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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에서 남북관계를 떠올리다
2020년 03월 03일(화) 00:00
김성수 성균관대 학부대학 글쓰기 교수
일종의 명예혁명인 촛불항쟁으로 이룩한 문재인 정부가 위기를 맞고 있다. 물론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것인데, 거의 국난에 가까운 위기다. 문제는 특정 국가, 특정 지역, 특정 종교 등등 타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혐오와 배타가 극에 달한 점이다. 낯선 상대는 두렵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 불안감이 커진다. 다만 역병에 대처하는 동아시아 북·중·일(北·中·日)과 비교하면 그나마 우리가 나은 점도 있다. 선진 의료 시스템 및 실시간 정보 공개 등 민주정부의 투명한 보건행정과 전력투구가 실감된다.

그런데 공포와 혐오가 극대화되면서 포용력과 공감대가 사라진 ‘국민감정’이 문제다. 처음 ‘우한 폐렴’이라고 중국을 혐오하고 배타시했던 특정 정파, 일부 언론, 일부 국민의 처지가 이젠 바뀌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 처지가 혐오와 배타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역병이 아니라 중국을 싸잡아 혐오했던 분들은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자. 지금 특정 국가, 특정 지역, 특정 종교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다수 국가가 배척한다. 우리가 중국과 신천지를 비난하고 혐오했던 데 비례해서 지구라는 더 큰 공간에서 시나브로 배제되는 부메랑 효과는 뼈아프다.

이때 필요한 것은 혐오와 배타가 아니라 포용과 연대다. 세월호(2014. 4. 16) 사건 당시 온통 구원파와 유병언에게 공격의 초점을 맞춰 정부와 지도층이 책임을 벗으려 했던 일이 기억에 선명하다. 그때처럼 작금의 사태를 중국이나 종교 또는 현 정부와 지도자에게 온통 책임을 떠넘기거나 혐오로 문제를 호도하는 것은 마녀사냥이다. 최소한의 품위조차 내던진 일부 언론, 종교인, 정치인의 막말과 가짜뉴스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반면 국난을 극복하는 의료진과 행정 당국, 자원봉사자들의 자기희생과 노력에 국민적 지지와 성원·연대가 필요하다. 인류 공통의 휴머니즘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인 특유의 ‘할 수 있다’라는 위기 극복 의지가 지역감정과 정치 종교적 혐오를 뛰어넘었으면 한다.

그나저나, 국난에 버금가는 작금의 사태에서 남북관계를 되돌아보게 된다. 평생 북한 문화예술을 공부하고 남북 교류 사업에 참여한 필자로선 1년 전 북미 하노이 회담 결렬(2019. 2. 28)의 아픔이 겹쳐 떠오른다. 정부의 통일 정책과 평화 시대를 위한 노력은 1년 만에 거의 물거품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코로나19 사태로 갈라진 우리네 국민감정이 온통 혐오와 배타뿐이라면, 통일되었을 때 북한 주민을 어찌 대할지 걱정이다. 가령 ‘북한에서 코로나 발병자를 총살했다’라는 확인 불가 소문을 ‘아니면 말고’ 식으로 퍼뜨리는 언론도 있다. 3월1일 자 노동신문을 보면 ‘비루스(바이러스) 전염병을 막기 위한 선전과 방역 사업 강도 높이 전개’란 제목으로 ‘의학적 감시 대상자’가 연 7000여 명 있다고 한다. 우리로 보면 ‘자가 격리자’를 근거 없이 총살했다는 식으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도와줄 방도를 찾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남북한이 한반도의 동서(東西)처럼 한겨레요 같은 나라였다는 데서 출발하자. 같은 언어와 문자를 쓰는 혈연공동체로 서로 잘 통하기도 한다. 가령 북한 시인 박철의 시 ‘이 사람들 속에 내가 산다’(2019. 10)를 보면, 지하철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랑스러운 여대생의 모습이 그려진다. “(전략) 전동차는 미덕의 향취를 싣고 달리고/ 나의 생각은 그 향취 속을 달린다/ 자리를 양보했다고 처녀가 서서 가는가?/ 아니, 선망의 눈길들에 떠받들린/ 고상한 도덕 그 방석에 앉아서 간다.”

문학적 상상력에 관한 한 한반도의 남북에는 공통 정서가 남아 있다. 서울과 평양의 정치적 상상력은 지구 저 반대편만큼 멀지만 때로는 위 시구처럼 통역과 번역이나 해설이 따로 필요 없을 만큼 가깝기도 하다. 분단과 냉전의 시공을 가로질러 이제라도 서로 내면의 소통을 조심스레 모색하자. 코로나19 사태로 여야와 수도권·지방이 합심하고 동서와 교계(敎界)가 화합하지 못한다면, 다가올 통일이나 동아시아 평화는 요원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광주·대전·서울에서 대구·경북으로 도움의 손길을 더 내밀자. 나아가 힘들겠지만, 북한에도 역병 예방 장비와 진단 시약을 보냈으면 한다. 내 처지가 어려울수록 더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우리네 인심이다. 또한 그것이 진정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타자에 대한 온갖 험담과 혐오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난을 극복하는 과정이 바로 통일의 정서적 시금석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