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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1월 3일 광주서 시작돼 전국·해외로 뻗어나간 학생 주도 항일 시위
■학생독립운동은?
2019년 11월 04일(월) 04:50
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돼 이듬해 3월까지 전국은 물론 해외로까지 뻗어나간 학생 주도의 항일 시위다. 1919년 3·1운동, 1926년 6·10만세운동과 함께 3대 항일운동(민족독립운동)으로 꼽힌다. 1930년 상해임시정부 국무령 김구 선생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침체된 독립운동을 진작시키고 상해임시정부의 재정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고 언급한 내용의 편지가 공개<광주일보 2018년 8월 14일 2면>되기도 했다.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비옥한 농토를 가지고 있는 호남은 타지역에 비해 일제의 경제적 수탈이 극심했다. 각종 수탈과 학교에서의 민족차별 교육은 지역 학생들의 분개를 샀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열차 안에서 일어난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 학생들과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생들의 충돌이 도화선이 됐다. 수탈에 이어 민족차별 교육 속에 저항의식을 키워나갔던 학생들의 분노가 터졌다.

운명의 날인 11월 3일은 음력으로 10월 3일 개천절이었다. 개천절임에도 일왕 메이지의 생일인 명치절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기념식에서 침묵으로 저항했고,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이 무렵 통학열차에서의 갈등이 이어져 광주천변에서는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들의 싸움이 벌어졌고, 광주역으로 확대돼 집단 패싸움으로 발전했다. 교사들의 만류로 학교로 돌아온 광주고보 학생들은 일제에 맞서기로 결정한다.

광주시내에서 항일 시위가 벌어졌고, 시위 소식은 전국으로 확산했다. 광주에서 타오른 불길은 거침없이 타올라 서울, 개성, 부산, 진주, 청주, 공주, 대전, 홍성, 예산, 조치원, 부여, 전주, 정읍, 고창, 이리, 평양, 신의주, 정주, 선천, 영변, 함흥, 원산, 경성, 대구, 춘천 등에서도 동맹휴교나 시위운동이 벌어졌다. 전국 320여개 학교, 5만400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당시 전체 학생의 절반 이상 규모다.

이런 학생들의 시위는 해외까지 확산됐다. 북간도와 서간도를 비롯해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도 유학생들이 학생독립운동에 관한 연설을 했다. 연해주와 미주에서도 신문에 학생독립운동 소식이 실리기도 했다.

11·3학생독립운동은 학생들이 전면에 나서 민족 독립의 의지를 천명한 항일운동으로, 나아가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잉걸불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기웅 기자 pboxer@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