자마자 식당에서 뒤늦게 밥을 먹던 대원 한 명이 쓰러졌다. 2층 회의실에 있던 시민군들이 일제히 엎드렸다.
박래풍은 기어서 총상을 입은 대원에게 다가갔다. 총알이 그의 허리를 관통했다. 박래풍은 자신의 빨간 러닝셔츠를 벗어 그의 허리를 동여매어 지혈했다. 대원이 추운 듯 덜덜 떨었다. 박래풍은 옆에 있던 홑이불을 덮어주고는 돌아섰다. 그런데 그때 수류탄이 “쾅!” 하고 터졌다. 순간, 동료 대원은 온데간데없었고 방금 그에게 덮어주었던 홑이불은 천정 형광등에 걸려 있었다. 박래풍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카빈소총도 반쪽은 날아가 버린 채 잡고 있는 개머리판만 남아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이 계단을 타고 2층 식당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박래풍은 더 이상 동료대원을 보살펴주지 못하고 화장실로 숨었다. 화장실에는 이미 2명이 숨어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이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총 버리고 나왓!”
“수류탄 깐다!”
세 사람은 ‘수류탄 터트린다.’는 말에 화장실 문을 열고 두 손을 들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공수부대원 병사가 말했다.
“너희들은 폭도들이니까 계단으로 내려갈 자격도 없어. 나무 타고 내려가!”
도청 회의실 창문 옆에는 잎이 바늘처럼 뾰쪽한 침엽수 몇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세 사람은 반항하지 못하고 나무가 있는 곳까지 뛰어 간신히 나뭇가지를 붙잡고 내려갔다. 땅에 엎드리자마자 공수부대원들이 군홧발로 짓밟고 다녔다.
2층 회의실에는 기동타격대 7조의 김선문 등 아직도 20여 명 이상이 남아 있었다. 이양현이 윤상원에게 귓속말을 했다.
“우리 저승 가서 만납시다. 거그 가서도 학생운동 헙시다.”
“그럽시다.”
그 순간 사과 모양의 최루탄이 굴러오더니 “펑!” 하고 터졌다. 곧 이어 공수부대원이 엠16 소총을 드르륵 드르륵 난사하면서 “총 버리고 나와! 나와!” 하고 소리쳤다. 총을 버리고 투항하라는 소리였다. 윤상원이 김영철에게 말했다.
“형, 나갑시다.”
그런데 뒷창문 쪽에서 엠16소총 총성이 드르륵 하고 났다. 그 순간 도청 앞쪽을 바라보고 있던 윤상원이 오른쪽 배를 움켜잡고 흐느적거렸다. 총알이 오른쪽 등에서 배로 관통해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김영철은 윤상원의 왼팔을 잡고 이양현은 그의 오른팔을 부축해서 바닥에 뉘였다. 이양현은 최루탄 가스에 눈물을 흘리면서 숙직실로 뛰어가 이불을 가져 와서 폈다. 김영철과 함께 윤상원을 이불 위에 눕혔다. 윤상원이 모기소리 만하게 중얼거렸다.
“영철이 형, 난 틀린 거 같소.”
“어흑!”
김영철이 흐느꼈다. 그러나 이양현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김영철은 보이지 않았다. 최루탄이 또 터졌다. 뿐만 아니라 창문 커튼에 불이 붙어 윤상원에게 떨어졌다. 커튼의 불길이 윤상원의 옷을 태웠다.
이양현은 김영철을 옆 사무실에서 찾았다. 기동타격대 사무실인 듯했다. 김영철이 미닫이문 밑에 엎드려 있었다. 카빈소총을 들고 달려온 이양현이 소리쳤다.
“형, 죽지 마!”
“붙잡히믄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울 거네.”
김영철이 자신의 목에다 총구를 댄 채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공수부대원이 엠16소총을 예닐곱 번쯤 갈겨댔다. 화약 냄새가 사무실 안에 진동했다. 동시에 뜨거운 금속이 김영철의 머리 위를 스쳤다. 김영철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러자 총구가 목을 벗어나버렸고, 두 발이 연발로 나갔다. 이양현이 “어이쿠!” 하면서 쭈그려 앉았다. 총알이 콘크리트 바닥에서 튀어 이양현의 오른쪽 어깨와 등을 찢었다. 이양현은 공수부대원에게 총을 쏘려고 했지만 그만 두었다. 대신 ‘항복’이란 말이 먼저 떠올랐다.
