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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염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 십자가를 장검으로 휘두르는 ‘증오의 종교’
2019년 10월 22일(화) 04:50
성 염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
필자가 다니는 조그만 성당의 주일미사 중 있었던 일이다. 대표신자들이 자유로이 기도문을 지어 염송하는 ‘신자들의 기도’ 시간이었다. 한데 북핵 문제로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여선지 어느 청년이 “김정은 일가가 하루빨리 몰살당해 북한이 망하고 이 땅에 평화가 오게 하소서”라는 기도문을 올렸다. 미사를 집전한 사제는 미사 후 청년을 따로 불러 “우리 크리스천은 기도 중에 누구를 잘못되어라고 저주는 못해요. 심지어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라는 성경 말씀까지 있어요”라고 타일러 주었다. 청년은 대뜸 “내 맘대로 기도도 못하면 성당엔 왜 나와야 하죠?”라고 반문했고 이튿날은 청년의 모친이 찾아와서 불쑥 한마디 던지고 갔다. “신부님, 북한 좋아하시나 본데 이북 가서 사시죠.”

‘평화의 사도’를 자처하는 크리스천들이, 비록 일부지만 민족 화해와 경제 정의라는 정치 문제만 나오면 견해가 다른 진보 인사들에게 집단적 증오를 가차 없이 쏟아내는 언행이 고스란히 보수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는 기독교 2000년 역사가 그만큼 굴절된 결과다. 로마 제국 300년 박해를 벗어나고 유럽 전역이 기독교를 믿게 되자, 그 종교는 자기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까지 믿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장검으로 벼려 내어 이단자 박해, 십자군 전쟁, 마녀 화형, 유대인 학살, 30년 종교전쟁을 자행하면서 ‘증오의 종교’로 변신해 왔다.

구체적으로 로마 주교 우르바노 2세는 1095년 클레르몽에 교회회의를 소집하고서 예루살렘 성지를 무슬림에게서 탈환하자며 ‘성전’을 선포하였다. 갑옷에 십자가를 새기고 칼을 뽑아든 사람들에게 “오로지 신심에 불타 하느님의 교회를 해방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출발하는 사람에게 그 길은 온전한 보속으로 여겨진다”는 교서를 발표하여 하느님의 축복과 보속 면제를 약속하였다. 유럽 각지에서 소집된 십자군이 항구로 집결하는 도중에 맞닥뜨린 유대인 마을은 불타고 주민들은 학살당했다. 제1차 원정에서 예루살렘을 점령한 크리스천들은 항복한 도성의 비무장 시민 7만 명을 모조리 살육했다. 이슬람, 유대인, 심지어 크리스천을 구분 않고.

그 뒤 1000년이 흐르고 ‘구주강생’ 2001년에 ‘9·11 테러’가 터졌다. 사태를 보고받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첫마디가 ‘십자군! 테러를 무찌르는 전쟁!’이었다. 사흘 후 미국 최초의 교회당이라는 뉴욕 감리교회에 모인 미국 지도자들의 거룩한 예배는 부시의 ‘전쟁 선포’였다. “역사에 대한 우리 책임은 이 공격에 응답하고 악의 세계를 박멸하는 일이다. 우리에게 전쟁을 걸어오다니! ‘때마침’ 상대편에서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니 우리 방식대로 끝장을 내겠다”고 했다. 무역센터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면서도 “범인 확인은 필히 입증되어야 합니다. 형사책임은 반드시 개인적이어야 하고 그 책임을 테러리스트가 속한 어떤 국가나 민족이나 종교로 확대될 수 없습니다”라 했던 구교 요한바오로 2세의 호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르틴 루터는 “터키인들(이슬람)에 반대하여 싸우는 것은 그들을 통하여 우리의 악행을 헤아리시는 하느님께 반항하는 것이다”는 신념을 표방했다. 구교에서 파문당했건만 미국 기독교도들은 독실한 대통령들을 앞세워 지난 20년 가까이 아프간 침공, 제2차 이라크전쟁, 리비아와 시리아 공격으로 ‘십자군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전 50년은 ‘반공 전쟁’이었고.

한국 기독교는 신구교가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에 열중하였고, 해방을 맞고 38선으로 국토가 양분되자 ‘반탁운동’에 앞장서더니 ‘반공의 보루’로 변신했다. 적어도 4·3 제주에서 시작하여 군경의 손에 희생당한 100만여 명의 민간인 학살은 기독교 장로 대통령 이승만의 1948년 11월 4일자 명령서에 근거한 것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신실한 믿음으로 국가를 위해 기도하고 행동하는 신구교도들이 대부분임에도, 후대의 역사가 자칫 기독교를 한때, 아니 특히 요즘 반공을 명분으로 삼는 증오심에 마귀 들린 집단으로 비웃을까 걱정스럽다. “우리가 진리임을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은 믿음 바로 그것이 악마다!”(움베르토 에코)라는 경고를 무시하면 어느 종교도 마귀 들린 집단으로 표변할 수 있다.

1980년 3월 24일, 기독교 나라 엘살바도르에서 크리스천 장군이 보낸 ‘죽음의 부대’의 크리스천 병사들이 성당으로 들어와 미사를 드리던 로메로 대주교를 쏴 죽였다. ‘빨갱이’라면서. 그리고 40년이 지난 10월 14일 그 대주교는 ‘정의와 인권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교자로서 바티칸 광장에서 성인으로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