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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5·18부상자동지회 초대회장, 시인·연극인] 5월 꽃을 아름답게 피우기 위해
2019년 11월 20일(수) 04:50
지난 11일, 전두환의 재판이 있던 날. 골프장은 뻔질나게 다니면서 광주는 기피하고 외면하는 뻔뻔스러운 전두환은 끝내 재판정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참석한 변호사와 조종사들은 어이없게도 헬기 사격을 부인했다.

그날 저녁, 허름한 식당에서 이름 없는 소설가와 함께 한 의인을 만났다. 88년 5월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80년 5월 23일 당시의 주남마을과 송암동 양민 학살 참상을 폭로한 최영신 전 7공수 하사관이다. 그는 참상을 폭로한 후 살해 위협과 공포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당신의 용기에 힘입어서 많은 사람들이 양심선언에 동참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2만 명에 육박하는 계엄군 중 불과 몇 사람만이 그날의 아픔을 전해서 안타깝다고도 했다. 더욱 슬픈 것은 계엄군으로부터는 배신자로 낙인 찍혔고, 국민들로부터는 계엄군이란 인식 때문에 어느 쪽으로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 마치 5월 영령들이 구천 하늘을 방황하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러한 정신적·육체적·경제적 고통에 시달린 그가 헤어질 때 마지막으로 한 말에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고향이 경상도 영주입니다. 우리 계엄군들은 명령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는데 고통스럽죠. 우리가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낸지 아십니까? 우리도 억울합니다. 피해자입니다.”

진심 어린 그의 말이 늦가을 허공에 웅웅거린다. “내년 40주년 이전에 양심선언을 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진상이 밝혀졌으면 합니다. 12월에는 송암동의 참혹한 현장에도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우리도 39년 동안….”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대신 ‘휴우’ 한숨을 내쉰다.

1995년 5·18 특별법이 통과되고 전두환 일당이 구속되었으나 곧바로 풀려났다, 광주 학살의 사과와 반성도 없는 상황에서 정치적 협상에 의해 사면을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후 끊임없이 5·18을 왜곡·폄훼하는 세력들이 준동했다. 또다시 수많은 세월이 흐른 후, 늦게나마 진상조사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2018년 9월부터 시행되어야 함에도 한국당의 방해로 답보 상태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최근에야 개정안을 통해서 새로운 5·18 조사위원이 추천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다. 5월 단체들도 추천 인사의 면면에 문제가 있으나 더 이상 늦출 수 없으니 수용하려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이제 청와대의 결단만 남은 셈인데.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아마 현명하게 대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안종철 박사를 비롯한 아홉 명의 위원들이 지혜를 모아서 39년 동안 왜곡된 5월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 광주 시민의 한을 풀 일만 남았다. 다시는 이 땅에 억울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 주었으면 한다.

특히 80년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들이 양심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양심선언을 한 사람들의 신분과 예우 등도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만 한다. 그들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용서를 구하면 뜨겁게 보듬어 주자. 우리는 슬픔을 희망으로 바꾼, 아니 죽음마저 달관한 민주 시민들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