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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 생각’] 평양에 간 모감주나무의 안부가 궁금하다
2019년 07월 04일(목) 04:50
요즘 샛노란 모감주나무 꽃이 한창이다. 이른 봄 초록 잎이 나기 전에 꽃이 피는 개나리 영춘화와는 달리, 초록 잎이 무성하게 뻗어 오른 가지 끝에서 작은 꽃송이가 고깔 모양으로 조롱조롱 모여 피어나는 모감주나무 꽃은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는 신호다. 이제 여름이다.

충남 태안의 안면도에는 천연기념물 제138호로 지정된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있다. 무려 400그루가 넘는 모감주나무가 무리를 지어 자라는 아름다운 바닷가 숲이다. 모감주나무 자생지로서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할 만하다.

중국의 산둥(山東)반도 앞에 떨어진 모감주나무 씨앗이 바다를 건너와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가 오랫동안 전해 왔다. 모감주나무의 자생지를 나라 안에서 발견하지 못하던 시절에 나무의 근원을 궁금해 한 옛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로 짐작된다.

최근에는 서해 백령도와 충북 월악산, 대구 내곡동, 경남 거제 한내리 등 여러 곳에서 자생지가 발견되었고, 이 가운데 완도 대문리와 경북 포항 발산리의 자생지도 안면도 숲처럼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또 지난주에는 경북 안동에서도 1000그루 쯤 되는 모감주나무가 무리 지어 자라는 군락지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모두 모감주나무가 우리의 토종 나무라는 분명한 증거다.

모감주나무 가운데 앞으로 오래 잘 보존해야 할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지난해 9월에 평양을 방문한 대통령이 평양 백화원 정원에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손수 심은 나무다. 한반도 남쪽 기후에서 자라는 나무가 평양의 추운 기후에 얼마나 잘 적응했을지, 또 이곳에서처럼 그곳에서도 노란 꽃이 화사하게 피어났을지 궁금하다.

모감주나무는 중부 이남 지역, 구체적으로는 황해도와 강원도 이남 지역의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나무다. 따라서 차가운 평양의 기후에서 자라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최근의 기후 변화로 평양에서도 잘 자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곳 사람들이 정성껏 보살필 테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의 생육은 사람의 정성만으로 다 되는 게 아니다. 우선 나무의 생육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기후만 하더라도 사람으로서 어쩔 도리가 없는 요인이다. 한 송이 꽃이 피어나려면 봄부터 소쩍새도 울고, 비바람도 우심히 불어야 하며, 햇살도 적당해야 한다. 아무리 작은 나무라 해도 더불어 살아가는 다른 생명과 알맞춤한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게 생명의 이치다. 사람의 힘만으로 안 된다는 이야기다.

고려 때의 시인 이규보만 하더라도 “꽃 심을 땐 안 필까 걱정하고(種花愁未發) 꽃 피니 시들까 시름한다(花發又愁落) 피고 지는 게 모두 근심이니(開落摠愁人) 꽃 키우는 즐거움 알 수 없네(未識種花樂)”라는 오언절구의 한시를 남겼다. 여기서 꽃 심는 일을 근심투성이라고 한 건,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변수가 많기 때문이리라.

근심의 깊이는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날 때 받는 즐거움의 크기와 비례한다. 간절한 설렘과 오랜 기다림이 이어진 뒤의 일이어서다. 더구나 예측 불가능한 개화는 더 놀랍고 기쁠 수밖에 없다. 나무를 심고 꽃 피우는 일만 그런 게 아니다. 사람살이에서도 오랜 기다림과 설렘을 안고 기다려 오던 일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시간에 뜻밖의 자리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걸 바라보는 기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마련이다.

지난 일요일 나른한 오후, 휴전선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 그랬다. 짐작조차 못했던 뜻밖의 사건이었다. 놀라웠지만 반가웠다. 마치 근심 속에 씨앗을 심고, 꽃을 기다리던 중의 어느날, 갑자기 피어난 꽃을 만났을 때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온 세계의 시선을 모았던 그 짧은 순간의 사건은 우리 민족 모두가 간절한 설렘과 오랜 기다림으로 바라던 화합과 평화의 길로 성큼 나아가는 중요한 한 걸음으로 여기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북의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낯선 평양에서 처음으로 여름을 맞이한 모감주나무의 안부가 궁금해진 건 그래서였다. 따뜻한 기후에서 자라는 모감주나무이지만 한반도 한복판에서 불어오는 훈풍을 맞으며 아마도 뜻밖에 더 아름다운 꽃을 피었으리라 믿고 싶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