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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다큐소설 <4> 5월 15일 ‘지형정찰’
“광주로 가자.”
“광주 어디로 갑니까요?”
“도착 전에 말하겠다.
아직까지는 비밀이다.”
“알겠습니다.”
“지형정찰이니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
2019년 10월 03일(목) 04:50
삽화:이정기
오후 5시. 광주 전투교육사령부가 보유한 2.5톤 군용트럭 31대가 시동을 걸었다. 7공수여단이 주둔하고 있는 전북 금마로 출발하기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충남대와 전북대에 투입할 병력을 싣기 위해 대전의 3관구사령부와 전북의 35사단의 군용트럭도 7공수여단으로 이동하기 위해 출발명령을 기다렸다.

7공수여단 위계룡 군의관은 이러한 사실을 참모회의를 통해서 미리 알았다. 7공수여단장 신우식 준장이 헌병대장까지 참석한 아침 참모회의에서 입술에 힘을 주며 말했던 것이다.

“오늘 밤까지 우리 부대를 광주로 이동시킬 수송차량 준비는 완료될 것이다.”

그때 위계룡은 회의장소를 나오면서 작년 10월이 생각나 혼잣말로 “이번에도 이동작전을 보류할지 모르지.”라고 중얼거리면서 실제로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공수부대를 시위진압에 투입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었다. 부마사태가 증명했다.

작년 10월의 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10월 26일 직전에 7공수여단 부대는 10월 27일 광주 31사단에 파견 나가기로 되어 있었고, 선발대는 이미 31사단으로 내려가 숙영지에 텐트까지 쳐놓은 상태였다. 광주에서도 부마사태처럼 시민소요가 일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시민들이 광주YMCA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치르려고 한다는 정보가 나돌았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10.26사건이 터졌다. 박정희 시해사건이 나는 바람에 7공수여단의 31사단 이동작전은 취소되었다. 그때 위계룡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자신이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의사가 꿈이었을 때의 자신과 후방근무를 하고 싶어 특전사에 지원하여 7공수여단의 군의관인 현재의 자신은 너무도 달랐다. 위계룡이 전남대 의대에 지원한 이유는 순전히 슈바이처 박사 때문이었다. 순천고 3학년 때 슈바이처 박사 위인전을 읽고 ‘나도 인류애를 실천하는 의사가 되겠다’라는 독후감을 써서 고등부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그때 위인전 한 구절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나는 나무에서 잎사귀 하나라도 의미 없이는 따지 않는다. 한 포기의 풀꽃도 꺾지 않는다. 벌레도 밟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여름밤 램프 밑에서 일을 할 때, 많은 날벌레들이 날개가 타서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창문을 닫고 무더운 공기를 호흡한다.>



생명을 사랑하는 슈바이처의 무한한 자비심을 보고 크게 감동해 고등학생 위계룡도 박사와 같은 인격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의대를 진학해 결국 의사가 됐던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자신은 하필이면 박달나무 진압봉을 살인적으로 휘두르며 시위시민을 진압하는 7공수여단의 의무대 군의관 신분, 그것도 자신이 원해서 지원한 자업자득이었다. ‘그래도 으쩔 것인가. 내 신분은 공수부대 군의관인디.’

공수부대원을 이동시킬 군용트럭들이 벌써 위병소를 통과해 부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군용트럭은 전북의 35사단에서 보낸 수송차량이었다. 줄지어 들어오는 2.5톤 군용트럭들은 모두 헤드라이트를 켜고 있었다. 초저녁 무렵에는 대전 3관구사령부와 광주의 전투교육사령부의 군용트럭들도 7공수여단 연병장에 도착할 터였다. 위계룡은 문득 도리질을 했다. 광주로 배치될 대대장들을 보니 걱정이 앞섰다. 33대대 권승만 중령이나 35대대 김일옥 중령은 두 사람 모두 간부후보 출신이었다. 간부후보 출신들은 대체적으로 육사 출신에 대한 열등의식이 깊어 상관의 지시를 더 투철하게 해내는 경향이 있었다. 시위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진압할 것이 뻔했다.



바로 그 시각이었다. 7공수여단에서는 네댓 대의 여단 군용트럭을 광주로 보냈다. 네댓 대의 군용트럭 운전병들은 자신이 광주 어디로 가는지 정확한 목적지는 몰랐다. 선임운전병 옆에 앉은 지대 팀장인 대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보병의 소대장에 해당하는 지대 팀장의 계급은 중위, 혹은 대위였다. 지대 팀은 11명이었는데, 특전사는 여단, 대대, 지역대, 지대 편제로 돼 있었다. 선도 차량에 탄 지대 팀장인 대위가 운전병에게 지시했다.

