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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전통과 인간의 염치
2020년 02월 13일(목) 00:00
[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
경상북도 영양군에 살았던 정부인 안동 장씨(1598~1680)가 1670년경에 저술한 ‘음식디미방’은 한반도 식문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문헌이다. 이전의 식생활 관련 문헌들은 남성에 의해 쓰였고, 상고주의를 중시했던 당시 사대부의 관행상 중국 문헌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모방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음식디미방’은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수십 년 동안 한 집안의 살림을 맡아 왔던 주부가 70세에 이르러 후손들에게 조리법을 전해 주기 위해 쓴 조리서다.

때문에 17세기 후반 조선과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음식과 식재료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된다. 또한 여성이 한글로 쓴 최초의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은 구어체로 서술되어 있어 문장 자체가 매우 친근하고 아름답다. 아울러 당시의 음식과 식재료의 명칭 그리고 조리와 관련된 동사나 형용사 등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 우리말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음식디미방’에는 총 146가지의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조리법에 등장하는 육류의 활용에는 지금의 식생활과 몇 가지 큰 차이가 난다. 우선 개장국, 개고기 찜, 개고기 느르미 등 개고기를 재료로 한 조리법이 여섯 가지나 기록되어 있다. 이는 17세기에 개고기가 육류로서 비중이 매우 높았음을 방증한다. 이에 반해 돼지고기의 비중은 의외로 낮아 두 가지 밖에 없는데 멧돼지와 집돼지를 구분해서 조리법을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육류 중에서 활용도가 제일 높은 식재료는 꿩인데 총 열다섯 가지 조리법에 등장한다. 당시 꿩은 야생에서 흔한 조류로 조선 왕실에서는 꿩을 잡는 ‘응방’이라는 기관을 별도로 설치할 정도로 중요한 식재료로 여겼다. 가장 독특한 식재료는 ‘웅장’이라는 곰 발바닥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1611년 허균의 ‘도문대작’에도 기록이 보인다. “웅장은 산골에 모두 있다. 음식 만들기가 쉽지 않아서 잘못하면 제맛을 잃어버린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통해 곰 발바닥이 귀하지만 공급 가능한 식재료였음을 알 수 있다.

‘음식디미방’을 통해 나는 전통의 개념을 다시금 생각한다. 의식주 가운데 음식은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갖는다. 건축과 의상은 어떤 형태로든 그 실체가 남아 수백 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존재한다. 하지만 음식은 처음에는 형태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썩고 분해되어 사라진다. 형태가 없으니 문헌을 통해 실체를 가늠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왜곡과 오류의 여지가 많은 유산이다. 이 때문에 ‘음식디미방’ 같은 조리서를 통해 원형을 복원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야 조선시대의 맛과 미각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음식에서 전통의 개념에는 변화와 혁신이 내포되어 있다.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고수하는 교조주의는 과거의 음식을 낡은 유물로 전락시킨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듯 전통 역시 당파성을 가진다. 이념, 종교, 가치관, 환경에 따라 식재료와 조리법은 얼마든지 재해석되고 변용된다. 따라서 음식은 보전에 머무르지 않고 당대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극복할 때, 다음 세대로 물려줄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된다. 음식의 전통은 이러한 변화와 혁신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풍요로운 식문화를 가능케 한 토양이 되었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남의 생명을 끊음으로써 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이러한 숙명을 가진 인간이 반드시 가져야 할 도리는 염치다. 염치는 윤리다. 수렵시대에 동물을 포획하는 것과 오늘날 야생동물을 포획하는 것에는 서로 다른 윤리적 기준이 적용된다. 같은 맥락에서 ‘음식디미방’의 음식을 복원하기 위해 웅장이나 개고기를 사용하는 것은 현재의 윤리적 기준에 맞지 않다. 전통의 복원과 계승 역시 당대의 윤리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 먹거리 문제에 있어 강력한 윤리적 통제는 제 생명을 유지해 주는 자연과 오래도록 공존하기 위한 인간의 필연적 선택이다.

2002년의 사스와 2015년의 메르스 그리고 현재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모두 박쥐에서 시작해 중간숙주를 거쳐 인간에게 옮겨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스는 사향고양이, 메르스는 낙타가 중간숙주임이 밝혀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 천산갑이 중간숙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천산갑은 멸종위기종임에도 불구하고 정력에 좋다는 소문 탓에 가장 많이 밀매되는 동물 중 하나라고 한다.

인간이 염치를 모르고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분간하지 못할 때, 전 세계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지금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과거 인류의 재앙을 구원한 것이 음식라면, 앞으로는 음식이 인류를 재앙으로 몰고 갈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먹거리에 있어서 윤리는 한 국가의 전통과 식문화를 훨씬 뛰어넘는 당위가 되었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