“항복! 항복!”
“총 버리고 나왓!”
공수부대원이 복도에서 소리쳤다. 이양현이 김영철에게 말했다.
“영철이 형, 항복헙시다. 그냥 죽을지 모른께 살아서 증언이라도 남깁시다.”
김영철은 차라리 죽고 싶을 뿐이었다. 체념이나 다름없었다. 이양현이 또 다시 말했다.
“영철이 형, 항복헙시다.”
이양현이 먼저 복도에 총을 던지고 나갔다. 체념해버린 김영철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어서 뒤따랐다. 나가자마자 오른쪽 호주머니에 있던 실탄 1클립을 내놓았다. 공수부대원 중사가 김영철을 보고는 비아냥댔다.
“너, 한 발도 안 맞았어?”
여닫이문 밑에 누워있는 김영철에게 7발을 한두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쏘았는데, 한 발도 맞지 않은 사실이 이상했던 것이다. 김영철이 바닥에 납작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영철이 슬쩍 올려다보니 그는 전투복에 중사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윤상원을 쏘아 죽인 장본인이 분명했다. 중사가 또 말했다.
“너, 두 발 쏘았지?”
김영철이 자살하려다가 빗나간 오발탄 두 발이었다. 김영철이 대답하지 않자 공수부대 중사가 사무실 안에 엠16소총을 자동으로 놓고 난사하면서 “나와! 나와!”라고 외쳤다. 김영철이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에 소리쳤다.
“다 나오씨요!”
그제야 기동타격대장 윤석루, 부대장 이재호 등이 두 손을 들고 나왔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어린 시민군 열댓 명이 총을 내밀고 항복했다. 중사가 2층 복도 베란다에 모두 꿇어앉으라고 지시했다. 그때 이양현이 김영철에게 말했다.
“영철이 형, 20년만 삽시다.”
“감방에서?”
김영철은 치가 떨려 내일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중사가 포승줄로 묶으려다가 그만 두면서 말했다.
“이 폭도 새끼들을 2층에서 던져버려야지.”
그러나 던지지는 않고 원숭이처럼 까칠까칠한 침엽수를 타고 내려가게 했다. 김영철이 먼저 내려가자마자 한 공수부대원이 그의 목덜미를 사정없이 발길질을 했다. 김영철은 곤두박질하며 땅바닥에 입술을 찧어 피를 흘렸다.
잠시 후에는 공수부대원들이 도청 2층 회의실 소탕작전을 했다. 공수부대원들이 문을 열어놓고 난사하자, 김선문 등 20여 명이 엄폐물을 찾아 피신했다. 큰 기둥 뒤에 20여 명이 매달렸다. 워커를 벗어던진 김선문은 맨발이었다. 총과 수류탄은 물론이고 군복상의를 내팽개쳤다.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대원이 큰소리로 “항복! 항복!” 하고 외치자 공수부대원이 복도에서 “한 줄로! 나와!” 했다. 그러나 불안한 나머지 아무도 먼저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기동타격대 7조 대원인 손석기가 앞으로 나와 두 손을 들고 나갔다. 김선문은 두 번째로 복도 벽에 바짝 붙어서 기다시피 했다.
“이 새끼들아! 한 줄로 나왓!”
공수부대원이 꾸물거리는 대원들에게 총을 쏘면서 소리쳤다. 선두로 나선 손석기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 그래도 손석기는 5미터 정도를 기었다. 김선문은 그에게 다가가 총알이 스친 허벅지를 눌렀다. 손석기가 허리에 둘렀던 무슨 끈 하나를 내밀었다. 김선문이 어떻게 묶을지 몰라 허둥대자 공수부대원이 욕을 했다.
“이 새끼야! 빨리 묶어.”
