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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준 순천 빛보라교회 담임목사] 마음의 방을 청소해야 하는 이유
임형준 순천 빛보라교회 담임목사
2019년 10월 04일(금) 04:50
필자는 여름철이 되면 다른 계절에 비해 몇 배 많은 독서를 한다. 아마도 유년 시절 아래채에 큰 대문을 열어 대나무 밭에서 부는 솔바람의 길목에 평상을 펴놓고, 혼자만의 책 읽기를 즐겼던 그때의 습관이 이어져 여름철에 유독 다독을 하게 된 것 같다. 지금부터 이번 여름에 읽었던 ‘청소력’이라는 책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청소력’의 저자는 ‘당신이 살고 있는 방이, 바로 당신 자신이다’라고 서두를 시작한다. 청소를 하는 것은 더러워진 자리를 단순히 반복적으로 뒷정리하는 차원이 아닌 청소로 인하여 어떤 에너지(力)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어떤 심리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흐트러진 방, 청소가 되어 있지 않은 사무실 등에서 생활을 계속하면 생리학적인 면에서도 심장 박동 수나 혈압이 증가하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목이나 어깨가 무거워지고 이유 없이 초조해지거나 금방 화를 내게 된다고 한다.

저자는 1969년 스탠포드대학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에 의해 실행된 매우 흥미 있는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의 법칙’의 실험이야기를 소개한다. 치안이 비교적 허술한 골목에 보존 상태가 동일한 두 대의 자동차를 보닛을 열어 놓은 채로 1주일간 방치해 둔다. 그중 한 대는 보닛만 열어 놓고, 다른 한 대는 고의적으로 창문을 조금 깬 상태로 놓고 두 자동차를 관찰하기로 한 것이다.

1주일 후 두 자동차에는 확연한 차이가 나타났다. 보닛만 열어 둔 자동차는 1주일간 특별히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보닛을 열어 놓고 차의 유리창을 깬 상태로 놓아 둔 자동차는 그 상태로 방치한지 겨우 10분만에 배터리가 없어졌고 연이어 타이어도 전부 없어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낙서나 투기, 파괴가 일어났고 1주일 후에는 완전히 고철 상태가 될 정도로 파손되고 말았다, 단지 유리창을 조금 파손시켜 놓은 것 뿐인데도, 오물을 버리거나 약탈, 파괴 활동이 단기간에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알게 되는 실험이었다.

필자는 책을 덮고 두 가지로 책의 메시지를 적용시켜 보았다. 먼저 깨진 유리창의 자동차를 우리의 눈에 보이는 지구로 클로즈업시켜 보았다. 거대한 환경 운동보다 먼저 길 위에 버려진 휴지를 줍고 흙에 썩지 않은 비닐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작은 실천들이 긴급하다는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는 각자 내면의 방을 매순간 청소하지 않고 방치해 두면 순식간에 오염되어 미움과 시기와 원망이 분노로 변하여 영혼은 금방 파괴되어 고철 덩어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결과 아름다웠던 자연은 계속 파괴될 것이고, 부패한 인간의 마음은 갈등으로 싸움과 전쟁을 반복하여 서서히 우리의 지구와 영혼은 침몰하는 배처럼 깊은 수렁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예수님은 영혼을 깨끗이 청소하는 법을 제자들에게 늘 가르치셨다. 인간의 영혼에 가득 찬 탐욕의 쓰레기 더미인 죄악을 비우고 청소하려면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신 주님을 만나야 한다. 주님을 만나려면 낮아져야 한다, 예수님 시대에 가장 낮은 곳은 과부와 고아들과 병든 자들이 살고 있는 광야와 같은 곳이었다. 예수님은 가장 낮고 낮은 곳에 머무시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잠언서에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낮아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 29:23) 기록하여 영혼의 비움과 청소의 성경적 가르침을 제시한다. 필자를 비롯한 현대 기독교인들은 성공적 세상과 높아짐은 추구하나, 빈들에서 스스로 낮아지신 예수님과 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참으로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 인생은 크고 위대한 일로 승부가 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을 무시하고 방치함으로 손실과 재난의 후유증은 앓고 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 정돈하는 단순하고 작은 행동과 이웃에게 전달되는 따뜻한 배려가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과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