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와 잠든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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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와 잠든 사연
2020년 01월 02일(목) 00:00
지난 연말 출근길 전철에서 옆자리에 앉은 60대 후반의 남자로부터 얼마 전 송아지를 껴안고 잠이 든 사연을 듣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일하러 우리에 들어갔다 추운 날씨에 송아지를 껴안은 채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아기 소를 지키듯 엄마 소도 옆에 같이 잠들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젖을 짜러 가면 발길로 차고 곁을 내주지 않던 엄마 소가 그날 이후 순순히 젖을 짜도록 해 주더란다.

그는 그날 밤 따뜻했던 송아지의 품과 엄마 소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세상 사는 게 뭐 별거냐. 돈이야 많으면 좋겠지만 뭐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날 따뜻하게 해 준 그 송아지처럼 살면 좋겠는데” 하며 허허 웃었다. 아마도 그날 전철 안에서 나처럼 이 이야기를 들은 이가 있다면 작은 삶의 지혜 하나를 얻은 듯했을 것 같다.

시민들이 기증한 책과 판매 수익금으로 소외된 이웃을 도우며 세상을 따뜻하게 비췄던 아름다운가게 용봉점 헌책방이 10년 만에 문을 닫았다. 지난해 마지막 날 열린 폐점식에는 활동 천사 등 책방과 인연을 맺었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추억을 함께 나눴다. 폐점 관련 기사를 위해 개점 때부터 써 왔던 기사와 사진들을 보니 많은 이들이 고군분투해 온 게 느껴졌다. 지금은 아이 엄마가 된 담당 간사의 앳된 모습도 반가웠다. 그녀에게 사진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도 결산을 준비하며 옛 자료를 봤는데 “그때 정말 열심히 일했고,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왔었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현재 자신의 모습에 비추어 ‘초심’(初心)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했다.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처음처럼’ 중)이라 했던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으며 즐겁게, 재미있게 살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초심’이라는 단어가 꼭 열심히, 부지런히 사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을 터. 무언가를 시작했을 때의 순수했던 마음, 이리저리 재는 것 없이 앞으로 달려가던 마음, 그것이면 족할 것 같다. 더불어 누군가에게 송아지의 따뜻한 품이 되는 것도 마음에 새기면 세상은 좀 더 살 만하지 않을까.

/김미은 문화부장 me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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