그래도 묶을 곳을 찾지 못하고 있자 공수부대원이 다가와 능숙하게 처리했다. 뒤에 나온 대원들 중에는 수류탄 파편으로 다친 사람이 많았다. 김선문도 무릎이 깨졌지만 통증을 못 느꼈다.
도청 앞마당에는 붙잡힌 시민군들이 20줄 정도 얻어맞은 채 엎드려 있었다. 정상용은 스스로 투항한 쪽이었다. 본관 2층에서 “아, 이렇게 죽어가는구나. 내가 이렇게 죽는데 그동안 잘 살아왔는가. 저들에게 지는 것은 한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싸우다 가니 큰 후회는 없다”고 자위하다가 극도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자포자기한 채 두 손을 들어버렸던 것이다. 싸우다 붙잡혀 온 시민군 속에 섞인 정상용은 죽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서 눈을 감고만 있었다.
이윽고 공수부대 상사가 김영철에게 직업과 나이를 묻고는 등에 ‘선동, 총기소지자’라고 매직펜으로 썼다. 정상용, 이양현, 박남선, 이재호, 박래풍도 마찬가지였다. 잡혀온 시민군들도 족족 조사를 받았다. 이번에는 공수부대 하사가 한 쪽에서부터 기압 받고 있는 시민군의 인상을 살펴본 뒤 그들의 등에 ‘극렬’이란 글자를 매직펜으로 썼다. 김선문도 인상이 험상궂은 데다 얼굴에 피딱지가 붙어 있어 ‘극렬, 총기소지’로 분류했다. ‘극렬’이란 표현도 부족했는지 한 공수부대원이 개머리판으로 김선문의 등을 찍었다.
“이놈은 극렬의 극렬이야.”
마침 김선문의 얼굴 바로 밑에는 돌멩이 한 개가 박혀 있었다. 그의 얼굴이 방아 찧듯 그대로 돌부리에 부딪쳤다.
“아악!”
“이 새끼는 자해까지 하는구만.”
공수부대원이 욕설을 지껄이며 지나갔다. 김선문은 입안에 고인 피를 퉤 하고 뱉어냈다. 눈앞에 이빨 4개가 담배꽁초처럼 떨어졌다. 도청 정문 쪽에서는 외신기자들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김영철은 자신을 촬영하라고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자 공수부대 병사가 달려와 엠16소총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쳤다. 그래도 김영철은 공포감 때문인지 아프지 않았다. 감각이 마비된 듯했다. <끝>
김동수는 민원실 안에 앉아 경계를 서고 있었다. 총성이 울렸지만 마음은 박영순의 방송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창문 너머 보이는 보름달은 허옇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새벽안개가 도청 광장에 스멀스멀 들이찼다. 김동수의 옷에 단 대불련 배지를 부러워하던 기종도 씨는 도청 본관으로 갔다. 총성이 한동안 계속된 뒤부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김동수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김동수의 기도는 짧았다. 거기까지밖에 할 수 없었다. 도청 후문 쪽에서 울린 총성에 김동수는 서늘해진 자신의 목 왼쪽을 만졌다. 도청 앞쪽만 주시하면서 경계를 섰지 생각지도 못한 방향이었다. 손바닥에 검붉은 피가 묻어났다. 김동수는 희멀건 보름달을 흘깃 한 번 쳐다보고는 스르르 무너졌다. 동전 몇 개가 그의 호주머니 속에서 굴러 나왔다. 그의 두 팔이 축 늘어지자, 손목에 차고 있던 단주가 오롯이 드러났다. 2층 회의실에 모인 시민군들을 잘 웃기던 막노동꾼 노가대도 김동수 옆에서 맥없이 쓰러졌다. 마침 학생 시민군 구천서가 총기를 가지러 도청 지하실로 뛰어가다가 그를 발견하고는 엉엉 울었다. “형님, 으디를 가든 지를 웃겨 줄 거지라우?”
먼동이 터오자, 화단의 나무들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짙은 안개 속에서 검은 나뭇잎들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윤상원이 김영철에게 말했다.