“광주로 가자.”

“광주 어디로 갑니까요?”

“도착 전에 말하겠다. 아직까지는 비밀이다.”

“알겠습니다.”

“지형정찰이니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

지대 팀장은 선도하는 군용트럭이 호남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지대 팀장이 말했다.

“정 상병, 담배 피우나?”

“아니요.”

정 상병을 배려하려는 듯 지대 팀장이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차 안의 담배연기가 증발하듯 차창 밖으로 사라졌다.

“새벽까지 부대로 복귀해야 하니 오늘은 고생 좀 할 것이다.”

“충정훈련 받는 대원들에 비하면 저희 운전병들은 약과죠.”

“대신 내일은 충분히 쉴 수 있다. 오후에는 문선대 밴드까지 부르는 큰 회식이 있을 예정이다.”

“밴드까지 온다고요?”

“가수들을 부를 수 있는 형편은 아니고 밴드가 대원들 사기를 올려줄 거야.”

“저도 한 곡조 뽑아야겠습니다.”

정 상병은 밴드가 기대돼 벌써 신이 났다. 공수여단에 뭔가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있음이 분명했다.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각 예하 부대에 회식비를 내려 보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맞아떨어졌다.

“정 상병은 언제 입대했나?”

“작년 2월 군번입니다.”

“대학 다니다가 왔겠군.”

“예, 2학년 마치고 입대했습니다.”

“학생일 때가 봄날이야. 연애도 실컷 하고.”

“지대장님은 인기가 좋았겠습니다.”

“왜?”

“호남형이신 데다 체격도 짱이니까요.”

“육사생도는 다 똑같아. 제복을 입고 있으니 그 생도가 그 생도지.”

“제복도 멋있잖아요.” 잠시 후에는 대화가 끊기고 침묵이 흘렀다. 어느 순간, 지대 팀장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정 상병은 선두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었으므로 더욱 정신을 집중해 운전했다. 정읍을 지나자 바로 전남북의 경계인 긴 터널이 나타났다. 터널만 지나면 장성이었다. 터널 저편 산자락 밑쪽에서 열차가 기적소리를 내며 스쳤다.

정 상병은 전투교육사령부를 가끔 오갔기 때문에 밤이었지만 뒤따르는 차량을 능숙하게 선도했다. 장성 시멘트공장을 지나칠 무렵에야 지대 팀장이 눈을 떴다.

“어! 여기가 어딘가?”

“장성 지났습니다. 고개만 넘으면 광주입니다.”

“깜박 하고 조는 동안 꿈을 꿨네. 악몽이야.”

“꿈은 반대라고 하던데요.”

“내가 피바다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어.”

“피를 보면 재수가 좋답니다.”

“그럴까?”

지대 팀장이 손전등을 꺼내 켜더니 지도를 폈다. 목적지를 쉽게 찾은 듯 지도를 다시 접었다. 광주톨게이트를 막 지나서야 지대 팀장이 정 상병에게 말했다.

“1번차 2번차는 전남대로 간다.”

“예, 알겠습니다. 지대장님.”

“다른 차량은 조선대, 교육대로 갈 거야.”

그제야 정 상병은 7공수여단 병력이 조만간 전남대, 조선대, 교육대에 투입될 것이라고 눈치 챘다. 정 상병은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지대 팀장이 지시하는 대로 용봉IC를 빠져나와 용봉동을 10여 분 직진하다가 학교 담장을 따라서 좌회전했다. 그러자 정문이 나왔다. 정 상병은 헤드라이트를 켠 채 군용트럭에서 내려 정문 수위실로 갔다. 수위가 나와 물었다.

“무신 일이요?”

“작전 나왔습니다.”

“아이고, 고상이 많그만요.”

정문 수위는 별 의심 없이 철문을 열었다. 전남대 ROTC학군단과 합동으로 훈련하는 작전이려니 짐작하는 듯했다. 두 대의 군용트럭은 정문을 유유히 통과하여 대운동장으로 향했다. 대운동장에 도착해서야 뒤따르던 군용트럭의 지대 팀장 중위가 선도차의 지대 팀장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선배님, 33대대 숙영지로 최곱니더. 대학건물에서 떨어져 보안유지도 그만입니더.”

“사방이 툭 트여 경계하기도 좋겠어.”

