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민주주의의 시간 - 조운찬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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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해맞이를 위해 망우산에 올랐다. 몇 년째 연례행사처럼 산에 오르고 있지만, 이번에는 두 아이가 동행했다. 새해 소망을 물으니, 둘 다 청년 일자리 얘기를 꺼냈다. 사회 초년생인 아들은 처우가 나은 곳으로 옮기고 싶다고 했고, 딸은 지금의 직장에서 좀더 성과를 내었으면 한다고 답했다. 해맞이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각자의 꿈과 희망을 빌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와 정부에는 어떤 바람을 갖고 있을까? 지난달 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5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는 주목할 만하다. 국민을 상대로 희망하는 한국의 미래상을 묻는 조사에서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31.9%)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28.2%)를 앞지르는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1996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경제 성장’의 가치가 줄곧 1위를 지켜왔는데, 처음으로 ‘민주주의’에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경제나 복지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12·3 불법계엄 사태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를 목도하면서 모두가 그 소중함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국가의 운영 원리를 넘어, 국민의 일상과 삶을 지켜가는 소중한 가치가 되고 있다.
물론 성숙한 민주주의는 소망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모두가 지혜로운 삶을 실천하는, 깨어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곧 시작되는 ‘내란 재판’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중대한 시험대다.
최근 특검 수사에서 보듯이 내란의 주범들은 반성할 줄 모르고, 극우보수 세력은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때 헌법 유린 사태에 대한 법원의 엄중한 단죄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관건이 될 것이다.
6월의 지방선거 또한 민주주의 성숙을 위해 놓칠 수 없는 시간이다. 지방자치제 30년이 지났지만 자치에 기반한 민주주의의 정착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게다가 많은 농어촌이 지방 소멸 위기에 처하면서 지자체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 다행히도 7개 기초 지자체에서 올해부터 농어촌기본소득제를 도입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와 균등 발전을 위한 마중물 역할이 기대되고 있기는 하다.
이번 선거가 자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높이고, 중앙권력 분산과 균형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지난해가 인공지능(AI) 대중화의 문을 열었다면, 2026년은 AI가 시민의 삶 깊숙이 파고드는 실질적인 변화의 해가 될 것이다. 거대 자본이 선도하는 AI 기술은 스스로 학습하면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 또한 공공부문의 AI 대전환을 기치로 내걸며 대대적인 예산 투자를 공언하고 있어, 그 기술이 어디까지 진화해 갈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기업과 국가는 AI의 ‘효율성’을 앞세워 노동시간 단축과 생산성 향상 등 장밋빛 미래를 그려내고 있다. 그렇지만 불확실한 미래, 시민 감시체계 강화, 권력의 중앙집권화, 문화 다양성 훼손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는 높아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AI가 핵무기보다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내놓고 있다.
거대 기업자본과 국가권력이 끌고 가는 AI는 이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AI 기술의 설계와 운용 과정에 민주주의의 가치가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 기술의 알고리즘 편향성을 감시하고 데이터 주권을 지켜내는 시민 주권 의식 함양은 절실히 필요하다.
향후 이어질 관련 입법 과정에서도 유권자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AI의 성과를 특정 계층이나 집단이 독점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 전체가 향유할 수 있도록 시민 역량 교육을 강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것이 AI 시대에 요구되는 ‘기술 민주주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구분해 불렀다고 한다. 크로노스가 특별한 의미 없이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특별한 의미와 결단으로 충만한 시간을 말한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새해는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2026년은 모두가 정치 주권뿐 아니라 기술 주권까지 발휘하는, 깨어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경제나 복지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12·3 불법계엄 사태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를 목도하면서 모두가 그 소중함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국가의 운영 원리를 넘어, 국민의 일상과 삶을 지켜가는 소중한 가치가 되고 있다.
최근 특검 수사에서 보듯이 내란의 주범들은 반성할 줄 모르고, 극우보수 세력은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때 헌법 유린 사태에 대한 법원의 엄중한 단죄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관건이 될 것이다.
6월의 지방선거 또한 민주주의 성숙을 위해 놓칠 수 없는 시간이다. 지방자치제 30년이 지났지만 자치에 기반한 민주주의의 정착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게다가 많은 농어촌이 지방 소멸 위기에 처하면서 지자체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 다행히도 7개 기초 지자체에서 올해부터 농어촌기본소득제를 도입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와 균등 발전을 위한 마중물 역할이 기대되고 있기는 하다.
이번 선거가 자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높이고, 중앙권력 분산과 균형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지난해가 인공지능(AI) 대중화의 문을 열었다면, 2026년은 AI가 시민의 삶 깊숙이 파고드는 실질적인 변화의 해가 될 것이다. 거대 자본이 선도하는 AI 기술은 스스로 학습하면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 또한 공공부문의 AI 대전환을 기치로 내걸며 대대적인 예산 투자를 공언하고 있어, 그 기술이 어디까지 진화해 갈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기업과 국가는 AI의 ‘효율성’을 앞세워 노동시간 단축과 생산성 향상 등 장밋빛 미래를 그려내고 있다. 그렇지만 불확실한 미래, 시민 감시체계 강화, 권력의 중앙집권화, 문화 다양성 훼손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는 높아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AI가 핵무기보다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내놓고 있다.
거대 기업자본과 국가권력이 끌고 가는 AI는 이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AI 기술의 설계와 운용 과정에 민주주의의 가치가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 기술의 알고리즘 편향성을 감시하고 데이터 주권을 지켜내는 시민 주권 의식 함양은 절실히 필요하다.
향후 이어질 관련 입법 과정에서도 유권자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AI의 성과를 특정 계층이나 집단이 독점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 전체가 향유할 수 있도록 시민 역량 교육을 강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것이 AI 시대에 요구되는 ‘기술 민주주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구분해 불렀다고 한다. 크로노스가 특별한 의미 없이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특별한 의미와 결단으로 충만한 시간을 말한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새해는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2026년은 모두가 정치 주권뿐 아니라 기술 주권까지 발휘하는, 깨어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