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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 ‘좌측담장’] 총재님은 무얼 하시기에
2019년 01월 24일(목) 00:00
비시즌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야구에 대해서는 할 말이 점점 더 없어져 간다. 현재 KBO를 이끌고 있는 수장은 한때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 후보로 오르내리던 인사인데, 만약에 그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하면 심히 아찔해진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KBO 총재로서의 그의 활동은 특히 취임 전 야구광으로 유명했던 그의 명성에 비하면 초라하고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

취임 일성으로 그는 총재보다는 ‘커미셔너’라 불리길 원한다 말했다. 어딘지 메이저 리그 냄새가 나는 단어 커미셔너는 프로 스포츠의 품위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권한을 부여받은 자를 뜻한다. 각종 룰을 조정하고 구단 간의 이해득실, 구단과 선수와의 갈등, 지자체와 야구단과의 관계, 팬과 리그의 밀착도 등등, 커미셔너라는 사람에게 이 모든 권한과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특정 기업인 출신이거나 현직 정치인인 아닌 그에게 현명한 조율사로서의 역할을 기대한 사람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무언가 기대를 거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배운 사람 중에 최고의 ‘야잘알’이라던 그는 아시안게임 병역 특례 논란 때문에 국회에 불려 나가서는 야구계의 현실과 대책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야알못’ 국회의원의 공세에 밀려 전임 감독에게 그 책임을 미루는 듯한 발언을 한다. 그의 말은 ‘사퇴 종용이 아닌 종용’이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국가 대표 감독직은 공석이고,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앞서 줄줄이 이어질 국제 대회를 어떻게 준비하겠다는 것인지, 그에 대한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야구 인기의 상당 부분이 2006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의 환호에서 비롯되었다면, 반대로 당장 내년에 있을 올림픽에서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부진은 인기 하락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사실 국가 대항전 준비는 그에게는 옵션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리그 활성화가 KBO 총재의 본업이자 존재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리그 활성화를 위한 커미셔너의 역할은 리그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두드러져야 한다. 경기장 내외에서의 룰을 수정하고, 비합리적인 제도를 지금의 실정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대표적으로는 FA 제도를 예로 들 수 있다. 90년대 후반 선수들의 요구에 의해 가까스로 탄생한 이 제도는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땜질식 처방만 있어 왔을 뿐, 리그 규모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제도 보완은 거의 없었다.

특급 선수야 제도의 디테일에 상관없이 원하는 계약을 맺을 수 있겠지만 그런 선수는 그야말로 소수에 불과하다. 계약 종료에 따라 직장 선택의 자유를 주고 그에 따라 선수 이동이 활발해져 리그를 풍성하게 해야 할 제도의 목적이 이제는 특정 선수가 한몫 잡는 용도로 변질되었다. 등급제, 퀄리파잉 오퍼, 샐러리캡, 신인 지명권 보상제, 외국인 선수 쿼터제 등 다른 리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완책도 검토되지 않고 있으니, 우리 실정에 맞는 전문적인 상상력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냉랭한 FA 시장은 현실 파악을 못한 선수와 에이전트의 탓도 있겠지만, 낙후된 제도를 오래 방치한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작년 구단이 내놓은 80억 원 상한제는 사실상 선수협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그러나 협상을 위한 선제 조치로 볼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협은 협상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과 같다. 10년 가까운 시간을 성실히 뛰어 온 선수는 하염없이 늦어지는 계약에 일부 팬들의 비아냥거림을 감내하고 있다. 구단은 구단대로 경직된 선수단 안에서 고질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구단도 선수도 이 일을 해결할 수는 없다. 상충되는 이익을 누구 하나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조정자가 필요하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권한을 부여받은 자, 커미셔너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 KBO 총재님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무엇 하는 사람인가. 상충된 이익을 조절하고 갈등과 반목을 봉합해 리그의 구성원을 이끄는 사람인가, 아니면 중요한 경기에 시구자로 나서고 VIP석에 앉아 좋아하는 야구를 편안히 즐기는 사람인가. 지금까지 정운찬 총재는 아무래도 후자로 보이는데, 그 또한 자신이 그렇게 보이는 것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진짜로 보여 주어야 할 때가 왔다.

<시인>