“영철이 형, 어저께 제가 외신기자들에게 말했지라. 우리는 패배헐지 모르지만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기억헐 거라고. 인자 받아들일 운명의 시간 같습니다.”
“시방 나는 심장이 벌렁벌렁 헌디 뭔 고상헌 말인가?”
“시방 부모형제가 떠올라 맘이 약해질라고 허지만 희생한 시민들을 생각하믄 운명이지라.”
“나는 상원이 자네 대금소리나 쑥대머리를 한 번 듣고 ?네.”
이양현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진압을 당허는구나. 우리는 여그서 죽는구나. 잽혀도 구뎅이에 파묻히겄지.’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도청 광장의 왼편 수협 쪽에 공수부대원 예닐곱 명이 그림자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특등사수 출신 이양현은 조준해서 쏘았지만 한 발도 맞지 않았다. 심장이 쿵쿵 뛰는 탓에 총구가 흔들렸다. 공수부대원 몇 명은 시민군이 중기관총 엘엠지를 거치해 놓은 전일빌딩으로 들어갔다. 어느 새 공수부대원들이 도청 본관까지 들어와 시민군들을 마구 짓밟았다. 도청 본관 사무실에서는 시민군을 사살하는 듯 총성이 울리곤 했다.
기동타격대 7조인 박래풍도 2층 회의실 창문 너머로 총을 쏘았다. 식당에 밥을 먹으러 들어왔다가 벌이는 총격전이었다. 엠16소총 총성은 YMCA 쪽에서 계속 들려왔다. 엠16소총은 드릴로 바위를 뚫는 것처럼 드르륵 드르륵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카빈소총이나 엠1소총의 “따콩!” 하는 소리와는 달랐다. 그런데 엠16소총 총성이 또다시 울리자마자 식당에서 뒤늦게 밥을 먹던 대원 한 명이 쓰러졌다. 2층 회의실에 있던 시민군들이 일제히 엎드렸다.
박래풍은 기어서 총상을 입은 대원에게 다가갔다. 총알이 그의 허리를 관통했다. 박래풍은 자신의 빨간 러닝셔츠를 벗어 그의 허리를 동여매어 지혈했다. 대원이 추운 듯 덜덜 떨었다. 박래풍은 옆에 있던 홑이불을 덮어주고는 돌아섰다. 그런데 그때 수류탄이 “쾅!” 하고 터졌다. 순간, 동료 대원은 온데간데없었고 방금 그에게 덮어주었던 홑이불은 천정 형광등에 걸려 있었다. 박래풍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카빈소총도 반쪽은 날아가 버린 채 잡고 있는 개머리판만 남아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이 계단을 타고 2층 식당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박래풍은 더 이상 동료대원을 보살펴주지 못하고 화장실로 숨었다. 화장실에는 이미 2명이 숨어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이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총 버리고 나왓!”
“수류탄 깐다!”
세 사람은 ‘수류탄 터트린다.’는 말에 화장실 문을 열고 두 손을 들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공수부대원 병사가 말했다.
“너희들은 폭도들이니까 계단으로 내려갈 자격도 없어. 나무 타고 내려가!”
도청 회의실 창문 옆에는 잎이 바늘처럼 뾰쪽한 침엽수 몇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세 사람은 반항하지 못하고 나무가 있는 곳까지 뛰어 간신히 나뭇가지를 붙잡고 내려갔다. 땅에 엎드리자마자 공수부대원들이 군홧발로 짓밟고 다녔다.
2층 회의실에는 기동타격대 7조의 김선문 등 아직도 20여 명 이상이 남아 있었다. 이양현이 윤상원에게 귓속말을 했다.
“우리 저승 가서 만납시다. 거그 가서도 학생운동 헙시다.”
“그럽시다.”
그 순간 사과 모양의 최루탄이 굴러오더니 “펑!” 하고 터졌다. 곧 이어 공수부대원이 엠16 소총을 드르륵 드르륵 난사하면서 “총 버리고 나와! 나와!” 하고 소리쳤다. 총을 버리고 투항하라는 소리였다. 윤상원이 김영철에게 말했다.
“형, 나갑시다.”
