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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야 받는 복(福)
2020년 02월 14일(금) 00:00
[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박중빈 1891~1943)께서 서울교당에서 건축 감역을 하는데, 하루는 여러 일꾼들이 일을 하다가 잠시 쉬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억지로는 잘살 수 없는 것이요, 반드시 무슨 우연한 음조(陰助)가 있어야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종사께서 그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살아가자면 우연한 가운데 음조(陰助)와 음해(陰害)가 없지 아니하나니 모르는 사람은 그곳을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조상이나 귀신이 맡아 놓고 주는 것인 줄로 알지마는 아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이 다 각자의 심신(心身)을 작용한 결과로 과거에 자기가 지은 바를 현재에 받게 되고, 현재에 지은 바를 또한 미래에 받게 되는 것이요, 짓지 아니하고 받는 일은 하나도 없는 줄로 아나니,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고난(苦難)을 억지로 면하려 하나, 지혜 있는 사람은 이미 지어 놓은 죄복(罪福)은 다 편안히 받으면서 미래의 복락(福樂)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며, 같은 복을 짓는 중에도 국한(局限) 없는 공덕(功德)을 공중(公衆)에 심어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복록(福祿)의 원천이 마르지 않게 하나니라”라고 하였다.

사노라면 참으로 살맛 나게 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일들도 있다. 나의 노력으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되면 기분이 무척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운 일은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나 복(福)이 내게 굴러 올 때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남에게 일어나면 한껏 부러워하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숨어서 도와주기에 그런 결과가 온다고 한다.

반면 나에게 크고 작은 재앙이 오면 운이 없었거나 재수가 없다고 하며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원망을 하다가 괜스레 가까운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투덜거린다. 이런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면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든 피하려고만 한다. 다급하면 하나님이나 부처님 등 자기가 믿는 절대자에게 구원을 요청하거나 조상이나 귀신에게 도움을 청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이 내가 선악(善惡)간에 지은 업(業)과는 무관하게 다 숨어서 도와주거나 해(害)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인과(因果)의 이치를 모르기에 나오는 생각들이다.

원불교 대종경 인과품에 “식물들은 뿌리를 땅에 박고 살므로 그 씨나 뿌리가 땅 속에 심어지면 시절의 인연을 따라 싹이 트고 자라나며, 동물들은 하늘에 뿌리를 박고 살므로 마음 한 번 가지고 몸 한 번 행동하고 말 한 번 한 것이라도 그 업인(業因)이 허공 법계에 심어져서, 제 각기 선악의 연(緣)을 따라 지은대로 과보가 나타나나니, 어찌 사람을 속이고 하늘을 속이리요”라고 하셨다.

인과(因果)란 ‘내가 지은대로 받는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이치다. 모든 것을 내 자의(姿意)와는 상관없이 모두 다 맡기고만 산다는 것은 스스로를 무력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도와준다는 것도 사실은 내가 공력(功力)을 들인 만큼 그 감응(感應)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기도의 결과도 마찬가지다. 내게 복(福)이 오면 방심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더욱 감사하며 선업(善業)을 지어가야 한다. 어려움이나 죄업이 다가오면 원망하는 마음을 내기 이전에 ‘이제야 갚아야 할 빚을 갚는구나’ 생각하고 달게 받으며 새로 짓는 업(業)은 선하게 지어가야 한다. 또 같은 복(福)을 지을 때에도 한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복(福)을 짓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복(福)을 짓는 것이 좋다.

그래서 복(福)이란 짓고 보면 그 결과가 항상 없어지지 않고 솟아나는 샘물과 같다고 했다. 다시 말해, 인과의 이치란 체념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바로 무안한 복문(福門)을 열어 가는 지름길을 알려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