두 지대 팀장은 담배를 꺼내 물고 피웠다. 그 사이 운전병들은 군용트럭을 몰고 대운동장 상태를 살피며 한 바퀴 돌고 왔다. 대학건물 뒤편 컴컴한 숲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쩍새 울음소리는 피를 토하듯 처절했다. 뒤따르던 군용트럭의 지대 팀장이 담뱃불을 군홧발로 짓이겨 끄면서 말했다.

“충정작전 들어가면 쌍놈의 새끼들 가만 안 둘낍니더.”

“김 중위, 작은 소리로 말해. 저기 대학생들이 오고 있어.”

“밤에 집에 안 가는 놈들은 공부 안하는 알라들입니더. 빨강 물이 들어 데모하는 학생일 낍니데이.”

“오늘밤은 지형정찰이 임무니까 조심해.”

그때 남녀 대학생이 별 경계심 없이 두 지대 팀장에게 다가왔다. 시내에서 시위하고 교정으로 돌아온 남녀 대학생이었다. 선도차 지대 팀장 대위가 물었다.

“밤에도 학교에 학생들이 많은가?”

“시위하고 난 뒤 철야 농성하는 학생들이지라.”

“내일도 시위가 있는가?”

“민주성회를 3일 동안 계속 하고 있는디 낼은 학생들이 더 많이 모일 거그만요.”

“민주성회가 뭔가?”

“선배님, 학생들이 데모를 건사하게 포장한 말, 아입니꺼.”

중위가 남학생을 대신해서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무안해진 남학생 옆에 있던 여학생이 분명하게 말했다.

“민주화를 위한 집회를 민주성회라 합니다.”

14일 전남대생들의 시위는 처음 가두로 진출할 때는 최루탄을 쏘는 경찰과 격렬하게 맞선 양상이었는데, 오후 3시쯤에 시작한 민주성회와 이후 가두행진 때는 뜻밖에 평화로웠다. 경찰이 수수방관하는 태도로 나왔던 것이다. 한복에 고무신을 신은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오후 6시까지 집회를 마치고 귀교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해서였다. 경찰은 전남대생들이 귀교할 때는 시위행렬을 따라가며 교통정리까지 해주었다.

“오늘도 집회를 했는가?”

“그럼요. 참여하는 학생 숫자가 엄청 불어났지라.”

남학생이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어제보다 오늘 참여 숫자가 더 많아진 이유는 경찰이 시위행렬을 보호해 주었다는 소문이 광주의 여러 대학으로 퍼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대학의 학생들은 전남대 학생들을 부러워하며 민주성회에 대거 참여했다. 그러니까 14일 민주성회가 전남대 단독으로 치러졌다면 15일 민주성회는 광주의 모든 종합대와 전문대 학생들이 합세한 집회나 다름없었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중위가 또 한 마디 했다.

“김대중 같은 좌파 정치인들이 문젭니더. 뒤에서 다 조종하고 있다, 아입니꺼.”

“군인 아저씨, 대학생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여학생이 반박했다. 그래도 중위가 침을 뱉듯 말했다.

“이러다간 북한 군바리 알라들이 침투할지도 모른기라.”

남학생이 여학생 손을 억지로 끌고 강당이 있는 건물로 가버렸다. 중위가 두 남녀 학생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욕설을 뱉어냈다.

“니미럴! 얼쩡거리기만 해보래이. 깔끔하게 걷어버릴끼다.”

“김 중위, 대학생 상황까지 파악했으니 돌아가지.”

두 지대 팀장은 각자의 군용트럭에 승차했다. 원래 임무인 지형정찰을 끝냈으니 날이 밝기 전까지 7공수여단 연병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선도차의 지대 팀장이 정 상병에게 명했다.

“귀대하자.”

“예, 지대장님.”

“대학생들이 순진해. 평화는 강자가 주는 거야, 약자가 원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회가 혼란해지면 평화도 민주화도 멀어지는 거야. 북한만 좋아서 오판할 거야. 시위를 해서 민주화가 얻어진다는 것은 몽상가 잠꼬대지.”

“대학생들 생각이 짧은 거죠.”

선도차 지대 팀장은 문득 머리끝이 쭈뼛했다. 광주로 내려오면서 잠깐 꾼 꿈이 생각나서였다. 자신이 피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 중위는 전남대 정문을 빠져나오면서 참지 못하고 또 다시 욕지거리를 뱉었다.

“쌍놈의 새끼들! 잡기만 해보래이. 부랄 한쪽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끼다.”

자신의 군홧발로 시위하는 학생들의 사타구니를 짓이기겠다는 욕설이었다. 지금까지 시위진압 훈련을 해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고 싶다는 듯 험악한 말을 뱉어냈다. 달도 없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