그런데 뒷창문 쪽에서 엠16소총 총성이 드르륵 하고 났다. 그 순간 도청 앞쪽을 바라보고 있던 윤상원이 오른쪽 배를 움켜잡고 흐느적거렸다. 총알이 오른쪽 등에서 배로 관통해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김영철은 윤상원의 왼팔을 잡고 이양현은 그의 오른팔을 부축해서 바닥에 뉘였다. 이양현은 최루탄 가스에 눈물을 흘리면서 숙직실로 뛰어가 이불을 가져 와서 폈다. 김영철과 함께 윤상원을 이불 위에 눕혔다. 윤상원이 모기소리 만하게 중얼거렸다.
“영철이 형, 난 틀린 거 같소.”
“어흑!”
김영철이 흐느꼈다. 그러나 이양현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김영철은 보이지 않았다. 최루탄이 또 터졌다. 뿐만 아니라 창문 커튼에 불이 붙어 윤상원에게 떨어졌다. 커튼의 불길이 윤상원의 옷을 태웠다.
이양현은 김영철을 옆 사무실에서 찾았다. 기동타격대 사무실인 듯했다. 김영철이 미닫이문 밑에 엎드려 있었다. 카빈소총을 들고 달려온 이양현이 소리쳤다.
“형, 죽지 마!”
“붙잡히믄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울 거네.”
김영철이 자신의 목에다 총구를 댄 채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공수부대원이 엠16소총을 예닐곱 번쯤 갈겨댔다. 화약 냄새가 사무실 안에 진동했다. 동시에 뜨거운 금속이 김영철의 머리 위를 스쳤다. 김영철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러자 총구가 목을 벗어나버렸고, 두 발이 연발로 나갔다. 이양현이 “어이쿠!” 하면서 쭈그려 앉았다. 총알이 콘크리트 바닥에서 튀어 이양현의 오른쪽 어깨와 등을 찢었다. 이양현은 공수부대원에게 총을 쏘려고 했지만 그만 두었다. 대신 ‘항복’이란 말이 먼저 떠올랐다.
“항복! 항복!”
“총 버리고 나왓!”
공수부대원이 복도에서 소리쳤다. 이양현이 김영철에게 말했다.
“영철이 형, 항복헙시다. 그냥 죽을지 모른께 살아서 증언이라도 남깁시다.”
김영철은 차라리 죽고 싶을 뿐이었다. 체념이나 다름없었다. 이양현이 또 다시 말했다.
“영철이 형, 항복헙시다.”
이양현이 먼저 복도에 총을 던지고 나갔다. 체념해버린 김영철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어서 뒤따랐다. 나가자마자 오른쪽 호주머니에 있던 실탄 1클립을 내놓았다. 공수부대원 중사가 김영철을 보고는 비아냥댔다.
“너, 한 발도 안 맞았어?”
여닫이문 밑에 누워있는 김영철에게 7발을 한두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쏘았는데, 한 발도 맞지 않은 사실이 이상했던 것이다. 김영철이 바닥에 납작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영철이 슬쩍 올려다보니 그는 전투복에 중사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윤상원을 쏘아 죽인 장본인이 분명했다. 중사가 또 말했다.
“너, 두 발 쏘았지?”
김영철이 자살하려다가 빗나간 오발탄 두 발이었다. 김영철이 대답하지 않자 공수부대 중사가 사무실 안에 엠16소총을 자동으로 놓고 난사하면서 “나와! 나와!”라고 외쳤다. 김영철이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에 소리쳤다.
“다 나오씨요!”
그제야 기동타격대장 윤석루, 부대장 이재호 등이 두 손을 들고 나왔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어린 시민군 열댓 명이 총을 내밀고 항복했다. 중사가 2층 복도 베란다에 모두 꿇어앉으라고 지시했다. 그때 이양현이 김영철에게 말했다.
“영철이 형, 20년만 삽시다.”
“감방에서?”
김영철은 치가 떨려 내일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중사가 포승줄로 묶으려다가 그만 두면서 말했다.
“이 폭도 새끼들을 2층에서 던져버려야지.”
