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청문회가 열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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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태 전 광주시장 재직 시절 이런 일이 있었다.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어쨌든 국제대학스포츠연맹 실사단에 잘 보여야 했다. 광주로 들어오는 관문인 호남고속도로 동림 나들목을 비롯해 빛고을로·무진로·농성광장 등 실사단이 거쳐 갈 주요 길목에 꽃잔디를 심기 시작했다. 광주역 광장의 멀쩡한 잔디도 파헤쳐지고 꽃잔디로 옷을 갈아입었다.
말들이 많았다. 3년 동안 1200만 본의 꽃잔디 등을 심는 데 70억 원 가량의 예산이 투입됐기 때문이다. 거액의 예산이 들어간 만큼 꽃잔디 식재 사업은 예산 낭비와 특정 업체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감사원이 직접 감사에 나섰고 꽃잔디 조성 사업 추진 과정에서 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한 명이 인건비 7000여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됐다.
광주시와 현대자동차의 합작법인 (주)광주글로벌모터스가 어제 법인 설립 절차를 마무리 짓고 노사상생형 광주형일자리 사업을 위한 자동차공장 건립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이뤄진 박광태 전 광주시장의 대표이사 선임에 대한 찬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광주형 일자리 1호’가 고작 ‘올드보이’ 박 시장이냐”며 그의 나이를 거론하기도 한다. 올해 우리 나이로 77세이니 한편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이는 별로 염려할 게 못 된다는 생각이다. 굳이 ‘백세 시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얼마 전 시내 한 골프 연습장에서 목격된 그의 모습은 정정하기 그지없었다고 하니 말이다. (실제로 그는 지인들과 자주 필드에 나갈 정도로 건강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이미 많이 보도됐지만 다시 복기할 필요가 있겠다. 먼저 참여자치21이 낸 성명이다. “이용섭 시장이 지난 지방선거 때 박 대표의 측근과 참모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 보은 인사, 업무상 횡령죄, 자질과 도덕성 논란 등 인사 참상이 새로 출범한 ‘광주글로벌모터스’에도 그대로 옮겨 가는 심히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정의당 광주시당도 ‘소가 웃을 일’이라며 성명을 냈다. “박 전 시장은 업무상 횡령죄 등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형기를 마친 지 겨우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 같은 시점에 비리에 연루된 박 전 시장이 대표에 선임된 것에 대해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전문성 부족에 비리 전력까지
‘비리(非理) 전력’은 광주형 일자리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그냥 덮고 지나갈 수 없는 결정적 하자(瑕疵)다. 여기서 말하는 ‘비리’란 박 전 시장이 ‘상품권 깡’을 통해 20억 원 가량을 현금화한 뒤 유용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말한다. 2016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의당은 “박 전 시장이 재임 중인 2005~2009년 업무추진비 카드로 145차례에 걸쳐 20억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구매한 뒤 ‘상품권깡’을 통해 현금으로 바꾸고 이를 아파트 생활비와 골프 비용 등의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힌 바 있다.
어쨌든 이러한 반대 여론이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 리 없다. “이 시장이 강권해서 떠맡은 자리인데 내가 왜 말년에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느냐?” 최근 그가 주변에 했다는 말이다. 불편한 심경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언급이다. 하지만 반대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부 광주시의원들 역시 “박 전 시장은 비리 전력 외에도 자동차 산업의 이해 및 전문 경영 경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의원들은 “이 시장이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고 광주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많으며 노사 상생의 사회 대통합 정신을 잘 실현할 수 있는 분’이라는 말로 (박 전 시장)추천 사유를 밝혔지만 시민들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광주글로벌모터스 대표이사는 광주형 일자리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노사 상생과 사회 대통합에 어울리는 인물로 교체해야만 광주형 일자리가 광주 시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으로 출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리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있었다 하더라도 정작 박 전 시장 본인은 무엇 때문에 그 자리를 선뜻 수락한 것일까. 시민들을 위한 마지막 봉사? 그랬으면 좋겠다. 설마 대표로서 받게 될 연봉이 욕심나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요즘 수억 원짜리 외제 차를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그 정도 부(富)를 누리는 그가 고까짓 보수(報酬)를 탐할 리야 있을라고?
‘말년의 수모’ 겪지 않으려면
물론 그도 한때는 참 어렵게 살았다. 민주화 운동 때문이었다. 특히 그는 1972년 10월유신이 선포됐을 때 수배돼 쫓기는 몸이 되고, 이듬해 영광 친구 집에 피신해 있던 중 지금의 부인을 만나 약혼한다. 하지만 또다시 ‘유신 철폐’ 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된다.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유신 반대 투쟁을 포기하면 미국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회유가 있었으나 굴하지 않는다. 결국 구속돼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교도소에 면회 온 약혼녀의 말이 그를 울린다. “7년이 아니라 10년이라도 당신을 기다리겠어요.” 그 후 2년가량 약혼녀는 옥바라지뿐만 아니라 예비 시부모님까지 지성으로 모셨다. 34세 되던 해 출옥한 그는 비로소 그녀와 결혼한다. 고난 속에 피어난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다.
