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가 유엔 북한인권결의를 지지한 이유 - 서보혁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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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가 유엔 북한인권결의를 지지한 이유 - 서보혁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년 11월 25일(화) 00:20
지난 11월 19일, 뉴욕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 제3위원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유엔에서는 북한인권 상황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해서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고 대규모로 침해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이 투표를 거치지 않고 만장일치로 통과된 지 올해로 21년째 되는 사실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이번에 유엔 북한인권결의 통과는 이재명 정부 들어 처음이다. 정부는 이번 결의안을 공동 상정한 61개국에 참여하였다. 북한인권결의는 한국의 입장에서 인권의 보편성 존중만이 아니라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등 다른 이슈들을 함께 고려할 복잡한 성질을 띠고 있다.

그중 앞의 측면을 강조하고 대북 압박에 나서는 보수성향 정부의 경우 북한인권결의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그와 달리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중시하는 진보성향 정부의 경우는 북한인권결의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았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북한 결의안 공동 제안국 불참은 물론 표결 불참 혹은 반대 투표한데 반해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부는 공동 제안국에 참여하였다.

그렇다면 북한인권결의에 찬성한 이재명 정부는 보수 정부인가, 아니면 새로운 진보 정부인가? 이재명 정부가 북한인권결의를 지지한 요인들은 여러 차원에 걸쳐 있는데 그 맥락이 기존 진보 성향 정부 때와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첫째,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대단히 심각하고 그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어졌다는 사실이다. 유엔의 결의들은 북한인권상황이 세계 최악의 수준으로 보고 북한정부가 협력하지 않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는 2014년 2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가 채택된 이후 주요 인권문제들에서 반인도적 범죄 의혹과 그에 대한 북한 정부의 책임이 북한인권결의에 계속 거론되어왔다. 나아가 근래에는 북한 정부의 핵·미사일 개발이 인권 침해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도 결의에 포함되고 있다.

이와 같이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에 한국 정부가 공감하면서 “북한 주민의 실질적 인권 향상을 위해 국제사회와 긴밀한 협력을 지속해 나가는”(외교부 논평) 것이 합리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재명 정부는 북한인권결의를 지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내용에 한국의 입장을 적극 반영시키자는, 일종의 전략적 판단을 하였다. 그것이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정착을 북한 인권 개선과 상호보완적으로 접근하는 태도이다.

과거 민주당 정부 시기 북한인권결의에 대한 판단은 두 이슈를 대립적으로 판단한 경향이 있다. 이번 경우에도 정부 입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중시해 결의안 제안국에 불참하자는 의견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인권결의안 제안국으로 참여해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자는 입장이 우세하였다. 이번 결의에 남북대화를 포함해 ‘대화’가 9회, ‘평화’가 2회 언급되었다. 다만 한국이 북한인권결의안 제안에 참여해 그 내용을 주도한다는 입장은 이전 정부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셋째, 김정은 정권이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고 남북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는 점도 정부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북한인권결의에도 “(제안국들은) 북한이 통일을 부정한다는 발표가 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해 북한인권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한다”고 말하고 있다. 남북대화가 중단되고 남북이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인 점이 부상한 형국에서 국제규범에 근거해 일관된 선의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최선의 입장일 것이다.

이상 국제사회, 북한, 국내 등 세 가지 차원에서 북한인권결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지 입장을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정부가 천명한 ‘평화 공존과 번영의 한반도’와 ‘세계로 향하는 실용외교’(국정기획위원회)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인권문제를 최고지도자와 체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인식하고 민감한 태도를 보여왔다. 정부는 북한을 향한 공개적인 인권문제 거론은 그 취지보다 역효과가 큼을 알고 있다. 그래서 북한이 관여하는 유엔 인권 메커니즘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명분과 실리를 병행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이산가족 상봉, 접경지역 공동 방재, 취약계층 인도적 지원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더욱이 한반도 평화와 북한인권 개선은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 없는 한 묶음의 대과제이다. 이재명 정부의 북한인권결의 지지가 이 문을 열어놓은 셈이다.

학계와 언론에서는 평화와 인권이 상호보완적 관계임을 교육하고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평화가 인권(평화적 생존권)이고, 인권이 평화(인간안보)라는 사실과 둘의 보완적 관계가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둘을 병행하며 북한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완전히 새로운 성질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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