그러나 던지지는 않고 원숭이처럼 까칠까칠한 침엽수를 타고 내려가게 했다. 김영철이 먼저 내려가자마자 한 공수부대원이 그의 목덜미를 사정없이 발길질을 했다. 김영철은 곤두박질하며 땅바닥에 입술을 찧어 피를 흘렸다.
잠시 후에는 공수부대원들이 도청 2층 회의실 소탕작전을 했다. 공수부대원들이 문을 열어놓고 난사하자, 김선문 등 20여 명이 엄폐물을 찾아 피신했다. 큰 기둥 뒤에 20여 명이 매달렸다. 워커를 벗어던진 김선문은 맨발이었다. 총과 수류탄은 물론이고 군복상의를 내팽개쳤다.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대원이 큰소리로 “항복! 항복!” 하고 외치자 공수부대원이 복도에서 “한 줄로! 나와!” 했다. 그러나 불안한 나머지 아무도 먼저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기동타격대 7조 대원인 손석기가 앞으로 나와 두 손을 들고 나갔다. 김선문은 두 번째로 복도 벽에 바짝 붙어서 기다시피 했다.
“이 새끼들아! 한 줄로 나왓!”
공수부대원이 꾸물거리는 대원들에게 총을 쏘면서 소리쳤다. 선두로 나선 손석기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 그래도 손석기는 5미터 정도를 기었다. 김선문은 그에게 다가가 총알이 스친 허벅지를 눌렀다. 손석기가 허리에 둘렀던 무슨 끈 하나를 내밀었다. 김선문이 어떻게 묶을지 몰라 허둥대자 공수부대원이 욕을 했다.
“이 새끼야! 빨리 묶어.”
그래도 묶을 곳을 찾지 못하고 있자 공수부대원이 다가와 능숙하게 처리했다. 뒤에 나온 대원들 중에는 수류탄 파편으로 다친 사람이 많았다. 김선문도 무릎이 깨졌지만 통증을 못 느꼈다.
도청 앞마당에는 붙잡힌 시민군들이 20줄 정도 얻어맞은 채 엎드려 있었다. 정상용은 스스로 투항한 쪽이었다. 본관 2층에서 “아, 이렇게 죽어가는구나. 내가 이렇게 죽는데 그동안 잘 살아왔는가. 저들에게 지는 것은 한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싸우다 가니 큰 후회는 없다”고 자위하다가 극도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자포자기한 채 두 손을 들어버렸던 것이다. 싸우다 붙잡혀 온 시민군 속에 섞인 정상용은 죽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서 눈을 감고만 있었다.
이윽고 공수부대 상사가 김영철에게 직업과 나이를 묻고는 등에 ‘선동, 총기소지자’라고 매직펜으로 썼다. 정상용, 이양현, 박남선, 이재호, 박래풍도 마찬가지였다. 잡혀온 시민군들도 족족 조사를 받았다. 이번에는 공수부대 하사가 한 쪽에서부터 기압 받고 있는 시민군의 인상을 살펴본 뒤 그들의 등에 ‘극렬’이란 글자를 매직펜으로 썼다. 김선문도 인상이 험상궂은 데다 얼굴에 피딱지가 붙어 있어 ‘극렬, 총기소지’로 분류했다. ‘극렬’이란 표현도 부족했는지 한 공수부대원이 개머리판으로 김선문의 등을 찍었다.
“이놈은 극렬의 극렬이야.”
마침 김선문의 얼굴 바로 밑에는 돌멩이 한 개가 박혀 있었다. 그의 얼굴이 방아 찧듯 그대로 돌부리에 부딪쳤다.
“아악!”
“이 새끼는 자해까지 하는구만.”
공수부대원이 욕설을 지껄이며 지나갔다. 김선문은 입안에 고인 피를 퉤 하고 뱉어냈다. 눈앞에 이빨 4개가 담배꽁초처럼 떨어졌다. 도청 정문 쪽에서는 외신기자들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김영철은 자신을 촬영하라고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자 공수부대 병사가 달려와 엠16소총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쳤다. 그래도 김영철은 공포감 때문인지 아프지 않았다. 감각이 마비된 듯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