부인은 줄곧 20여 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며 그를 도왔다. 그가 3선 국회의원과 재선 광주시장을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부인의 그러한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온갖 어려움을 겪었던 그도 이제 팔순을 바라보며 인생을 서서히 마무리 할 시점에 왔다. 만약 청문회가 있었다면 그는 과연 통과될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본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그가 광주글로벌모터스 대표 자리를 수락한 목적이 ‘돈’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마지막 ‘봉사’에 있다면! 게다가 그의 말마따나 ‘말년의 수모’를 더 이상 당하지 않고 싶다면! 이제 모종의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쯤 해서 대표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대신 ‘상임고문’ 같은 자리를 하나 맡아서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천명한다면, 시민들도 분명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 같은데….
/주필
광주시와 현대자동차의 합작법인 (주)광주글로벌모터스가 어제 법인 설립 절차를 마무리 짓고 노사상생형 광주형일자리 사업을 위한 자동차공장 건립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이뤄진 박광태 전 광주시장의 대표이사 선임에 대한 찬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이미 많이 보도됐지만 다시 복기할 필요가 있겠다. 먼저 참여자치21이 낸 성명이다. “이용섭 시장이 지난 지방선거 때 박 대표의 측근과 참모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 보은 인사, 업무상 횡령죄, 자질과 도덕성 논란 등 인사 참상이 새로 출범한 ‘광주글로벌모터스’에도 그대로 옮겨 가는 심히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정의당 광주시당도 ‘소가 웃을 일’이라며 성명을 냈다. “박 전 시장은 업무상 횡령죄 등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형기를 마친 지 겨우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 같은 시점에 비리에 연루된 박 전 시장이 대표에 선임된 것에 대해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전문성 부족에 비리 전력까지
‘비리(非理) 전력’은 광주형 일자리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그냥 덮고 지나갈 수 없는 결정적 하자(瑕疵)다. 여기서 말하는 ‘비리’란 박 전 시장이 ‘상품권 깡’을 통해 20억 원 가량을 현금화한 뒤 유용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말한다. 2016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의당은 “박 전 시장이 재임 중인 2005~2009년 업무추진비 카드로 145차례에 걸쳐 20억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구매한 뒤 ‘상품권깡’을 통해 현금으로 바꾸고 이를 아파트 생활비와 골프 비용 등의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힌 바 있다.
어쨌든 이러한 반대 여론이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 리 없다. “이 시장이 강권해서 떠맡은 자리인데 내가 왜 말년에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느냐?” 최근 그가 주변에 했다는 말이다. 불편한 심경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언급이다. 하지만 반대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부 광주시의원들 역시 “박 전 시장은 비리 전력 외에도 자동차 산업의 이해 및 전문 경영 경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의원들은 “이 시장이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고 광주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많으며 노사 상생의 사회 대통합 정신을 잘 실현할 수 있는 분’이라는 말로 (박 전 시장)추천 사유를 밝혔지만 시민들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광주글로벌모터스 대표이사는 광주형 일자리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노사 상생과 사회 대통합에 어울리는 인물로 교체해야만 광주형 일자리가 광주 시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으로 출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리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있었다 하더라도 정작 박 전 시장 본인은 무엇 때문에 그 자리를 선뜻 수락한 것일까. 시민들을 위한 마지막 봉사? 그랬으면 좋겠다. 설마 대표로서 받게 될 연봉이 욕심나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요즘 수억 원짜리 외제 차를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그 정도 부(富)를 누리는 그가 고까짓 보수(報酬)를 탐할 리야 있을라고?
‘말년의 수모’ 겪지 않으려면
물론 그도 한때는 참 어렵게 살았다. 민주화 운동 때문이었다. 특히 그는 1972년 10월유신이 선포됐을 때 수배돼 쫓기는 몸이 되고, 이듬해 영광 친구 집에 피신해 있던 중 지금의 부인을 만나 약혼한다. 하지만 또다시 ‘유신 철폐’ 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된다.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유신 반대 투쟁을 포기하면 미국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회유가 있었으나 굴하지 않는다. 결국 구속돼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교도소에 면회 온 약혼녀의 말이 그를 울린다. “7년이 아니라 10년이라도 당신을 기다리겠어요.” 그 후 2년가량 약혼녀는 옥바라지뿐만 아니라 예비 시부모님까지 지성으로 모셨다. 34세 되던 해 출옥한 그는 비로소 그녀와 결혼한다. 고난 속에 피어난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다.
부인은 줄곧 20여 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며 그를 도왔다. 그가 3선 국회의원과 재선 광주시장을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부인의 그러한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온갖 어려움을 겪었던 그도 이제 팔순을 바라보며 인생을 서서히 마무리 할 시점에 왔다. 만약 청문회가 있었다면 그는 과연 통과될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본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그가 광주글로벌모터스 대표 자리를 수락한 목적이 ‘돈’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마지막 ‘봉사’에 있다면! 게다가 그의 말마따나 ‘말년의 수모’를 더 이상 당하지 않고 싶다면! 이제 모종의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쯤 해서 대표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대신 ‘상임고문’ 같은 자리를 하나 맡아서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천명한다면, 시민들도 분명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 같은데….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