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교단에서-김진구 일신중 교감] 지난 주말
2019년 12월 03일(화) 04:50
#토요일, 하모니카 동호인들과 위문 공연(재능 자랑?)을 갔다. 도심 외곽 산비탈에 남서향으로 지은 요양원이어서 풍광이 좋았다. 사계절의 변화가 가슴으로 들어올 듯 탁 트였다. 연분홍 원복을 입은 16명이 생활하고 계셨는데 대부분이 휠체어를 타고 중앙 거실로 모였다. 요새 급증하여 거리거리 들어선 노인주간보호센터(일명 노치원)는 낮에만 함께 생활하고, 요양병원은 심신의 치료가 지속적으로 필요하신 분들이 생활하며, 요양원은 그 중간쯤 되는 단계이다. 70~80년 지나온 세월의 길이는 비슷한데 표정이나 주름은 각각이셨다. 주로 아실 만한 흘러간 옛노래를 연주했는데도 몇 분을 빼고는 크게 감흥이 없는 것 같았다. 회원들이 재롱을 피우면서 박수를 유도해도 잠깐 호응 하다가 다시 잠잠.

빠른 폴카 리듬의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연주했는데 나만 온갖 폼 잡고, 어르신들은 부산정거장인지 광주정거장인지 무표정이셨다. 하모니카를 닦아 안주머니에 넣으면서 후회했다. 적적하고 반복된 생활에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나누려고 왔는데 착각인 것 같았다. 우리 회원들이 노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 힘든 노인들이 우리를 위해 관객으로 동원되어 봉사해 주신 것처럼 생각되었다. 밥 한술 떠 드리고, 정갈하게 머리 한번 빗겨드리는 것이 낫지, 사지 멀쩡하니까 하모니카 들고 제 잘난 맛에 꼰대질 하는 느낌이었다. 할머니 한 분이 공연 중에도 한쪽 구석에서 화투 패를 맞추고 있었다. 그분과 민화투 한 판 치고는 서둘러 요양원을 나섰다.

#일요일, 50대 중반의 중년이 색소폰을 들고 음악학원 원장을 찾아왔다. 몇 백 명이 모인 곳에서 색소폰 연주를 하는데 아코디언으로 반주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배운 지 3년 됐는데 수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연주를 한단다. 악기 3년에 발표회라, 놀라웠다. 그런데 몇 곡을 맞춰보는 과정에서 여러 모습을 내보였다. 역할 조율을 하면서 원장이 몇 마디 하면 그의 답변은 이랬다. “나도 나팔 3년 불었다” “프로 될 생각은 전혀 없고 즐길라고 한다” “색소폰인 내가 주연이니 아코디언은 소리를 죽여라” “청중이 많아 떨 수 있으니 그때 커버를 잘해 달라” “정치인 누구도 오고 또 누구누구 유명한 사람이 엄청 온다” 원장의 표정이 변해갔다. 40여 년 아코디언 연주로 한강 이남에서 손가락 안에 든 분이다.

두 분이 연주를 맞춰보고 나서 “교직에 있는데 악기를 좋아한다”고 원장이 나를 소개하니 대뜸 “얼릉 그만 두씨요, 우리 학창 시절에 나이 든 선생님들 생각하면 쓰것씁디요?”라고 했다. 뜨끔했다. ‘이 양반이 내 이력을 알고 있나?’ 순간 답변이 궁했다.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만 두면 평교사 한 분이 승진할 것이며, 그 자리에 신규를 채용하니 일자리 순환도 되고, 나이 들어 갈수록 호감도 떨어지니 맞는 말이다. 그러면서 “전남 어느 교육장 ○○○하고 친하고, 교장 누구누구를 알고...” 대단했다. 초면에 이러기도 힘든데.

알고 보니 연주회가 아니라 어느 정치인 행사 식전 프로그램으로 뽕짝 두어 곡 연주하는 것이었다. 색소폰 소리도 딱 3년만큼 쇳소리가 났다. 왕꼰대들 앞에서 꼰대질을 하다니, 허름한 학원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노악사(老樂士)가 빠진 머리카락 감추려고 쓴 색 바랜 모자 때문이었을까, 색소폰 금빛처럼 돈이 좀 있어서일까. 색소폰이 떠난 후 원장은 들러리 서지 않겠다고 했다. 정치인과 가까이 지내면서, 돈 몇 푼 후원하면서 웬만한 민원은 한 다리만 거치면 해결될 것처럼, 유명 인사는 다 아는 것 같은 이 초겨울의 중년. 하기야 지금도 정치인 주변을 맴돌다가 물들어 오니 노 젓고 있는 분들을 쉽게 볼 수 있기에 이런 경박하고 비루한 언행이 통한지도 모른다.

묵직한 아코디언을 메고 학원을 나섰다. 가로수 낙엽이 길가에 방치된 중고차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푸른 잎 아니었던 단풍 없고, 새 차 아니었던 중고차 없을진대.

지난 주말은 이렇게 보냈는데, 그 앞 주말은 엄청 기쁜 일이 많았다. 다음 주말은 어떨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